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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적 훈련 - 4) 복종의 훈련 / 복종이 주는 자유(막 8:34) 이응도 목사 201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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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훈련과 성장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11- 9

3. 내적 훈련 - 4) 복종의 훈련 / 복종이 주는 자유(막 8:34)


오랜만에 중국 무협 영화를 한 편 봤습니다. 유덕화와 성룡 등 익숙한 이름들이 있어서 재미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제목 또한 제가 10대부터 열광해왔던 소림무협과 관련된 ‘신소림사’였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지만 그리 썩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다소 어색한 애국적인 결말에 감동을 받던 나이는 지났나 봅니다.


이 영화에서 제 마음에 유일하게 남는 것은 조연으로 나온 성룡과 소림사 주지스님과의 대화 장면입니다. 불가의 선문답과 같은 대화 속에서 반짝이는 지혜를 봤습니다.


소림사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성룡은 외세와 군벌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소림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주지스님은 주방장에게 만일 군벌들이 소림사로 쳐들어올 경우 소림사가 돌보던 백성들과 어린 동자승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갈 것을 부탁합니다. 주방장은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밥을 짓고 반찬을 하는 것 밖에 없는데 어찌 그런 중요한 일을 맡기느냐고 사양합니다. 그런 중요한 일은 좀 더 많이 배우고 좀 더 큰 사람에게 맡기라는 것이지요. 그러자 주지스님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자네, 만일 금 한 덩이와 흙 한 줌을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고르겠나?”

“당연히 금 한 덩이지요.”

“그런데 말이야, 만일 자네의 다른 손에 씨앗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보세. 그 씨앗에게 필요한 것은 금 한덩이일까? 흙 줌일까?”

“그야, 흙이 필요하겠지요.”

“그래, 씨앗에게는 금이 아니라 흙이 필요한게야. 세상에 모든 것은 저마다 가치를 가지고 있다네. 자네가 비록 주방장에 불과하다해도 반드시 가치 있게 사용될 일이 있을게야.”


흙 한 덩이와 씨앗 하나, 영화를 보면서 계속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씨앗을 만나지 못했다면 흙은 그저 세상에 지천으로 널린 흙일 뿐이요, 씨앗 또한 그저 밟히고 사라졌을 것인데, 작은 씨앗 하나와 흙 한 줌이 만나 싹을 틔우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 저희 교회를 방문하고 말씀을 전해주신 최재명 선교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을 만나면 세 번 놀라게 됩니다. 첫 번째 놀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만날 때입니다. 만나는 시간만큼 답답함이 마음에 차오르는 분입니다. 도대체 입을 열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좋습니다.”

“선교 사역하기 힘드시지요.” “괜찮습니다.”

“먼 길 오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


딱딱 끊어지는 단답형 대화 외에는 말이 없는 분입니다. 함께 있다 보면 “아휴... 답답해, 답답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분이 어떻게 생면부지 낯선 곳에서 전도를 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의 설교를 들으면 두 번째 놀라게 됩니다. 어쩌면 그렇게 술술~ 말씀을 잘 전하시는지 감탄이 나옵니다. 자신도 강단에서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놀라는 것은 그 분의 사역입니다. 혈혈단신으로 탄자니아에 가서 아주 적은 후원과 협조 속에서도 정말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의 자녀들을 위해 유치원 사역부터 시작했었는데, 이제 그 자녀들이 계속 자라나서 고등학교까지 건축하려 합니다. 탄자니아의 한 지역에 자신의 생명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한 줌의 흙덩이가 씨앗 하나를 만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비록 나는 세상에 지천으로 널린 흙덩이 하나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흙덩이와도 같은 내게 작은 씨앗 하나를 심어주십니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작은 씨앗, 흙덩이인 나는 그 씨앗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가치를 얻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해도 나에게 씨앗을 심으시는 하나님은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1. 복종의 훈련, 가장 많이 오용되고 있는 훈련


모든 영적 훈련 가운데 가장 많아 잘못 이해되고 잘못 사용되고 있는 훈련이 있다면 바로 ‘복종의 훈련’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교훈과 지혜를 자신의 뜻대로 잘못 사용하여 나쁜 열매를 맺는 일을 잘 합니다. 복종의 훈련은 대표적입니다. 종교는 인간을 쉽게 노예로 만들고, 복종의 훈련은 신앙인이 노예화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종의 훈련에 대해 조심스러운 마음과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교회와 단체가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 앞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면서 결국은 사람의
뜻과 생각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신앙인 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조차도 제자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청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무조건적은 복종과 거부할 수 없는 명령으로 제자들을 만나셨다면 그들은 이미 제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거나 아니면 이미 도망쳐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제자’의 이름으로 남은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복종의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참된 ‘복종의 열매’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복종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복종은 ‘내적인 자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외적으로는 복종하고 따르는 것처럼 보여도 그 내면에 반역이 자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것 같았지만, 결국 그 안에 숨쉬고 성장하고 있던 블순종의 씨앗이 있었던 것처럼 내면의 동의가 없는 복종은 참된 복종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복종은 자신의 의지와 판단을 넘어서는 영적 자유와 만나야 합니다.


2. 복종의 전제, 영적인 자유함


Richard Foster는 이렇게 말합니다


“훈련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있도록 하는 수단이어야 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도록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자유가 목표이고 훈련은 수단이 불과하다. 훈련이 해답이 아니다. 훈련은 다만 우리로 하여금 해답이 이르도록 할 뿐이다. 우리가 노예의 처지를 피하려면 훈련의 한계를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또한 이것을 거듭 우리 자신에게 강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훈련’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자 하는 유혹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에게 목표를 두고 우리로 그리스도의 마음에 보다 가까이 이르도록 이끌어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영적 훈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영적 훈련의 목적은 ‘영적 자유함’ 에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원칙으로 삼고 훈련에 임해야 합니다. 영적 자유함이란 환경이나 외부적 조건, 사람의 욕심이나 욕구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적과 비전을 따라갈 수 있는 내적인 평안함의 상태를 말합니다. 복종의 훈련 또한 영적 자유함을 목표로 합니다. ‘복종과 자유’ - 이 상반되는 두 개념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함께 만납니다.


모든 훈련은 그 훈련의 과정을 마친 후 얻을 수 있는 ‘자유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훈련이 극복하지 못했던 한계나 장벽을 자유롭게 넘을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종의 훈련이 주는 자유케 하는 능력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항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오늘날 우리들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가장 큰 속박 중 하나입니다. 복종의 훈련은 우리에게 그러한 강박과 문제로부터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잊을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삶의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죽을 것처럼 괴로운 일도 돌이켜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그 속에 묶여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공동체가, 교회와 가정이,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 얽매여서 영적이 자유함과 서로를 섬기는 은혜를 상실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복종의 훈련은 그와 같은 옹졸하고 비성경적인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복종의 정신이 영적인 자유를 주어서 우리를 가로막는 문제의 장벽을 훨훨 넘나들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들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우리는 정서적, 영적, 관계적인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복종의 과정, 자기를 부인함


예수님은 막 8:34에서 제자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강조점은 ‘자아 성취’ 혹은 ‘자아 실현’에 있지 않다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예수의 복음이 없는 자아 성취와 실현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에 불과합니다. 성공하는 삶이 우리 신앙의 목표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멸시 혹은 혐오와 구별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열등감과 겸손은 구별되어야 하며, 자기 부인 또한 자신을 가치 없게 여기는 경향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론에서 예를 든 주방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었지만, 씨앗을 만나는 자신을 상상할 때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받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흐려 놓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자기 부인의 과정인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요 21:19)는 예수님의 명령에 응답했을 때 베드로는 참된 자아를 회복합니다.


복종은 자신을 부인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을 가치 없다고 여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말하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뜻과 계획 속에서 자신의 참된 가치를 선언하고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종은 자기 부인의 과정을 거치면서 참된 영적 가치를 회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4. 복종에 이르는 길


일반적으로 복종에 들어가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침묵’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 상황을 조작하고자 하는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말은 마치 칼과 같아서 곪은 곳을 도려내고 잘못된 것을 잘라낼 수도 있지만, 잘못 사용될 때 깊은 상처를 만들고 고통을 만듭니다. 우리는 말로 자신의 허상을 만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control하려 합니다. 말은 마치 거대한 성벽과도 같아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길을 막아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 먼저 침묵함으로 복종의 훈련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복종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모든 관계를 ‘상하관계’가 아닌 ‘상호종속관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지체되었으며 서로가 섬김으로 말미암아 건강하고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어갑니다. 좀 부족해보이고 좀 연약해 보여도 내가 그와 함께 있으므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종은 내면의 동의를 전제로 합니다. 벧전 2:18에서 베드로는 종들에게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철저한 신분 관계 속에서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종’을 요청한 것은 ‘순복하는 마음’에 대한 요청입니다. 외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원함’과 ‘기쁨’이 없는 복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종은 공동체 속에서 모두의 꿈이 이뤄지는 힘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꿈과 계획이 내게 중요한 것이 되고, 이뤄야 할 가치가 됩니다. 그들의 생각과 계획에 순종하는 자유를 누리면서 모든 사람의 꿈이 이뤄지는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참된 복종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봅니다. 나는 한 줌 흙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한 쪽 손에들려 있습니다. 이 흙을 세상에 흩뿌리면 나는 마치 먼지와 같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향한 거룩하고 뜨거운 마음을 품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손에 교회와 지역사회와 이 시대를 향한 거룩한 씨앗 하나를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두 손을 하나님의 뜨거운 가슴에서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나의 삶에 심겼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하나님의 나라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나의 무가치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습니다. 내 삶은 하나님께 복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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