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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강자 - 17. 행복한 소수 이응도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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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예배 영적인 강자로 살다.

2017.10. 18.

17. ‘행복한 소수’(7:1-8)

 

유럽의 중세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귀족과 왕족으로 분류되는 특정 계급의 왕위 계승과 영토 및 이권 분쟁이 전쟁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그 중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100년이 넘도록 계속된 전쟁이 있습니다. 두 나라는, 정확하게 말하면 두 나라의 왕조는 1337년에 시작해서 1453년까지 116년간 전쟁을 계속했습니다. 물론 116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싸운 것은 아닙니다. 휴전과 정전, 그리고 전쟁을 반복했고, 국지전과 전면전이 반복되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있었던 수많은 전투 중에서 아쟁쿠르 전투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왕 헨리 5가 기념비적인 승전의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투를 소재로 세익스피어는 헨리 5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아쟁쿠르 전투는 헨리 5세가 의도적으로 시작한 전쟁입니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전에 있었던 푸아티에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던 프랑스 왕족 장 2세의 미납된 몸값을 내고, 프랑스 내 영국 영토를 영구적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프랑스 왕실이 이 요구를 거절하자 그는 프랑스를 침공합니다. 1415825일 금요일, 북부 프랑스의 아쟁쿠르에 양국 병력이 집결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영국에 불리했습니다. 일단 병력의 수가 3-4배 적었고, 장비에서도 현저하게 불리했습니다. 프랑스군은 당시 영국의 주력 무기였던 장궁(長弓)에 대비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백병전에 대비하여 10000명 이상의 중무장 병력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영국군은 일반 병사로 주로 구성되어 사기가 높지 않았는데, 반면 프랑스군은 귀족의 자녀들이 주력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이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헨리 5세는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합니다. 먼저 아쟁쿠르의 지형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협곡에 숲이 있었고 땅이 부드러웠습니다. 대형 부대가 움직이기에 좁았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질척였습니다. 그는 장궁을 쏘는 궁수들을 전방배치하여 프랑스군을 유인합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프랑스군은 공을 세우기 위해 앞을 다투어서 진군합니다. 영국군의 화살을 막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터운 갑옷으로 무장하고 기병과 함께 전진했습니다. 문제는 8월 장마철이 지난 이후 두터운 뻘로 변한 아쟁쿠르의 숲이었습니다. 무거운 방패와 두꺼운 갑옷과 투구로 프랑스군은 영국군을 만나기 전에 벌써 지칩니다. 화살은 겨우 막을 수 있었지만 말은 이미 쓰러졌고 갑옷은 뻘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전투복을 입고 손도끼와 망치로 무장한 영국군에 의해서 수천의 군사가 단번에 도륙당합니다. 지원군이 말을 타고 도착했지만 오히려 아군을 압박해서 더 큰 패배의 원인이 됩니다.

1. 행복한 소수(小數)

 

영국군의 승리를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만으로 보는 것은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헨리 5세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아쟁쿠르 전투의 핵심이 되는 전술 하나를 사용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한 소수라는 개념입니다.

 

헨리 5세는 무리해서 전쟁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전세가 점점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전쟁에 지쳐가고 있었고, 그들 중에서 징집된 군대는 사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프랑스 영토로 건너와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군수 지원도 좋지 못했고,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 군에 비해 재래식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원정군이었기 때문에 주변지역으로부터 지원을 받기가 힘들었습니다. 군사의 수도 3-4배 적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지면 왕위를 잃을 수도 있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군사들 또한 살아서 돌아가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모아놓고 이후 셰익스피어의 연극 헨리 5의 유명한 구절인 성 크리스핀의 날의 연설(St. Crispin's Day Speech)을 합니다. 그는 행복한 소수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For he today that sheds his blood with me

Shall be my brother...

우리는 소수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소수입니다.

우리는 형제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 나와 함께 피를 흘리는 자는

나의 형제가 될 것입니다.

 

평생을 평민 혹은 하층민으로 태어나서 자신의 이익이 아닌 왕의 이익 때문에 가족과 고향을 버려두고 전쟁터에 끌려온 오합지졸(烏合之卒)들에게 왕이 말합니다. “우리는 비록 적은 수이지만 형제들입니다. 당신들과 나는 한 형제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함께 피를 흘리고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연설을 이어갑니다.

 

지금 영국땅에서 잠자리에 편히 누운 신사들은 이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을 불행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성 크리스핀의 기념일에 여기 함께 싸운 용사들 앞에서 자신들이 남자로 태어난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헨리 5세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본토에서 편히 지내고 있는 귀족들과 왕족들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피 흘리며 싸우는 여러분이 나의 형제들입니다. 여러분은 나와 함께 형제가 되었고, 행복한 소수가 되었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왕의 형제선언을 들은 영국의 군대는 사기로 충만했고, 결국 프랑스 본토에서 영국 전쟁사에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헨리 5세가 언급했고, 세익스피어가 작품에서 다시 언급한 ‘Band of Brothers'는 단단한 전우애를 상징하는 용어로 2001년에 미국에서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 드라마로 만들어졌습니다. 큰 반향과 인기를 얻었습니다.

 

2. ()가 아닌 정신(精神)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싸울 군사를 선별하십니다. 그 기준이 애매합니다. 객관적이거나 보편타당하지 않습니다. 사사기 6장에서 이미 기드온은 미디안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신 줄로 알아서 그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32천의 군사가 모였습니다. 12만이 넘는 미디안에 비해서는 적지만 아직까지 국가로 조직되지 않은 부족연합체로서의 이스라엘에게는 큰 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수군대며 모였을 것입니다. 그저 모인 것 뿐 전쟁을 위한 어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지금 모인 군사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7:3) 이제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싸울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특한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7:7) 결국 하나님은 32천의 군사들 중에서 단 300명을 남기셨습니다.

 

두려워하는 23천명을 돌려보낸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은 97백명을 돌려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을 손으로 떠서 먹는 것과 핥아먹는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일까요? 저는 그 300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질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님이 필요한 수를 구별하는 기준일 수는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만 명 가운데 어느 특정 지방에서 온 사람은 1000명이요, 특정 지파의 수는 2000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300이라는 숫자의 기준에 맞는 구별된 행위가 물을 손으로 떠먹는 행위였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싸울 것입니다. 그들은 행복한 소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소수가 될 것입니다. 수가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과 정신으로 전쟁사에 없는 독특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3. 수에 의미가 부여되다.

 

성경이 예수님 앞에 모였던 사람들을 분류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때로 수를 기록하고 많은 경우 군중으로 구별합니다. 예수님이 모으신 열두 명의 제자들은 따르던 무리에 비하면 극히 작은 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작은 수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를 사람들입니다. 신약 교회의 초석이 될 사람들입니다. 성경적인 'Band of Brothers'의 원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의미 있는 소수의 개념을 예수님이 처음 사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미 구약에서 수()가 가진 가치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7:6-8)

 

하나님에게 사람이 가진 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수가 신앙고백적일 때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이 그러하고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렇습니다. 수를 믿거나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그들이 처절하게 거듭 패배했던 것은 스스로 수를 과신했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영적인 의미를 품은 수, 하나님은 그 수와 함께 역사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의미있는 소수가 되어야 합니다.

 

4. 행복하고 의미 있는 만남을 기대하며

 

저는 우리 교회의 소그룹들이 오늘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던 두 가지를 획득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고 의미 있는 소수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복음으로 부르셨고,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Band of Brothers입니다. 영적 전투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지쳐있습니다. 지킬 것은 많고 반복되는 일상은 지겹습니다. 영적 전투에 나서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이미 패배하고 있고, 환경에 지쳐갑니다. 서로에 대해 행복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것의 의미를 얻지 못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인 스탕달은 세익스피어의 행복한 소수의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는 '행복한 소수'를 정의하기를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 비굴함 속에서는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 감각과 본능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자신이 살고 봉사하는 세계에 반항하는 인물로 제시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탕달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고, 세상과 싸울 때는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행복한 소수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기를 원하는 우리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본성을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영적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하겠고, 무엇에 대해 승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하겠습니다. 또한 함께 영적 전투를 하며 승리를 획득해야 할 행복한 소수와 손잡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아름다운 소수와 함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교회와 목장과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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