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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성경적 신분 관계(엡 6:5-9) na kim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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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8. 초대교회 수요예배 / 에베소서 강해

 

12. 성경적 신분 관계(6:5-9)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오늘날 모든 사회와 국가가 인정하는 보편적이 가치이자 상식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장하여 한 번도 신분에 대한 차별을 받아보지 않은 우리가 노예들을 향한 복음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신분으로 억압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분에 대해 복음이 가진 진지하고 엄중한 목소리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채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호복종의 의무(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의 절정은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자발적 복종과 헌신적 사랑을 통한 부부간의 상호 복종, 감사가 바탕이 된 순종과 사랑이 바탕이 된 존중을 통한 부모와 자녀간의 상호 복종과는 달리 이 관계는 적대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관계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보장되는 수탈적 관계이기 쉽습니다. 이 관계의 강자가 약자에 대한 이익과 권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약자는 강자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사회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라의 모형이자 그림자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이 땅 가운데 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성경이 기록되고 있던 당시대의 모순적 관계로서의 신분 제도 - 교회와 성도는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1. 노예제도와 교회

로마 제국에는 시민보다 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약 6000만의 노예가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 가정의 소유가 되어 가사일이나 농사에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했고 의사나 교사, 혹은 전문인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법적인 신분이 노예였기 때문에 사고 팔리며 악성 채무를 청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법적 권리를 가지지 못했고, 사소한 잘못으로도 매를 맞기도 하며, 이나 눈이 뽑히기도 하며, 심지어 사나운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지성인들도 노예를 일종의 영혼이 있는 소유물정도로 이해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주후 1세기에는 노예들의 신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로마 제국의 팽창으로 노예의 인구가 많아지고 각 지역에서 잘 훈련되고 교육받은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로마 사회의 노예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시대의 스토아 학파의 일원이었던 세네카는 노예들의 인간적인 가치를 주장했습니다. 로마 시민 사회가 노예로부터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주인은 노예에 대해 형제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결국 노예가 아닌 주인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로마의 시민이자 복음 전도자인 사도 바울을 통해서 노예와 주인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가르칩니다. 복음이 한 시대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피도록 합시다.

 

2. 노예들을 향한 권면(6:5-8)

 

바울이 노예들에게 복음으로 권면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이요 바리새인이요 철학자였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안정된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신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노예는 자신들의 편리와 이익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초대 교회에도 성도들의 신분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얻는 새로운 신분, 천국의 시민이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동일한 신분과 사회적인 신분의 괴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먼저 노예들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라.

 

5-7절에는 세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순종하라, 진심으로 행하라, 기쁨 마음으로 섬기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들과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주인에게 순종하고 그리스도에게 진실함으로 대하듯 주인에게 참된 마음을 다하여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듯 기쁜 마음으로 주인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여러 서신에서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의 원칙을 밝혀온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죄인지, 부모의 죄인지, 아니면 불합리한 세상의 탓인지... 세상에 나면서부터 노예가 되어 평생을 불안하게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기쁨 가운데 순종하는 일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을 원망하며 죽음만 기다리는 삶 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으로 노예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약한 나라에 태어나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말발굽에 나라와 민족을 빼앗기고 가족이 해체되고 이역만리 땅으로 끌려와서 노예의 삶을 산다고 합시다. 그들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은 빚으로 말미암아 노예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빚이 아닌 남편이나 부모의 빚으로 노예로 팔렸을 수 있습니다. 원망과 한숨, 비탄과 후회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복음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의 새롭고 참된 가치를 회복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세상은 자신을 가치 없는 노예로 여기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가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그러하고 주인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노예의 분노와 증오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의 기쁨과 당당함으로 주어진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신분 제도와 로마의 창과 칼로 해석되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로 새롭게 해석됩니다.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합리합니다. 이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우리 주님은 복음적인 시각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 신분의 차이가 복음의 은혜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대로 받을 것이다!

 

벧전 2:18-21은 당시 노예들 가운데 예수를 믿었던 성도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노예들이 받을 수 있는 불의한 고난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인내하라고 권면합니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위로합니다. 20절에서는 칭찬이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노예의 삶은 강제만 있고 칭찬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이 땅에서의 삶은 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받는 고난과 영광의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자신이 원치 않는 고난 가운데 신음했던 종들은 하나님의 신원의 때, 하나님의 위로의 때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노예들을 위로하기를 각 사람이 행하는 모든 선은 종이나 자유자나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그대로 보상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세계의 모든 차별이 사라집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세계에서 구별지어 졌던 모든 신분이 철폐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그 삶에 있어서 얼마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새로운 관계로 살았는가에 따라 그대로 보상받게 됩니다. 이 상을 바라보며 노예들은 위로와 힘을 얻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3. 주인들을 향한 권면(6:9)

 

귀족들에게 있어서 노예들은 인격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재산적 가치로 따질 수 있는 소유물에 불과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노예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발견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주인들에게 주는 첫 마디 말씀을 주목해 봅시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하나님은 노예들에게 주었던 명령을 상전들에게 함께 주셨습니다. 노예들에게 준 명령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 같이 주인을 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노예들에게 이 명령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인들에게 같은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노예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예수님의 종말론적인 명령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마지막 날에 왼편에 앉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의 핵심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심판자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기를 그들이작은 소자하나를 외면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인들은 먼 곳에서 예수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자신의 노예들의 거친 삶의 환경 가운데서 예수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되는 명령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위협을 그치라!’입니다. 여기서 위협이라는 것은 종들을 협박하는 언어적인 폭력에서부터 물리적인 폭력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위협을 통해 종들의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종들의 인격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인간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협박하고 급박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대하듯 성실과 진심과 친절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인들이 노예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종들과 상전들의 영원한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들을 모두 그 앞에서 종이요 자녀요 양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둘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 즉 신분이나 능력을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에 따라 취하지시 않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종이나 주인이냐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가 말씀을 따라 진실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관계

 

복음이 어떻게 사람의 관계를 재해석하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관계과 사회는 무엇인지를 부부, 부모,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핵심으로서의 종과 주인의 관계를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복음적 관계의 변화의 예로서 제시된 것이기 때문에 이 관계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삶의 현장 가운데서 복음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삶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그리고 모든 관계를 재해석합니다. 복음이 보여주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늘 승리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관계에 참된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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