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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강자 - 15. 지성과 감성 이응도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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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예배 영적인 강자로 살다.

2017.10. 4.

15. 지성과 감성(6:8-15)

 

지난 여름부터 가끔씩 아이들과 카드 게임을 합니다. 꽤 재미있는 게임이 많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던 카드게임을 엄마, 아빠와 하는 것이 재미있나 봅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이기려고 합니다. 저 역시 비록 애들한테서 배워서 하는 게임이지만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아시다시피 성일이는 11, 승하는 이제 7살입니다. 그런데 이 두 녀석이 나름대로 전략을 수립합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를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을 감추고, 다른 사람의 카드를 읽으려고 표정을 봅니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석합니다. 마지막 한 장의 카드를 던질 때까지 감정을 조절합니다.

 

생각해보면 저 역시 어릴 적에 그랬습니다. 동네 형들에게서 카드와 화투를 배웠고, 구슬과 동전을 놓고 홀과 짝을, 혹은 이찌, , ...을 외쳤습니다. 게임의 법칙은 비슷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기고, 감정을 조절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으려고 애썼습니다. 다행히 저는 구슬이나 동전을 두 손에 쥐고 흔드는 게임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카드를 놓고 서로의 마음을 읽는 게임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생각하고 결단하는 것,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는 것 -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을 가장 닮은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면 사람은 이 선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대하며 범죄하기도 합니다. 이성과 감성은 그래서 양면의 칼과도 같습니다. 훈련되고 절제되어야 합니다.

 

1. 영성과 지성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스데반을 만납니다. 성경이 그를 평가합니다. 그는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6:10) 그들 중에 누구도 스데반의 논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이었고, 청중은 유대인들이었으며, 그들은 종교적인 관심과 열정이 많았습니다. 스데반이 지금 전하고 있는 논리는 예수의 죽음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7장에 보면 법정에서의 그의 설교는 구약의 모든 성경을 꿰뚫고 있었고,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과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청중 가운데는 청년 사울이 있었습니다. 사울 또한 스데반의 논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청중들과 함께 분노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7:54) 그들이 분노할수록 스데반은 더욱 바다와 같은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청중은 더욱 분노하고 사울 또한 그렇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55-60)

스데반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영성을 겸비한 지성입니다. 그는 마치 깊이 흐르는 강물과도 같습니다. 고요하고 깊습니다. 그 깊이와 평안함을 감당하지 못해서 유대인들을 돌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강물일수록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강물에 돌을 던졌더니... 결국 그 돌 또한 강물이 되고 맙니다. 스데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그의 옷을 아서 돌 던지는 것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졌던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열정과 더불어서 지성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섬긴 사도입니다. 그의 지성은 헬라의 철학과 문화를 근간으로 하던 지중해 인근 국가들에 복음을 전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길에 세례 요한이 준비되었던 것처럼 사도 바울의 길에 스데반이 준비된 것일 수 있습니다. 희생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일 스데반에 없이 사도 바울이 선교 사역에 나섰다면 그는 좀 더 일찍 순교하거나 역할을 다 감당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가 보여준 깊은 강물을 기억합니다. 바울에게는 스데반이 죽음 가운데 보여준 지성의 향기가 베였습니다. 스데반과 바울이 전했던 복음을 배라고 하면 그들의 지성은 깊은 강입니다. 복음과 만난 지성이 보다 아름다운 영성으로 교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성도와 교회의 지성은 복음의 가장 좋은 도구입니다.

 

2. 지성 - 훈련되어야 합니다.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 1841~1935)는 미국의 법학자입니다, 1902년 부터 1932년 까지 미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간결하고 함축된 의견과 선출된 입법기관의 결정에 대한 존중으로 유명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미국이 팽창하던 뉴딜 시대에 보수적인 법관 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자주 진보적인 소수 의견을 진술하여 미국의 법 및 법학의 발달에 기여하였습니다. 기본적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루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3년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아흔 두살이었던 홈즈는 플라톤의 철학 서적을 읽고 있었습니다. 마주 앉게 되었을 때 루즈벨트가 질문을 합니다.

 

대법관님, 이 연세에 플라톤을 다시 읽으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홈즈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실용주의자인 대통령에게 말합니다.

 

, 각하... 저는 저의 지성을 훈련하기 위해서 플라톤을 읽습니다.”

 

지성은 훈련되어야 합니다. 지성은 지식의 나열과 다릅니다. 오늘날 언론과 매체를 통해서 수많은 정보가 생산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인류의 다른 세대보다 지성적일까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은 많으나 지성은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은 습득하면 되지만 지성은 훈련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지식을 copy하는 것은 지성이 될 수 없습니다.

 

잘 훈련된 지성은 포용적이면서 겸손합니다. 대화와 의논을 통한 새로운 결론을 얻는데 자유롭습니다. 새로운 문화나 생각에 대해 도전적입니다. 그 모든 것이 훈련과 성장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 문화는 지성의 훈련보다 정보의 처리에 더 많은 강점이 있습니다.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정보 속에서 야만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성이 없는 영성은 소통에 약할 수밖에 없고, 다른 생각과 논리에 대해 폭력적입니다. 지성을 사용하는 것과 비진리와 타협하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지성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더 많이 읽고 묵상하고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비로소 쏟아지는 돌들과 깊고 추운 감옥 가운데서도 넓고 깊은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3. 감정 - 다스림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에 대해 즐거워하셨지만 단 하나 아담의 외로움에 대해 좋지 않다고 판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느끼셨던 외롭다라는 감정, 그것은 사람에게 주신 가장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며 만족을 느끼고 갈급해하며 슬퍼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때로 하나님과 함께 하며, 때로 그것으로 범죄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조절되고 다스려야 할 영적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거절당하자 감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정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죄가 그를 원한다라고 했습니다. “죄를 다스리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가인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죄를 다스리는 일에 실패하고 죄가 주도하는 감정에 따라 행동합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입니다.

 

그는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4:5-8)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우리의 감정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훈련하고 다스리지 않으면 죄성은 그것을 사용하여 먼저 자신을 무너지게 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풍성한 교통함을 위해 허락하신 감정은 조절되지 않을 때 죄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4. 감정을 훈련한다는 것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한 때 자신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감정을 훈련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 내가 감정 때문에 옳은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때로 자존심이나 분노가 진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나의 잘못이나 부족함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하며 유익한 것인지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훈련되지 못한 감정을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둘째, 최근에 했던 중요한 판단과 결정들을 살펴봅시다. 분노나 두려움, 염려나 슬픔 등이 내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습니까? 훈련되지 않은 감정, 불안정한 정서적 상황에서 결정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대가를 삶으로 지불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훈련되고 평안한 정서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훈련된 감정은 늘 책임과 관련이 있습니다. 상황이 감정을 결정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중해 바다 위에서 폭풍을 만난 배가 있었습니다. 군인들과 선원들, 그리고 죄수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이길 수 없는 큰 폭풍 앞에 모두가 우왕좌왕합니다. 군인들은 죄수들을 죽여서 위험을 줄이고자 합니다. 위기가 만들어낸 두려움, 두려움이 만들어낸 결정입니다. 그때 죄수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7:22-25) 이것이 훈련된 영성과 지성, 그리고 감정의 사람이 내리는 결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은 객관화되고 점검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사울왕이 다윗 앞에서 느끼고 있던 감정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면, 가인이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 앞에서 손을 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제자라고 외치던 베드로가 자신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훈련된 감정은 점검된 감정입니다. ? 라고 하는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감정이 건강한 것이고, 그 결과는 삶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많은 선물들을 왜곡해 왔습니다. 지성과 감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허락하신 은혜를 풍성한 감사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더욱 이해하며 서로를 더욱 품을 수 있는 성도와 교회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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