헌신예배-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 | na kim | 2016-06-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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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39:42-43절 개역한글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43.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2016. 6. 15. 온누리, 주안에 목장 헌신 예배
* 본 문 : 출애굽기 39장 42-43절 말씀 * 제 목 :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
현대 기독교는 위기에 처했는데, 이런 위기는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것이다. 현재 우리는 서로의 등을 두드리고 즐거워하면서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교회들에게 부족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배’이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에게 없다.
물질적으로 말하면 이제까지 우리는 일취월장하였다. 우리는 많은 교인을 모으고 커다란 예배당을 지었다. 우리는 교회재정을 자랑하고, 교회 성장에 대해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되었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 질문은 결코 쓸데없는 말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예배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예배를 회복하면 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다고 느끼고 “진실로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다”라고 고백할 것이다.
“주여! 저는 예배하는 자들 중에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때때로 예배하는 시늉만 내는 죄를 범했습니다. 오늘 제가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하소서. 아멘” - 이것이 예배이다.(Worship, The Missing Jewel0 p.178-179 A.W. Tozer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토저’는 펜실바니아 출생으로 고등학교 이후의 학력을 독학으로 마쳤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도 전에 목회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44년 동안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는 늘 교회가 신앙적 가치를 잃고 세상의 가치와 타협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목회와 많은 저서를 통해서 엄청난 수입이 있을 때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허락된 소유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용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묘비명은 유명합니다. 1897년에 태어난 그가 1963년 5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의 묘비에는 ‘A.W 토저 –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가 우려하고 기도했던 현대 기독교회의 위기, ‘예배의 부족’에 대해 여러분은 동의하십니까? 우리는 표면적이 아닌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풍요와 소비의 미덕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과연 어떻게 성도이며 교회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요? 예배의 부족이라는 이 치명적이면서도 은폐되어 있는 문제를 오늘날 교회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지혜로운 마음, 자원하는 마음(출 36:2-7) 출애굽기 36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들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아직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도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통한 사귐을 할 처소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 일을 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배의 처소를 만들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이 예배하는 사람들인지를 함께 말씀하십니다.
36장을 보면 계속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36:2) 즉,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35:31, 35에서도 성전의 각종 도구를 만들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35:31)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35:35)
또한 36:2에서는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짓는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부나 명예가 목적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어서 스스로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배’라는 것을 한 시간 동안 드리는 예식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우리의 삶 전부를 통칭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 그 사람이 준비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일까요? 본문은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는 내가 가진 소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 하나님의 뜻과 지혜가 그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할 때 그것이 나의 지혜가 됩니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순종하고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소원이 삶으로, 찬양으로, 기도로, 말씀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들을 모으셔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우리에게 이 마음이 있는지를 먼저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소원으로 자원하는 마음 - 우리의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39:1)
성전에서 사용되는 각종 물품을 만드는 원칙, 특히 39:1에서 제사장들이 입는 옷을 만드는 원칙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입니다. 하나의 일을 마감할 때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 39:42-43) 42절과 43절에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모든 역사를 마쳤고, 명령하신 대로 된 것을 보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소를 짓는 과정을 통해서 예배하는 성도와 교회가 어떤 원칙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함의 상징인 성소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라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의 예배자로서의 삶의 원칙 또한 동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읽고 나누고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배우고 확신하는 대로 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성소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지었다면 하나님의 기쁨도 없고 축복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성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손을 통해 실천되고 그 명령이 성소를 통해 이루어졌을 때 그 장소는 거룩한 장소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함께 합니다
. 말씀이 없어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몰라서 성도가 타락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역사에 오늘날처럼 말씀이 풍성한 때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교회가 무질서하고 타락한 적도 없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성소로서의 우리의 삶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으로 실천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날 것입니다.
3. 거룩하게 하라!(40:9-10)
성소와 성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을 향한 소원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소를 지었지만 그 성소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성소의 모든 기물에 거룩한 기름을 바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관유’(灌油)란 성전에서 제사장이 사용하는 기름입니다. 이것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모든 기물에 관유를 발라서 거룩하게 하고, 사람 또한 관유를 붓고, 그들이 입는 옷에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하게 하심이 성소의 모든 기물과 사람에게, 성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도, 오늘날의 예배도 사람이 드립니다. 사람의 부족함과 경건하지 못함이 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아론과 함께 제사장으로 가름부음을 받았던 아답과 아비후는 징계를 받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사무엘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또한 징계를 받았습니다.(삼상 4:11)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예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제사행위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없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았던 그들의 삶과 섬김에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은 만인제사장의 시대입니다. 십자가 제단 위에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누구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는 놀라운 일치의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아닌 내 인격과 삶과 신앙과 헌신에 하나님의 ‘기름 바르심’이 나타나는가에 있습니다. 마 5: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의 이 말씀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되게 하라!
교회는 예수님의 시대에 성전 개념에 대한 혁명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닌 예수님의 몸을 성전으로 적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서 초대교회의 시대에 다시 한번 성전의 개념을 발전시키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전이 되고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기름 부으심으로 상징되었던 것이 성령의 임재로 구체화됩니다. 다만 구약에는 보이는 기름으로 부었지만 신약에서는 보이지 않는 영으로 임하셨습니다.
이제 교회와 성도는 거룩한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성소는 특정한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배 또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곳이 성소가 되며 영으로 더불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징적이고 선언적인 의미에서의 성령의 임재가 아닌 우리의 인격과 삶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는가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관계가, 섬김과 헌신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수천 년 전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소를 허락하시고 예배를 가르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도 동일하십니다. 같은 마음,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하는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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