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론 - 3. 직분자가 갖춰야 하는 덕목 | na kim | 2017-0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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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6. * 본 문 : 고린도전서 12장 27-31절 말씀 * 제 목 : 직분 - 3. 직분자가 갖춰야 하는 덕목 지난 주에 있었던 미국 대선의 결과는 여러 모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공화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후보로서의 언행과 살아온 과정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던 한 트럼프가 당선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최악의 선거라느니, 덜 싫어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느니...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졌고, 미국은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보다 잘 준비되어 초거대국가인 미국을 안정되게 운영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 중 하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덕목일 것입니다. 과연 대통령이 되려면 어떤 자질과 덕목을 갖춰야 할까요? 자질이라면 학습하고 배우는 측면보다 타고난 성품과 보다 많은 관련이 있을 것이고, 덕목이라면 학습과 노력으로 준비되는 것에 더 많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50%의 지지와 같은 양의 반대를 안고 출발하는 대통령이라면 반대의견을 수렴하고 갈라진 마음과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덕목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맡은 직분과 직위를 잘 감당할 수 있는, 필요한 자질과 덕목을 개발하고 도움을 얻어야겠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 앞에서’ 대통령이라는 직분과 집사, 장로, 권사의 직분은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받은 사명과 은사를 따라 각 사람에게 맡기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교회의 각 직분자 또한 하나님과 맡은 직분에 대해 준비해야 할 덕목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기대하고 또 필요한 직분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조화될 수 있을까요? 가까운 곳에서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부부 집사님(?)이 있습니다. 제가 두 분을 만날 때는 집사님이었고, 작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지금은 전도사... 혹은 비슷한 직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선생님을 하셔서 그런지 언변이 좋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은사가 있습니다. 남자 집사님(?)은 찬양을 기가 막히게 잘 하십니다. 동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듯 한 중저음은 일반 성가대원 10명과 맞먹습니다. 항상 웃고 긍정적이시고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시고 감동적인 기도를 해주시기 때문에 주변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기도원 사역은 그 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잘 맞는 사역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은사와 능력을 가진 그 분들은 실은 한 교회에서 정착하는 일에는 실패하셨습니다. 그분들의 탁월한 은사가 오히려 한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일을 가로막았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도 쉽게 눈에 띄고 중심이 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어느 교회에서도 오래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부에게 아름답고 좋은 은사를 주신 것이 분명하고 두 분 또한 믿음과 사명에 부족함 없어 보이고, 섬기고 헌신하고자 하는 삶에도 모범적인데 왜 교회에서의 적응에는 계속 어려움을 경험했을까요? 고전 12장은 은사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1절에서 ‘제일 좋은 은사’를 소개하겠다고 말합니다. 가장 좋은 은사, 그것은 바로 13장의 사랑입니다. 왜 성경은 모든 은사들 가운데 가장 좋은 은사로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요? 14장 1절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4장은 각종 신령한 은사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은사를 사모하고 추구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모든 은사와 사역을 ‘사랑을 따라 구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4에서도 사랑의 원칙이 강조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왜냐하면 사랑은 각자 다른 은사와 직분과 사명을 가진 성도가 함께 교회로 모여서 서로 협력하며 돕고 사역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한 교회로 모여서 서로를 섬기며 시대와 이웃을 섬기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각양 다른 은사와 직분과 삶의 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각자의 길을 주장하고 각자의 은사만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교회는 쉽게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양 다른 은사와 직분을 주신 것은 서로 조화되어 하나님의 풍성하고 온전하신 능력과 성품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잘 조화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은사와 직분을 하나님의 뜻을 따로 교회와 성도의 유익을 위해 때로 드러내고 때로 감추고 때로 높이고 때로 낮출 수 있을까요? 허락하신 모든 은사와 직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조절되고 조화되는 지혜가 필요하겠습니다. 2. 섬길 수 있을까요? 직분자에게 필요한 두 번째 덕목은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는 자세입니다. 마음 속에 그림 한 가지를 늘 새겨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그림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그들 앞에 엎드려서 세상의 먼지에 얼룩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예수님이 직분자로서의 우리들이 따르고 COPY 해야 할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직분자의 섬기는 삶의 좋은 예가 빌레몬에 대한 사도 바울의 태도입니다. 빌레몬서 1장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교회의 여러 일에 대해 빌레몬에게 영적 권위로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는 빌레몬의 친구가 되고, 그의 종 오네시모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몬 1:17) 오네시모의 모든 잘못과 책임을 자신이 지려고 합니다.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몬 1:18) 그리고 그는 간곡한 목소리로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부탁합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하고 네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몬 1:20) 이것이 그리스도를 본 받아서 삶을 통해 섬김과 겸손의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게도 유교적 관료주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한국 교회는 섬김의 리더십이 정착하기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분을 교회에서의 계급이나 신분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문화와 정신을 정리하고 성경적인 개념으로 사역을 정리해가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모든 직분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며 협력하고 조화되어야 합니다. 3. 공감할 수 있을까요? 세 번째 덕목은 ‘공감’(共感)에 있습니다. 동정(同情)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습니다. 고전 12:26에는 이것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 12:26)라고 했습니다. 한 지체의 고통을 몸 전체의 고통으로 받아서 함께 아파하며 한 지체의 영광을 몸 전체의 영광으로 알아서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화와 개별화가 현대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느낌과 기호대로 살아가려 하고 그것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도 각자 자기 신앙을 ‘알아서 챙기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 교회를 더욱 그러합니다. 서로에 대해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고,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다고들 말합니다. 물론입니다.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서로를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공감하는 능력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관계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오직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지체된 우리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의 아픔과 연약함을 나의 것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형제의 영광과 즐거움 또한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분자들에게 있어서 공감능력은 교회의 영적 정서를 결정하는 중요한 은사입니다. 판단과 정죄가 아닌 서로에 대해 그리스도의 마음과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교회와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4. 좋은 팀이 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회에서의 모든 직분자는 한 팀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3:27) 이 팀에는 아주 유능하고 전문적인 감독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모든 직분자는 한 팀이 되어 서로를 섬기며 세상에 대하여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월드컵 지역 최종 예선에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슈틸리케라는 감독을 몇 년 전에 선임하고 2002년 월드컵 4강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4년 전에 비해서 좋은 선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이란에 패배했고, 내전 중인 시리아와 무승부를 했습니다. 조 2위로 겨우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박문성이라는 축구 해설인이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의 결과를 보면서 의미심장한 칼럼을 썼습니다. 그는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때에 따라선 감독이 축구의 전부다”라고 썼습니다. 다른 감독의 지휘 아래 전혀 다른 팀이 된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에 1-7이라는 유래없는 대표를 기록한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치치’라는 감독이 이끈 최근 6경기에서 6연승하면서 17득점에 1실점을 하는 완벽에 가까운 팀이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에서의 사역은 축구와 같은 지도 모릅니다. 각 선수들은 자신의 기질과 기량을 따라 포지션에 배치됩니다. 공격 지향의 선수를 수비에 넣으면 늘 수비에서 구멍이 뚫려서 실점하게 됩니다. 수비 지향의 선수를 공격에 넣으면 슈팅이 적어지고 골이 나지 않습니다. 빠르고 부지런한 선수를 허리에 넣어서 점유율을 높이고 적진에서 압박해야 합니다. 각자가 선호하는 포지션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있습니다. 잘 맞는 선수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에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해야 합니다. 감독은 선수의 능력을 파악하고 게임 전체를 조율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교회라는 팀의 감독입니다. 선수는 감독의 지휘에 통제되어야 하고 감독의 전략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로소 교회가 팀으로 기능하면서 목표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감독이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다면 직분자에게 허락된 지식과 능력은 은사가 아니라 기능일 뿐입니다. 은사과 직분의 출발은 하나님이시며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교회를 통해서, 각 지체를 통해서 이뤄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로가 좋은 팀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아름답게 꽃 피고 열매 맺는 교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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