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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러나 하나님은.... na kim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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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베소서2:1-10절 개역한글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 6. 29. 에베소서 강해

 

2. 그러나 하나님은...(2:1-10)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아시죠? 6편 정도가 나왔습니다. 최근 영화에는 한국 배우인 이병헌까지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198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서기 2029년의 로스앤젤레스. 핵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대항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계들은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끈질긴 소탕전을 벌이고 인류저항군 "테크-"은 존 코너라는 리더 아래 기계들과 피할 수 없는 항전을 벌입니다. 스카이넷은 존 코너의 존재 자체를 없애기 위해 그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를 제거하는 프로젝트를 세워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서기 1984년의 로스앤젤레스로 밀파시킵니다. 존 코너의 테크-컴 역시 사라 코너를 지키기 위해 수호자를 역시 1984년 로스앤젤레스로 급파시키게 됩니다. 이 영화 시리즈에서는 1984년에서 2029년을 오고면서 다양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영화에 의하면 인류가 핵전쟁으로 어리석게 자멸하는 때는 2004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2016년을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20세기 말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근거가 희박했었다고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고민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어둡고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이 가진 도덕성과 자기 개선의 가능성으로는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어두움의 본성을 극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울의 편지를 통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인간이 가진 본성에 대한 절망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절망

 

1-3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참담한 상태와 악한 본성을 기술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절망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우리는 죽었다.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허물이란 구별된 어떤 경계선을 넘어서는 일혹은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죄란 표적을 빗나가거나 표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여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우리의 잘못 뿐만 아니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잘못까지 함께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악을 범하는 잘못과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잘못을 함께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잘못 가운데 있는 인간의 삶을 죽었다고 표현했습니다.

 

2) 우리는 종노릇하였다.

 

바울은 우리가 이전에 허물과 죄 가운데 행하였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행하다는 것은 ‘WALK’라는 의미로 번역이 됩니다. 영어에서 WALK의 의미는 산책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주변 경관을 즐기면서 그저 한가하게 걷는 것을 말합니다. 허물과 죄 가운데 걸었던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즐기며 살아왔을까요?

 

바울은 2-3절에서 세 가지 인간이 보편적으로 즐기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과 육체와 사탄입니다. 그는 우리가 이 세상의 풍속을 좇는다고 했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고 했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낸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런 유혹과 즐거움 속에서 한가하게 거닐며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미 우리의 마음을 장악한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의 종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3) 우리는 저주를 받았다.

 

바울은 인간에 대한 절망을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인간이 저주 아래 있음을 선언합니다. 그는 우리들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간의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우리 인간의 도덕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과응보의 불가피한 결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는 심판하시는 진노가 있는가 하면 구원하시는 은혜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것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인격적이고 공의롭고 계속적인 적대이며, 그것과 타협하지 않으시려는 그의 확고한 태도이며, 그것을 저주하고자 하시는 그의 결심이다. 나아가서 그의 진노는 그의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함에 있어서 3절과 4절의 대조는 주목할만합니다. 3절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바울은 4절에서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로 작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와 악에 대한 진노는 그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과 긍휼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습니다. 진노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죽음과 종노릇과 저주’, 이 세 가지는 바울이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하는데 사용한 참으로 적절하면서도 적확한 단어들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것 밖에 없다면 인류의 미래는 정말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전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반전의 근거는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4절은 강한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4절은 이렇게 시작되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절까지 인류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 찬 메시지를 전했던 바울은 4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사역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사랑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높이셨습니다.”

 

바울이 의도하고 있는 대조가 보이십니까? 바울은 지금 인류가 가진 절망적인 본질과 하나님이 행하신 긍휼과 자비의 사역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이 설명하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행하신 일과 그 이유들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5절과 8절에서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원문에서는 완료분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발생한 일의 결과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는 구원을 받았고 영원히 그 구원의 상태 속에 남아 있는 백성이다.’

 

특히 성경은 3개의 동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 세 개의 동사 앞에 모두 접두사 ‘syn’을 붙여서 ‘~와 함께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5), 우리를 그와 함께 일으키셨고(6),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6)“ 세 개의 동사 살리다, 일으키다, 앉히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 가운데 있었던 세 가지 사건,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심이라는 사건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는 사도 신경을 통해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우리가 고백하는 그 내용을 우리들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 대하여 이 은혜와 사랑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이 연합은 우리 삶의 가장 궁극적인 구원의 문제에서부터 가장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원칙으로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언하신 그 연합의 삶을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신 이유

 

성경은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하신 사역의 동기에 대한 설명을 잊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모든 동기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4)과 하나님의 사랑(4), 하나님의 은혜(5, 8),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7)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치와 자격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전적인 사랑과 긍휼하심에 의해 우리의 구원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여기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고 의미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고(7)”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 세대의 본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해 가며 다음 세대에 대한 영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8절과 9절에서 성경은 두 가지를 잊지 않고 강조합니다. 첫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이 한 가지 덧붙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에게는 공통의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인격들입니다. 새창조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목적 안에 있는지, 그 목적이 성실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십자가로 이룬 그 목적이 우리의 삶에서 열매 맺고 있는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깊은 묵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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