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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강자 - 14. 자유를 위한 훈련 이응도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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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예배 영적인 강자로 살다.

2017. 9. 27.

14. 자유를 위한 훈련(고전 9:24-27)

 

20세기 영국 축구를 대표하는 한 선수가 있습니다. 웨인 루니입니다. 그는 2003년에 호주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처음 출전했고, 그 이후 모든 대회에서 이름이 빠진 적이 없습니다. 2004년에 에버턴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영입되었고,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팀을 대표하는 스타가 됩니다. 저돌적이고 파괴력있는 스타일은 영국 축구를 설명하는 좋은 아이콘이었습니다. 호날두처럼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주지 않지만 힘 있게 수비수들을 파고들고 무너뜨리는 모습에 팬들은 환호했습니다. 저도 그의 팬입니다.

 

하지만 그를 평가할 때 늘 따라오는 말이 있습니다. ‘악동’(惡童)입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것 같으면서도 늘 그늘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의 삶에는 늘 스캔들과 사고가 잇달았습니다. 최근에도 음주운전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벌금과 봉사활동과 더불어 2년간 면허정지를 당했습니다. 실은 그에게 있어서 음주운전은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그는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음주와 관련한 스캔들도 자주 일으킵니다. 지나친 음주와 그로 인해 절제되지 않은 행동의 결과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존경과 위엄을 손상시켰습니다. 가끔 경기를 할 때도 그는 불같은 성품을 이기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경기가 있습니다. 루니는 영국의 국가대표로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합니다. 영국은 우승후보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은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했고, 16강에서 에콰로드를 물리치고 8강에서 포르투갈과 만납니다. 루니는 그날 좀 흥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팀 동료이자 라이벌인 호날두와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후반 17분 루니와 볼을 다투던 카르발류라는 선수가 넘어졌고, 루니는 의도적으로 그의 급소를 밟았습니다. 루니는 퇴장을 당합니다. 영국은 그날 경기에 패배하고 맙니다. 모든 비난이 루니를 향했습니다.

 

이후에도 루니는 여전히 영국을 대표하는 선수였습니다. 각종 대회에 스트라이커 혹은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잡음도 여전했습니다. 잊을 만하면 음주와 관련한 각종 사고가 보도되었습니다. 여성과 도박과 운전은 늘 그의 음주에 동반되는 사고의 레파토리였습니다. 지난 후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맡은 조제 무리뉴감독은 올해 드디어 루니를 포기합니다. 루니는 자신이 프로 선수로서 생활을 시작했던 에버턴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벌써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부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재능은 그의 삶의 습관과 성품에 의해 무너지고 꺾입니다. 그와 같은 팀으로 뛰었던 반 니스텔로이, 호날두, 반 페르시, 즐라탄, 그리고 최근 영입된 루카쿠가 화려하게 꽃 필 때 그는 늘 한 걸음 뒤 그늘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과연 언제까지 한 나라를 대표하며 팬들을 즐겁게 하는 프로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의 팬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목표를 향해 자신을 절제하는 지혜를 그의 재능에 더할 수 있었다면 세계는 역사에 길이 남는 축구 영웅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30이 넘은, 축구 선수로서 전성기를 이미 지난 그에게 여전히 따라붙는 악동’(惡童)이라는 별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향 에버턴에서 그의 선수생활의 마지막이 기념할만한 꽃으로 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자유와 절제

 

21세기 카톨릭 교회의 영적 멘토라 불리는 토마스 머튼은 그의 책 ‘New Seed of Contemplation'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먹고 마시고 싶을 때 그냥 먹고 마시고, 담뱃불을 붙이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담배를 피우고, 자극을 받을 때마다 호기심과 육욕을 채우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여길 수 없다. 오히려 영적 자유를 포기하고 육체적 충동의 종이 된 것이다. , 그의 지성과 의지는 온전히 그의 소유가 아니다. 지성과 의지가 욕구의 힘에 사로잡혀서는, 욕구라는 매개체로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들에게 굴복한다.” (Thomas Merton, ‘New Seed of Contemplation'/New Direction, 1972)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 방종할 수 있는 자유는 실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를 가장한 속박입니다. 그 결과가 말해줍니다. 참된 자유는 목표를 향해 절제할 수 있는 지혜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 시대에 로마의 경기장을 달리던 운동선수들의 삶에 주목합니다. 이기기를 간절히 원하는 선수들은 경기 때뿐만 아니라 평소의 삶에서 모든 일에 절제하며 훈련합니다. 일상의 삶에서의 자유는 경기장에서의 패배가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의 절제와 훈련은 경기장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영광을 얻는 길이 됩니다. 다른 선수들이 먼저 달리지 않은 구간을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달릴 수 있는 맛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일상에서 적절한 자유에 대한 포기 없이 경기장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시험을 치는 학생들이 그러하고, 신앙의 경주에 나선 성도의 삶이 그러합니다.

 

2. 자유와 훈련

 

자유와 관련한 또 하나의 주제는 훈련에 있습니다. 지루하게 반복된 훈련이 숙련된 기능을 만듭니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은 지루한 훈련의 결과입니다. 존 밀턴은 인간의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지극히 중요한 것은 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서 가는 사람들의 삶의 결과를 부러워하지만 그들이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헌신한 시간과 노력을 보지 못합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의 가족 수련회에서 강의를 했던 이병욱 박사를 기억하십니까? 의사 전도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의 간증에서 인상적인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방에 이름 없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자신이 어떻게 전국의 의사들을 가르치고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선교여행을 통해서 수많은 수술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돈벌이와 관계되지 않는다고 해도 선교에 대한 사명감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수술을 경험을 쌓았더니 어느새 암수술의 권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돈을 벌고자 했다면 하지 않았을 헌신과 수고를 통해 그는 탁월함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김동해 집사도 같은 말을 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전세계에서 안과 관련 수술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일년에 절반 이상을 선교지를 누비면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반복된 수술의 경험이 그 어떤 안과질병도 다룰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 저들처럼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물론 오늘날 왜곡된 성공의 시스템을 만드는 사회 속에 살면서 부모의 성공을 이어받기도 하고, 악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오랜 노력과 훈련과 연구의 결과로 삶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의 삶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 저들처럼 되고 싶다...”라는 부러움이 나도 저들처럼 훈련해야겠다라는 결단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비참하게 하는 감탄일 뿐입니다.

 

3. 자유와 계산된 고통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아주 중요한 신앙의 핵심을 만납니다. 다니엘 3:16-18을 봅시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3:16-18)

 

이미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제국의 신하로 훈련받는 과정에서 고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산해진미를 거부하고 채식으로 살았습니다. 각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온 소년들이 느부갓네살이 먹는 산해진미로 배부를 때에 그들은 채소와 물만으로 자신들의 존엄과 믿음을 지키며 산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고통은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의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고통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채식만으로도 더 건강하고 명석한 소년들이 되었고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담대하게 왕의 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을 수 있었고, 풀무불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이유입니다. 그들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가 믿음으로 사는 그들에게 항상 함께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때로 그들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이 있고, 그들의 의식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돕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미 치열한 삶의 여정에서 훈련한 결과가 그들의 믿음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3:16-18의 선언은 그 열매입니다. 그들은 모든 시험에 대한 믿음과 인내의 결과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은 고통을 지불하고 하나님을 얻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4. 자유와 개인의 일상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자신을 말리는 사울왕과 신하들에게 아주 중요한 한 가지 간증을 합니다. 객관적으로 그들의 말이 옳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 17:33) 하지만 다윗은 이런 일반적인 판단을 뒤엎는 자신만의 경험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4-37) 들에서 양을 치던 한 소년으로만 생각했는데 그의 삶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반복된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먼저 야생과 싸웠던 경험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짐승과 싸워 이기게 하셨으므로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우면 골리앗도 이길 수 있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습니다. 짐승들과의 싸움을 어떻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장수와의 싸움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싸움의 경험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이 있었고, 그는 이 경험을 근거로 싸움에 나섰습니다. 이후에 다윗은 모든 전쟁에서 단 한 차례의 패배도 없이 승리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학습과 훈련이었습니다.

 

들판에서 양들을 자신의 뒤에 놓고 처음으로 사자와 맞선 소년 다윗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겨우 사자의 위협을 이겼더니 그 다음 날은 곰을 만나고, 그 다음 날은 이리를 만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맹수들과 싸울 때 먼 훗날 내가 골리앗이라는 장수와 싸울 것이며 그 결과로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소년 다윗은 목자로서의 자신의 삶의 일상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두려움과 염려를 이기고 매일 최선을 다하는 그를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품으셨습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하나님은 아름다운 훈련으로 여기시고 그 무릎과 팔과 모든 근육에 힘을 더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훈련장에서 매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와 더불어 살고 참되고 진정한 영적인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와 교회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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