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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 9. 말의 맛 이응도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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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예배 - 골로새서 2017. 3. 8.

 

9. 말의 맛(4:2-4:6)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 있다면 입니다. 말은 소통의 수단이면서 사랑의 도구이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서로 소통하며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에 대해 가장 악하게 사용하는 무기가 있다면 또한 말입니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한 생각으로 서로 소통하며 속이고 해칩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수많은 말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말에는 맛이 있습니다. 영양도 있습니다. 칼보다 날카로운 날이 있는가 하면 바늘보다 예리한 섬뜩함도 있습니다. 오늘은 고난과 핍박이 일상화되던 시기에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던 초대교회가 어떤 말로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와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은 골로새 교회가 처했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당시 골로새는 한 때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로서 큰 도시로 역할을 했었지만 두 번에 걸친 큰 지진과 주변 도시들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잊혀져가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믿음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바울이 직접 선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가 성장을 계속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로마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로마는 바울을 수감했고, 로마의 변방 유대땅에서 유래한, 유대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신앙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골로새에는 AD 17년 티베리우스 황제 때에 큰 지진이 있었고, AD 60년 네로 황제 때에도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AD 62-63년경에는 골로새서가 기록되었는데, AD 64년 기름 창고 사고가 원인이 되어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네로황제는 그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씌워서 잔혹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신앙이 안전과 복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박탈과 위협의 원인이 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양한 신학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골로새 지역에는 신비주의적인 토속 신앙이 전래되고 있었습니다. 별들 안에 존재하고 있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점성술이 유행했었고, 그 결과 마술과 신비로 혼합된 독특한 민간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섬겼던 여신은 열광적인 엑스타시와 금욕주의가 혼재하여 몸을 자해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빛의 신 미드라를 추종하는 민간 신앙도 있었는데 이들은 기독교와 비슷한 세례, 성만찬 등의 의식을 거행하면서 기독교와 대립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주의자들과 헬라 철학에서 시작된 영지주의가 함께 교회를 침탈하려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신앙과 문화의 갈등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수용했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지탱해온 삶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장로 빌레몬에게 다가온 오네시모라는 숙제 또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하게 자신에게 잘못한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과연 로마 사회를 특권과 권위로 지배해왔던 귀족 사회가 종들에게 자신들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있음을 인정하여 의와 공평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날 미국 (백인)복음주의자들의 인종차별적 성향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인종이란 자신들의 노력이나 삶의 과정으로 만든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피부의 색이나 국가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태생적으로 획득된 인종 혹은 국적에서 배타적인 유익을 취하려는 시도가 십자가 복음을 믿는 현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날 충분한 신학적 논의가 있고, 온 세상에 복음이 충만한데....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비복음적 권력과 이익에 집중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민이었고, 골로새 교회의 문제였으며,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께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골로새 교회를 권면하기를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라고 했습니다. 단순하게 기도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기도를 둘러싸고 있는 말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계속해야 합니다. 둘째는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 교회가 우상과 시험과 유혹이 가득한 도시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일, 어려운 현실을 한탄하고 원망하면서 자기 소원에 집착하지 않는 일, 비복음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오직 복음으로 기도하며 선한 소원으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일.... 어찌 쉽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도할 것, 즉 하나님과 친근히 교통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은 바로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 즉 계속하는 것이며, 삶의 조건들에 주목하지 않고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일이며, 세상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맛있는 말’,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소통하는 신적인 대화입니다.

 

2. 성도와 교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있는 선교팀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서로에 대해 해야 할 가장 좋은 말은 서로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 필요한 요소를 바울은 몇 가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형편이나 상황의 개선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투옥의 이유가 되었던 복음의 확장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합니다.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감옥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순서나 기도의 내용과도 다릅니다. 아마도 우리는 자신의 형편이나 고통에 대해 먼저 기도를 부탁할 것입니다. 자신이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혹은 벗어나도록 부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의 관심은 오직 복음입니다, 자신의 삶에 다가온 고통의 이유가 복음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복음의 확장에 자신의 삶이 쓰임 받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돕고 기도하면 4절에서는 자신이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합니다.

 

성도와 교회는 서로 나눠야 할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형편과 자신의 사정에 근거한 대화는 항상 벽을 만나게 됩니다. 모두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이해받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성도와 교회에서 생명을 살리는 맛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골로새 교회에 대한 부탁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이해되고 나의 사정을 호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세상에 대하여

 

5절에서 외인(外人)에 대하여라는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라는 말과 같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불신자들에 대해 어떤 태도와 말을 해야 할까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불신자들에 대한 비슷한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다른 서신들과 함께 이해하면 좋습니다. 먼저 고전 5:12를 봅시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 5:12-13)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 4:12)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권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신앙 혹은 신학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믿지 않으므로 지옥에 갈 것이라든지 성경적이지 않으니까 사탄을 따르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복음의 대상이지 우리의 기준으로 적용하고 평가할 대상은 아닙니다. 둘째,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혜롭고’ ‘단정하게행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삶의 모범을 보이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셋째, 세상과 불필요한 논쟁이나 갈등을 피해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는 기준과 가치가 다릅니다.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교회가 해야 할 것은 그 다름을 삶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세상의 가치에 대해 교회가 관여하고 가르치려는 태도는 불필요한 감정과 역량의 소모만 가져올 뿐입니다.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정교분리를 강조하고 있는 존슨 수정헌법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수백 명의 교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존슨 수정헌법을 없애고 완전히 파괴’(totally destroy)해서 신앙을 대표하는 이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종교의 자유는 신성한 권리이다. 그러나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 정부는 종교 자유의 수호를 위해 모든 힘을 다 기울이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미국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국가이다. 우리의 삶의 질은 물질적인 성공이 아니라 영적인 성공에 의해 정해진다....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부자들 중 많은 이들이 매우 불쌍하고 불행하다.”고 말했습니다.

 

존슨 수정헌법 조항은 1954년 제정된 것으로 세금면제 혜택을 받는 교회 등 비영리단체들의 정치 활동이나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정교분리의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이를 어길 경우에는 면세 혜택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뉴욕 타임즈는 그의 이러한 발언과 정책이 자신의 지지 기반이 되어온 보수 기독교 단체들에 큰 승리를 안겨주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와 법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그의 이러한 정책에 흔들리는 교회가 문제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강자가 되기를 원하고, 정치권력에 편승하고 이용당하는 것은 골로새서에서 말하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과 맞지 않습니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 판단하고 정죄하며 다스리려는 시도는 이미 카톨릭에 대한 종교개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가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고 권력화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교회는 성도의 삶으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4. 핍박자들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영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4:2-6)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요? 은혜 가운데서 말해야 합니다. 말에 은혜가 있고 사랑과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적대하고 핍박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은혜로 간을 해서 맛있는 말의 성찬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받았고, 은혜 가운데 있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제일 좋은 요리사가 되어 교회를 양념합니다. 세상이 교회에 대해 도전할 때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말로, 거룩한 삶으로 그들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도전하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맛있는 말을 내놓게 될 것입니다.

 

성도와 교회의 말에는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은 성령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상처와 분노가 쓴 맛을 내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교회에 세상의 맛이 밑간으로 배이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내가 맛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맵거나 짠 맛을 강요하지도 않아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핍박자들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맛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말씀의 성찬을 매일 생산하는 참 좋은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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