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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빛의 자녀답게 삽시다.(5:5-14) na kim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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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1. 초대교회 수요예배 / 에베소서 강해

 

8. 빛의 자녀답게 삽시다.(5:5-14)

 

최근 몇 년 사이 남한으로 탈북 했던 소위새터민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으로 난민신청을 해서 남한을 떠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한 연합뉴스에 의하면 그들이 선택했던 남한을 떠나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탈북과 남한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브로커들 때문입니다. 실제로 탈북자들 속에서는 브로커 비용을 둘러싸고 소송과 협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브로커들은 한국 도착 후 약속했던 비용을 내지 않고 버티는 탈북자을 고소하고, 해당 탈북자들은 브로커들이 자신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분노합니다. 한국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유혹하고 한국에 도착하면 돈만 노린다는 겁니다. 둘째는 그들이 느끼는 편견과 차별입니다. 재입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조선 사회는 사람 못살 생지옥이고 탈북자는 어디 가나 천대와 수모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셋째, 그들이 남한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불법을 배웁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도망치다시피 제3국으로 이주하는 탈북자 중 상당수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은행에서 불법 대출을 받거나 '자동차 깡' 수법으로 5천만 원에서 최고 1억 원까지 마련해가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일부 은행 직원과 자동차 딜러들이 이들에게 불법대출과 자동차 깡을 알선해주고 2030%의 수수료를 챙기는 등 이미 제3국 행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도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회를 떠나서 다른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 이유는 자기 안에 있고, 두 사회의 삶의 방식과 문화의 차이에 있고,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이미 공부한대로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입니다. 이방인이면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이방인들의 교회, 그들이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이미 권면하시기를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 받는 자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본문에서 교회와 성도의 삶에 세 번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삶의 기준 빛의 자녀들의 삶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봅시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5:5-7)

 

고전 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에서는 사람의 몸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으로 선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도 분명합니다.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3-4에서는 이것을 성도가 해야 할 마땅한 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에 당위성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 5-7절에서는 이것이 왜 성도의 삶에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지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5)

 

오늘 본문에서음행 하는 자더러운 자, 탐하는 자모두가 우상 숭배자요,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정욕과 욕심과 관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상 숭배의 개념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을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놓아두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우상 숭배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금하는 이유(5-6)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6) 둘째 그들은 하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약속된 은혜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귀하게 여기며 이 세상에서 그것을 즐기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것의 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그러나 분명한 진리입니다.

 

3) 헛된 말로 속이는 사람들(6)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을 속이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바울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영지주의자들입니다. 초대 교회에 영지주의자들이 미친 해악은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죄는 영혼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으므로 육신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무런 징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악한 삶을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게 했습니다.

 

오늘날도 영지주의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 무리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와 축복만을 강조하면서 성도와 교회의 세상에 대한 영적 의무와 책임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경고하시기를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7)고 하셨습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14)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가르치시면서 성도의 삶에는 기준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빛이 되는 삶입니다. 이전에는 모두가 어두움이었습니다.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생명으로 옮겨졌고 빛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어두움이란 무지와 잘못과 악함을 상징하고 빛은 진실함과 의로움을 상징합니다.

 

에베소서 4:17-18에는저희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들의 삶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되었습니다. 성도와 교회는 빛이 되었고, 빛 가운데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빛이 이방인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환경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 존재가 빛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

 

그러므로 이제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빛의 자녀들처럼,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빛 된 성도의 삶의 열매는 어떻게 나타나야 합니까? 바울은 착함의로움진실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엡 4:22-24에서의 새사람의 삶의 모습 즉,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성도의 삶의 동력이 의와 진리와 거룩이요, 삶의 열매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빛의 자녀로, 빛으로 살고 있는지를 점검할 때 선언적인 의미, 즉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은 우리들의 삶의 동기가 무엇이며 열매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바울은 다음 구절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두 가지 삶의 길(10-11)

 

에베소서에서는 성도의 삶의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최소한 지켜야 할 소극적인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적극적으로 이루고 만들어야 할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는 열매가 없는’, 악한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11) 초대 교회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의 삶의 현장에는 성령의 열매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열매 없는 삶을 가르치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열매 없는 삶을 주장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도리어 책망해야 합니다. 거짓과 악과 싸우는 것도 성도와 교회의 의무입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에 대해 삶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은 어떤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미 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는 삶의 열매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열매들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과 더불어 사는 우리들의 인격과 삶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세상이 요구하는 인격으로 점점 변화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격적으로 점점 변화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것은 세상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빛에 드러나게 하라! 빛이 되게 하라!(13-14)

과 관련하여 교회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빛 앞에 우리는 드러내는 일이고, 나아가서 우리가 빛이 되는 일입니다.

13절을 봅시다. “그러나 책망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But everything exposed by the light becomes visible,) 고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빛이 우리의 연약한 삶을 비출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적당한 타협을 원하거나 더 깊은 곳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숨기지는 않습니까? 복음으로 우리의 죄와 악을 책망하는 것은 빛 앞에 우리의 어둠을 드러내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생명 나무에 우리를 접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사야 61:1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14)”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이 빛 앞에 우리는 내려놓는 것은 잠자던 우리의 죽은 영혼을 깨우는 일이요, 그리스도 앞에 우리가 새로운 생명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빛 앞에 우리를 계속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어둠이 빛 앞에 드러나는 고통스런 과정을 경험하고 난 다음 우리는 비로소 빛된 삶으로 들어갑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날 때처럼 빛되신 그리스도 앞에 우리의 모든 연약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경험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빛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로운 사회, 하나님의 나라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과정이 필요하고 눈물과 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한 삶, 사랑을 받은 자녀와 같이 사랑할 줄 아는 삶, 그리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빛으로 사는 삶 이러한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 삶에 더욱 깊이 들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빛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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