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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 11.내적 훈련 - 6) 섬김의 훈련 / 수건(요 13:14-15) 이응도 201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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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훈련과 성장(2011. 5. 4)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11-11

11. 내적 훈련 - 6) 섬김의 훈련 / 수건(요 13:14-15)

"어떤 면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라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복음을 위해 부모나 집이나 전토를 버리라는 말씀을 더 좋아할 것이다. 철저한 자기 부인은 모험을 한다는 느낌을 준다. 즉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린다면 영광의 순교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을 섬기는 일에서는 우리가 자신을 버리고 죽는 작은 죽음의 경험을 수없이 경험해야 한다. 섬김은 우리를 세상적이고 평범하며 사소한 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적 훈련과 성장 p.206)


리차드 포스트가 말하는 것처럼 ‘내려놓고 버리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그 이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섬김’에 있습니다. 내려 놓고 버리는 일은 순간적 결단으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섬김은 계속적인 자기 부정과 헌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1.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베푸실 때 제자들 사이에는 뚜렷한 갈등이 보였습니다. 그들 또한 정확한 믿음과 지식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위기의식이 있었고 결국 서로 누가 큰 자인지 다투게 된 것입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 22“24) 이러한 토론 혹은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 그들 사이에 반복된 일입니다.(눅 9:46) 물론 예수님도 그들에게 분명히 이런 일들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토론을 반복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내면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요, 그만큼 어렵다는 말도 됩니다.

사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준비된 유월절 잔치가 준비된 집에 들어갔을 때 그들 중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발을 씻을 물을 준비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손님을 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은 종이요, 종이 없으면 주인이 그 일을 합니다.

그리고 주인조차 없는 경우 누군가 가장 낮은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높은 자는 될 수 없다 할지라도 가장 낮은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일에 수종들기는 싫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를 원망하며 마음으로 불평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누군가가 수건을 허리에 동입니다. 대야를 준비하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발을 씻깁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수건은 ‘섬김’의 아주 중요한 징표가 됩니다. 그것을 허리에 동이는 것 또한 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낮아짐을 거부하고 높은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려는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낮아짐과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2. 섬김으로 얻는 자유


예수님의 섬김에는 ‘내적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섬김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질서가 상향 지향으로 달려가고, 모든 사람이 높아지려는 욕구에 자신을 맡길 때 예수님은 그러한 욕구와 경향성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조작하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권위와 권력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세상 가운데 자신을 큰 사람으로 나타내고 싶은 욕구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로 가는 길,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는 일, 다른 모든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할 때 낮은 자리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 - 이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서부터 참된 평강과 자유를 누리지 않으면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리차드 포스트는 '섬김‘을 ’계속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내 삶에서 낮아진 만큼, 내가 스스로를 낮은 자리에서 발견하고 내가 섬긴만큼이 나의 자유함의 정도입니다. 그 자유는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셨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3. 새로운 리더십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위를 가졌다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영적 권위가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영적 권위’가 ‘지배의 서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지배의 서열을 뒤집으셔서 낮은 자의 높은 자에 대한 보복적 지배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사람에 대한 사람의 지배’를 이미 거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종하고 지배하는 지위의 권위, 혹은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을 미치고 필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기능적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가르침에 이러한 내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 20장 2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마 20:25)


이러한 모습의 권위가 세상적인 권위이면서 모든 사람이 지향하는 권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권위가 예수님이 만드신 공동체에서 성립되는 것을 거절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큰 사람과 섬기는 사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과 종이 되는 사람이 함께 있습니다. 사람으로 구별된 것이 아니라 어떤 기능을 감당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서로 높은 사람이 되려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세상적인 질서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서로를 섬기며 서로의 종이 됨으로 말미암아 얻는 자유를 누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이 오신 것은 왕으로서의 지배가 아닌 섬김과 헌신을 위해서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이 땅 가운데 세우고자 하심이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의 공동체에 세우고자 하셨던 참된 리더십입니다.


4. 자기 의에서 나온 섬김 vs. 참된 섬김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리더십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일에 계속 실패합니다. 오랫동안 보고 배우는 동안 그 마음에 감동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살아온 삶과 세상에 길들여진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쉽게 섬김을 결심합니다. 다만 그 결심이 오래 가지 못하고 또 오히려 시험에 드는 것은 그 섬김의 참된 내면의 동기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심령으로부터 자유로운 참된 섬김’과 ‘자기 의에서 나온 섬김’의 차이를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고 나가야 할 섬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위에서 나온 섬김은 인간의 노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때로 사회적인 도표와 조사를 바탕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되는 결과를 가지고 가장 효과적으로 일하는 길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된 섬김은 내면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교통함의 결과입니다. 육체적으로 힘이 소진되어도 내면 깊은 곳에서 늘 새로운 힘이 솟아납니다. 효율성이 아닌 사랑이 그 바탕이 됩니다.

자기 의로 섬기는 섬김은 큰 일을 통한 섬김을 지향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촐되는 섬김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참된 섬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할 때에도 기쁨으로 섬깁니다. 섬길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차별없이 선택합니다.


자기 의로 섬기는 섬김은 외적 보상이 필요합니다. 그 보상은 때로 칭찬이며 적절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진정한 섬김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섬김의 이유와 목적이 주님과의 교통함에 있습니다.


자기 의로 섬기는 섬김은 결과가 중요합니다. 기대 이하의 결과가 나올 때는 마음 속에 분노와 미움이 싹트기도 합니다. 진정한 섬김은 섬김 자체에 기쁨이 있습니다. 친구는 물론 원수까지 섬길 수 있습니다.


`자기 의로 섬기는 섬김은 누구를 섬길 것인지 자신이 그 대상을 선정하려합니다. 계산이 필요하고 결과에 대한 수치적 예상이 필요합니다. 때로 낮은 사람을 섬길 때에도 ‘겸손함’이 주는 사회적 존경과 인정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섬김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막 9:35에서와 같이 ‘뭇사람=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자기 의로 섬기는 사람에 있어서 자신의 정서적 변화에 의해 섬김의 정도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섬길 수 있는 기분’이 되어야 섬길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섬김의 필요가 발견된 모든 곳에서 물 흐르듯 단순하고 순수하게 이루어집니다. 기분이 섬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이 기분을 훈련하게 합니다.


자기 의로 섬길 때 일시적이고 한시적입니다. 섬김을 마치면 자신의 삶의 질서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높아지고 권위를 즐깁니다. 진정한 섬김은 그의 생활의 방식입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자기 의의 섬김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혜가 없습니다. 섬겨야 한다는 원칙이 서면 그것이 때로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계속 고집합니다. 내가 도와야 하고, 섬겨야 하니까 내게 그러한 기회와 자리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섬김의 결과로 세워지는 자신의 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섬김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섬김의 목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섬긴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통해서 섬김의 정도와 과정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의의 섬김은 공동체에 해를 끼칩니다. 모든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수식어를 제거하고 들여다보면 결국 그 모든 섬김은 개인의 영광에 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가장 교호할하고 파괴적인 권위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웁니다. 가장 연약한 곳에서 참된 섬김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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