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강자 - 3. 인내, 지치지 않는 마음 | 이응도 | 2017-06-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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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예배 영적인 강자로 살다. 2017. 4. 26. 3. 지향성 있는 일상(눅 2:36-37) 지난 주일, 홍집사님을 방문했을 때... 실은 맑은 정신으로만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알아보시고 많은 것을 기억하셨지만 시간의 흐름에 대해 거의 감각을 잃어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40년 전의 일과 지난 해 있었던 일, 그리고 지금 있는 일들이 함께 현재의 일로 인식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병원의 방문실에 앉아서 3시간 정도 다소 질서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좋은 시간이었고, 꼭 가지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만... 그 중에 제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실 편찮으시기 전에도 종종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아무 도움도 안되는 늙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미안해요. 귀찮고 힘들지요...?” 뭐 이런 류의 말씀입니다. 어떤 대답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어떻게 대답을 해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혹시 여러분도 이런 말씀을 하실까... 아니면 제가 없는 곳에서 여러분에게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을 하실까... 염려되어서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목회자에게 모든 성도는 섬김과 감사의 대상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씀을 안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서로에게 전혀 옳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마음이 저변에는 당신들께서 이미 많이 늙었고, 이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성도가 되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걸출한 책을 쓴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자신의 멘토이자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덴버 신학교의 학장이기도 했던 그라운즈박사입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가 그의 책(영적 성장의 길)에서 그라운즈 박사를 소개할 때 이미 그는 90이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나이 90이 넘은 그 신학자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점점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서 가르침을 구하고 그와의 교제를 즐겼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지친 삶에 위로와 격려를 주고 있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자신의 스승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문화는 예순 다섯이면 은퇴할 나이라며 그 뒤에는 플로리다나 애리조나에서 놀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한다.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여기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예순 다섯 이후에 가장 유용한 세월을 맞았고,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있는데 말이다.” 1.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자신의 스승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를 관찰합니다. 몇가지 답을 찾았습니다. 첫째 그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삶과 이웃을 보살폈습니다. 소명과 신념이 그의 삶의 동력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소명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평생을 그 일에 최선을 다해 헌신했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지혜와 신념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고 싶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그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외부 환경에 오는 시련과 시험 속에서도 잘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고, 신학교의 학장으로서도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련이나 시험도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인격을 침탈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고든 맥도날드가 발견한 그의 스승의 인격의 비밀은 ‘지향성이 있는 일상’에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은 대부분 평범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상황이 일상의 다양한 변화를 만들고 주도합니다. 하지만 그라운즈 박사는 달랐습니다. 먼저 그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삶의 방식을 유지했습니다. 대신 그는 영성과 신학에 대해서만은 달랐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라는 단순하며서도 지향성이 있는 원칙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스승에 대해 소개하는 것은 인간관계에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늘 그를 이해하며 지지했습니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그와 일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자신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2. “안타까운 마음으로 디모데....” 사도 바울은 자신의 순교를 앞두고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거듭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목회자로 건강하고 바른 역할을 감당하기를 당부했습니다. 아마도 디모데에게는 많은 장점과 더불어 뚜렷한 약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먼저 바울은 교회 앞에서 디모데를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19-22)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직접 갈 수 없는 빌립보교회에 디모데를 보내서 자신의 뜻과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직 젊고 부족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가 만족해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여 먼저 그를 칭찬합니다. 그는 사도 바울을 대신해서 진실되게 빌립보 교회의 형편을 알려줄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가 어떻게 훈련을 받았고 성장했는지를 기억합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 같이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섬기며 복음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문제는 바울과 함께 있는 디모데는 안정되게 보이는데, 바울을 떠난 디모데는 무엇인가 불안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2-16)
아마도 디모데는 목회 현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언급하는 어려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그가 나이 어린 목회자였던 것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어려움이라 하겠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를 지도하던 사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나이나 신학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이제 그들로부터 목회자로 교육을 받아서 각 교회로 보냄을 받은 젊은 사역자들은 어려움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디모데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어려움 앞에서 그 사람이 보이는 영적, 정서적 태도에 있습니다. 바울은 ‘업신여기다’ ‘본이 되다’ ‘전념하다’ ‘가볍게 여기다’ ‘전심전력하다’ ‘성숙함을 나타내다’ ‘계속하다’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모든 표현들은 디모데의 성품과 위기에 대한 반응의 특징들을 요약합니다. 그는 당황했고, 많이 지쳤고, 그리고 목회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경계에 자주 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3. “이것을 계속 행하라!”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들 디모데를 격려하고 권면합니다. 그의 권면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계속 행하라!’입니다. 무엇을 계속할까요? 앞서 언급한 고든 맥도날드 목사의 은사인 그라운즈 박사의 장점 가운데 세 번째는 ‘지향성이 있는 일상’이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무너지지 말아야 할 일상적인 지향들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먼저 그에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해 다른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본이 되는 삶은 나이와 무관합니다. 연소함 때문에 덜 존경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는 삶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젊은 목회자로서의 디모데에게 요구되는 영적인 덕목은 노련함이 아닌 영향력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읽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목회적 일상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이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이미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목회자로 안수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목회자로서의 은사를 허락하셨고, 인정되어 안수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 의미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성숙함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는 인격의 변화가 아닙니다. 목적 있는 지향성의 오랜 결과입니다. 바울은 이것은 그가 교회에 보여야 할 ‘진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목회의 일상적인 사역을 ‘계속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을 행함으로 자신과 성도들을 구원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가장 필요했던 덕목은 무엇일까요? 그는 이미 가르치는 은사와 목회자로서의 사명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목회자로 파송되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복음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목회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나이가 문제가 되고, 때로는 가르침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만두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영적 침체에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그에게 허락된 목회적 은사에 견고하게 자신의 사명과 사역을 지켜나가는 인내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기질적으로 허락된 인내의 은사가 없다면 스스로 훈련 가운데 개발해야 하는 은사입니다. 4.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성경이 잊지 않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요, 다른 한 사람은, 현대 교회가 나이가 있는 여성전도회에 붙이기를 좋아하는, 여선지자 ‘안나’입니다. 그녀는 출가한 후 7년간 남편과 함께 살았고, 남편을 여의고 84년을 혼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100세를 훨씬 넘긴 나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하나님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녀의 삶을 간략하게 몇가지 말로 요약합니다. 그녀는 참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을 일찍 잃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남편을 일찍 잃은 여인은 보호받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일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드물게 여선지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녀가 하는 일상은 단순했습니다. 그야말로 지향성이 있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삶이 지향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였다면, 그녀의 반복되는 일상은 성전을 떠나지 않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참으로 오랫동안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고, 혹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하나님의 때를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금식하며 자신을 단속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성전 아닌 어디서 살았는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는지, 남편과의 7년 이후에 가족들은 있었는지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직 그녀의 지향성 뚜렷한 일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경의 관심은 곧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향성을 반대하는 거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내와 건강한 일상으로 하나님의 때를 만났습니다. 다시 홍집사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늦은 나이에 교회를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어르신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늦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 과부가되고 그리고 84년이 지난 안나도 건강한 일상과 흔들리지 않는 지향성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께 감사했고, 자신에게 허락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8) 그녀의 인내와 일관성 있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마지막까지 메시야에 대해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함께 교회되었습니다. 올해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세상에 보내신 지호도, 주님 만날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홍집사님도 이 땅에서의 숨이 다할 때까지... 그리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 무너지지 않는 /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견고한 지향성과 건강한 일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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