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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강자 - 18. 달콤한 고독, 아름다운 동행 이응도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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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예배 영적인 강자로 살다.

2017.10. 25.

18. ‘달콤한 고독, 아름다운 동행’(딤후 4:9-22)

 

우리는 깨어진 상태로 깨어진 공동체에서 사는 깨어진 사람들이다. 우리 각자는 서로서로 소외되었다.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추위를 느껴 함께 모여 보지만 몸에 돋은 가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무서워 뭉치지 못하는 한 떼의 고슴도치와 비슷하다.

배즐 페닝턴 / Brother Monk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고 이훈식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다양한 형식의 삶을 나누는 여러 모임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초대해서 아름다운 동행을 하기도 하고, 의사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면서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아름다운 동행을 하기도 합니다.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같은 마음, 낮은 마음으로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특별한 모임을 만들지 않아도 교회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였습니다. 동행을 시작하는 시점도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함께 교회가 되고 함께 어깨를 걸고 삶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거룩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합니다. 먼저 동행을 끝낸 성도들이 이 땅에 남아 동행을 계속하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응원합니다. 남은 성도들 또한 서로를 향한 마음과 손을 놓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가슴에 품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위에 있는 박스에 기록된 베즐 페닝턴의 말은 이와 반대됩니다. 그는 교회를 깨어진 사람들이 깨어진 관계 속에서 깨어진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삶이 아름답지 않고 관계가 건강하지 않으며 공동체가 든든히 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등이 아닌 가슴에 날카로운 침들이 모여 있는 고슴도치와 같아서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를 안으려할수록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깁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서로에게 아름다운 동행입니까? 깨어진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깨뜨리면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못하는 깨어진 공동체입니까?

 

1. 버리는 사람, 떠나는 사람

 

오늘 본문에서 노쇠한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복음에 헌신하는 일은 1세기 초대교회의 상황에서 생명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일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결단일 수 있습니다. 바다를 잔잔케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며 52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는 것, 이전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복음을 천둥과 같은 울림으로 듣는 것과 예수님에게서 들은 복음을 사도들이 전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도 아니었고 한 때는 핍박에 동참했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었습니다. 아직도 앙금이 남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와 함께 선교의 현장에 뛰어들고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는 것은 정말 큰 믿음이요 용기입니다. 전혀 보장되지 않고 안전하지 않은 일에 자신을 던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바울을 적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또한 한 때는 헌신을 결단하고 바울의 사역을 도왔던 사람입니다. 그의 결단은 순수했을 것이고 그의 용기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1차 선교 여행 때 자신을 떠났던 마가에 대해 2차 선교 여행의 동참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누군가 자신을 떠나는 것, 남겨지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9절부터 11절의 문맥으로 보면 그레스게와 디도는 비록 바울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해도 바울의 울적한 마음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일이나 교회의 일로 바울을 잠시 떠났습니다. 오직 누가만 바울 곁에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빨리 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의미있는 고독

 

생각해보면 바울에게 혼자 있는 일, 남겨지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봅시다. 그가 빛으로, 음성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난 후 3일간의 시간은 철저하게 어둠 속에서 혼자 있었던 시간입니다. 선지자 아나니아가 그를 찾기까지 그는 눈을 떠도 빛을 볼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만나야했고, 자신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혼자 있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며 자신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가장 어두운 시간이며 또 비로소 참빛을 발견하는 시간이었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면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처음 맛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본문에서도 버려짐과 남겨짐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 4:16) 그는 핍박자들에게 사로잡혀 법정에 섰을 때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고독을 경험합니다. 원망할 수 있고 꾸짖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내 옆에 오지 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무에게도 허물을 돌리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17-18절에서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딤후 4:16-18) 사람들이 그를 떠나 있던 시간... 그가 혼자 남겨졌던 시간에 예수님께서 그의 삶에 주어’(主語)가 되십니다. 그는 거듭 주께서....’ 하신 일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셨고, 주께서 건져내셨고, 주께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바울이 경험했던 의미 있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쉽게 유혹받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기 쉽고 사람에게 기대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의, 바울의, 사도들의 사람들에 대한 모든 기대는 무너지고 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모든 교회는 깨어진 공동체입니다. 그 속에서 처절하게 혼자되지 못한다면 나와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울림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자아와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3. 행복한 소수를 부르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를 그리워합니다. 의미 있는 고독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바울이 왜 디모데를 그리워하고 오라고 강권하는 것일까요?

 

고든 맥도날드는 그의 책 영적 성장의 길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소속된 행복한 소수가 있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행복한 소수가 얼마나 크고 많은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참되고 행복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건강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힘과 통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많은 기독교 제국건설자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헨리 나우웬- In the Name of Jesus)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고 행복하고 그리운 소수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디모데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떠나간 사람이 만든 상처를 친밀하고 안전한 관계를 통해서 위로를 얻고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 바울이 사람을 의존해서 평강을 회복하려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서로 돕고 협력합니다. 다만 바울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를 더욱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행복한 소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연약함과 두려움과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소수의 성도들, 함께 기도의 제목과 삶을 나누는 최소한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바라기는 한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다른 성도들에 대해 행복한 소수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일 뿐 현실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행복한 소수가 행복한 교회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진심령과 관계와 공동체 속에 삽니다. 다만 실패하고 무너지더라도 하나님은 그 속에서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는 소수의 관계를 허락하십니다. 그 관계를 통해 위로하고 평안을 주시며 다시 일으키십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이요, 만남만으로 평안이 허락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에게 있어서 바울 또한 그렇습니다. 연약함이나 부족함이 판단이나 정죄의 대상이 되지 않고, 때로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있을지라도 분노하기보다 이해하고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4. 공동체의 관점에서 교회를 보다.

 

또한 고든 맥도날드는 교회 공동체에 대한 서구적 접근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의 그런 생각은 한 때 선교의 대상이었던 아시아권의 국가에서 성경과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개발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이해하는 전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 것은 몇몇 아시아계 그리스도인 친구들 덕택이다. 다른 방법이란, 즉 공동체의 렌즈를 통해서, 서로를 통해서 우리 삶에 그분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 탄탄한 유대를 이루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영적 성장의 길 p.260) 현대 교회를 서구인들의 시선으로, 기능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 사명과 효용성이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은 정부에서, 자선단체에서, 선교단체에서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사회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고 사역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사도 바울의 사역의 현장을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의 현장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역동적 현장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해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사회에서의 핍박보다 교회 안에서의 갈등이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 공동체는 고슴도치들이 모여서 고슴도치의 교회를 만드는 사역일 수도 있습니다. 깨진 심령과 관계와 공동체라는 말은 바울의 선교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함께 일합니다. 사람의 깨짐을 하나도 다시 묶으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합니다. 그는 의미 있는 고독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며, 동역하는 지체들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무너지고 깨어진 모든 관계의 회복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행복한 소수가 되어 먼저 사랑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깨지는 관계 속에서 무너진 가슴으로 살고 있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바울도 같은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서도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행보한 소수가 되기를 결단하면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일으키며 깨진 관계에 스스로 다리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마지막 절에서 디모데를 위해 드리는 기도는 의미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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