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 2.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눅 11:9-13) | 이응도 목사 | 2011-09-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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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드리는 기도 - 2.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눅 11:9-13)
톨스토이에 의하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마치 바다에 내려진 그물과 같다고 합니다. 그물이 바다에 잠겨 있는 동안 그물은 바닷물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닷물을 건지기 위해서 그물을 들어올리면 그 그물 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 안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생각의 그물을 건져 올리면 하나님은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사귀기 위해서 우리의 전 존재를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영의 바다 속으로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1. 기도는 안전한 것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어김없이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눅 5:1- 11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만나고 두려워 떨면서 나를 떠나달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때 기도는 때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와 부족함을 발견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두려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변화를 요구받았습니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들에게 변화를 요구합니다. 변화는 두려운 것입니다. 안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결코 우리에게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2. 무엇을 구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합니까? 오늘 읽은 본문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를 하나님 앞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과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도의 제목’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분명한 소원과 기도의 제목을 우리의 마음 속에 두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 문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 문은 하나님에 대해 열린 문입니까?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소원의 문입니까? 3. 산타 클로스와 선물 헨리 나우웬은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에 대해 말합니다. 아이들은 성탄절에 산타클로스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기다리는 것은 산타가 아닙니다. 그들의 관심은 선물에 맞춰져 있습니다. 선물을 얻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산타를 다시 기다립니다. 그 산타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고마운 산타이며, 선물 꾸러미에 선물을 가득 들고 있는 산타입니다. 기도를 요구하는 것(asking)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산타를 대하듯 하나님을 대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사귀며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주시는 선물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 하나님이 나의 1년의 생활에 개입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선물을 손에 쥘 수 있으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시는 것 우리는 오늘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 인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3절을 봅시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이 제목이 무엇인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어떤 소원을 원하는지가 기도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심령 가운데 성령 하나님을 만나고 모시는 것, 그리하여 기도 후에는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된 기도인 것입니다. 악한 부모도 자녀에게는 선한 것을 준다 했습니다. 우리의 완전한 아버지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것, 우리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 바로 이것입니다. 노위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이라는 수사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에 선한 영향을 미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당신의 선하심을 따라 / 당신 자신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에게는 당신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닌 다른 것을 / 당신만큼 값있다고 생각하고 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 아닌 어떤 것을 구한다면 / 저는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직 당신 안에 있을 때 / 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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