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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적 훈련 - 3) ‘홀로 있기’의 훈련 / 몇 가지 방법들(사 50:10) 이응도 목사 20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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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적 훈련 - 3) ‘홀로 있기’의 훈련 / 몇 가지 방법들(사 50:10)

 

최근에 저는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상담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목회자로서 하고 있는 지역 사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을 지난 30년간 이웃 지역해서 해온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셨던 일을 들어보면 지금 저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을 정말 효과적으로 잘 감당해 오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본인의 직장에서 완전히 은퇴를 하고, 그 일에만 더 집중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귀하고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또 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마음 속에 담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상담과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했던 일이나, 그 과정에서 들어야 했던 억울한 말들, 본인 표현으로 수많은 시기와 질투가 있어서 너무 마음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전도를 위해” 그 일을 계속 하고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한 달 진행해온 상담 내용은 그분이 그동안 들었던 억울한 이야기들과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 상담을 마치면서 제가 그 분에게 드린 숙제가 있습니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일을 원한다고 할 때, 그 소원의 내적인 동기(motivation)을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고민해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그 내적인 동기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그 동기를 만들어내는 뿌리는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동기와 뿌리는 같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분은 현재 자신의 동기를 ‘전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 그러한 동기를 만들어내는, 혹은 그것을 동기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또 다른 내면의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그 분과의 상담은 이 세 가지 질문을 해결하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1. 정당화하고자 하는 유혹


그 분과의 상담이 어려운 이유는 그 분이 자신이 살아온 삶과 현재의 상태에 대해 ‘정당화’하려는 욕구를 너무 강렬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좀 성품이 강하신 분이신데, 왜 사람들이 자신을 강하게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60대 중반의, 미국 직장을 다니시는, 영어와 한국어를 잘하는, 미국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한인들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하고 일 해 온, 정말 흔하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많은 것을 이루었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강하게만 보고, 자신에게 이익만 얻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가슴을 나눠주지를 않습니다. 남편은 자신을 떠났고, 딸들은 친근하게 대해주지 않고, 심지어 친자매들까지도 자신을 어려워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내가 할 바를 다했는데, 사람들을 나를 오해하고 이용하고 어려워하고 그리고 비난합니다. 사람들하고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내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자신 아닌 다른 곳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상황이나 환경을 설명하려 하고, 결국 자신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해도, 왜 그런지, 어째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수많은 변명과 변호 속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결국 자신은 정당하며 자신 또한 그 문제의 피해자라는 결론을 얻습니다. 비로소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결론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면 다시 같은 문제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더 깊어지고, 원망은 더 커져갑니다.


삶에 심각한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스텝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것,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소원과 동기와 뿌리들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2. “나의 집은 지금 고요하다.”


십자가의 성 요한 이라는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는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네 가지 영혼의 밤이 있는데, 요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밤(감각의 능동적인 밤) / 크리스천이 자신의 죄된 생활을 회개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살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찬양+기도+말씀+영적 독서+신앙 수련에 힘씀으로 영적 만족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밤(감각의 수동적인 밤) / 앞에 말한 그러한 신앙 수련에서 더 이상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시기이며 오히려 메마름+영적 퇴보에 대한 두려움+기도도 되지 않는 답답한 심적 상태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능동적 신앙 행동이 희미해짐으로 얼핏 메마르다고 느낄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때야 말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총에 의하여 그 영혼이 정화되는 시기입니다.


세 번째 밤(영혼의 능동적인 밤) / 마음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적 기쁨+만족+평화의 충만감 여부와 상관없이(즉,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이고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찬송가 344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이 단계의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현존은 자기의 주관적 느낌이나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感知(감지)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밤(영혼의 어두운 밤) / 이 단계에서 에고(거짓 자아=몸 나=반사적 의식)가 소멸하고 보다 깊고 미세한 영혼의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함께 각 사람의 내면에 있는 공허-無-비존재-어두움을 직면하는 시기입니다. 이 네 번째 밤을 지나 크리스천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참된 일치를 경험합니다


그는 그의 시 ‘영혼의 선언’에서 “나의 집은 고요하다”라는 표현을 두 번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의 집’이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조용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하나님이 거하시고 교통하는 내 삶으로서의 집을 말합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가장 깊은 영성에 이르기 전에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하는 과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다른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얀 어떤 사람이 이 어두움 속에 있을 때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그는 무익하고 해로운 것으로 말미암아 욕구와 재능이 혼란하게 되지 않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허영과 교만과 허무와 거짓 기쁨과 그 밖에의 많은 악에서 떠나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걸음으로써 영혼을 길을 잃지 않고 피하게 될 뿐 아니라 신속하게 전진하게 된다. 그것은 어두움 속에서 걷는 것이 유익을 가져다 주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의욕이 침체되고, 당신의 의향이 메마르고 부자연스럽게 된 것을 알 때,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 내적인 모든 운동에 무력하게 된 것을 알 때 괴로워하지 말라. 다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자유케 하고 계시기 때문이며, 당신에게서 당신 자신의 행위를 제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약간 어려워보기는 위의 글은 오히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와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는 서로 잘 맞지 않는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신뢰하고 의지하면서도 ‘흑암 중에 행하고 빛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살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그 말씀이 빛이 되지 않고 어둠만 가득한 것 같은 삶이 다가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이러한 삶을 해석하되 ‘어둠 속을 걷는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든 노력과 가능성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오직 하나님만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소외와 은혜’의 영적 훈련을 통과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성장과 열매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4. ‘홀로 있기’에 들어가는 몇 가지 방법들


마음을 돌아보는 훈련, 혹은 ‘홀로 있기’의 훈련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내적 홀로 있기와 마음의 고요함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행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을 잘못입니다. 진실한 내적인 고요함 속에 들어간 사람은 실제적인 삶에서는 단순하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얻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길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홀로 있기’의 훈련에 들어가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상 속에서 ‘짧은 시간의 홀로 있기’를 연습하기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시간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되 온갖 잡념과 걱정, 근심으로 혼란스럽게 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짧은 시간들을 그저 보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삶을 점검하고 객관화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면 큰 유익이 됩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우리가 현재 어떤 자리에 처해 있는지를 진실하게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만일 아니니야와 삽비라가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면 그들은 초대교회가 만난 최초의 비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고요한 장소와 시간’을 따로 마련하기


홀로 있기 위해 설계된 고요한 장소와 시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집에 있는 특정한 장소를 정해도 좋고,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기도의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우선 순위로 삶을 배열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정기적으로 조용한 공원을 혼자 걷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께 입을 열어서 기도하는 일과 마음을 열어서 듣는 일을 반복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됩니다.


3) 침묵 훈련


세 번째 방법은 침묵을 선택하는 훈련입니다. 시간을 정하고 말을 멈추는 훈련, 판단하고 변명하고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고요하게 만다는 훈련을 합시다. 다른 사람에게 많이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은 그 말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뜻을 내가 조작하고 싶다는 것을 말합니다. 변명하고 설명하는 말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을 전달하고 진실을 나눌 수 있다면 이 훈련이 성과를 얻은 것입니다.


4)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점검하기


삶의 비전과 목표, 한 해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정기적으로 그것들의 진행 과정을 점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할 수 있다면 주변 모든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며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홀로 있기’의 훈련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홀로 있고 홀로 일어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다른 형제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나의 형제들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온유함을 찾은 것은 홀로 있기를 통해서였다. 홀로 있기에 깊이 들어갈수록 나는 나의 형제들에 대하여 보다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 홀로 있기와 고요함은 나의 형제들을 사랑하되 그들의 말에 근거하여 사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에 의거하여 사랑할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제가 상담하고 있는 그 자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바로 ‘홀로 있기’에 성공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일하고 그 일과 반응으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서고,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외롭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외로움 속에서 우리를 진실되게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 갈증 속에서 채움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는 거짓된 만남과 채움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있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은혜로 채우심을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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