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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5. 영성 회복의 7 단계 - 5. 용서(forgiveness/마 6:14-15) 이응도 목사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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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1. 10. 5.

영성 회복의 7 단계 - 5. 용서(forgiveness/마 6:14-15)



용서, 새 삶의 능력(창 50:19-21)


아무리 이를 악다물어도 / 딱딱딱…딱딱딱… 떨리는 턱을 막을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 차가운 감옥의 습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 죄수들의 서늘한 눈빛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 나에게 악을 행했던 형들에 대한 /

얼음장보다 차가운 증오와 분노 때문에 / 손끝까지 얼어붙는 듯 떨어야 했습니다.


형들은 / 그들 안에 있는 상처 때문에 / 나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하여 / 연약한 내게 더 큰 상처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상처가 그들의 인생을 결정했고 / 상처가 우리 가정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 상처를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 어떻게 되돌려 줄 것인지

죽음보다 깊은 감옥의 절망 속에서 / 딱딱 부딪히는 이를 입술로 막으며

나는 얼음 같은 눈물을 흘리며 고민했습니다. /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들처럼 나도 / 상처와 분노 위에 내 인생을 띄워 보내야 하는 것일까요?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유년 시절에 아름다운 꿈을 주셨습니다.

가족을 구원하는 꿈, / 가족의 소망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노예와 죄수로 살면서 / 그 꿈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다 한들 / 내 삶은 하나님이 주신 꿈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 머리 조아린 형들을 바라보면서 / 내 속에 들끓는 두 마음을 느끼면서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 꿈을 이루실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 봅니다. / 형통한 날이 있었습니다. / 곤고한 날이 있었습니다.

형통함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곤고함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 하나님의 뜻이 나를 결정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의 악함이 나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내게 준 과거의 상처가 내 미래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 /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나를 인도하도록 할 것입니다.


형들을 바라봅니다. /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 이를 앙다물며 거부했던 말

내 마음 깊은 곳에 이미 아름드리 자라서 열매 맺고 있는 그 말을 생각합니다.

그 열매를 마음에 품고 형들을 다시 만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비로소 형들의 악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1. 용서는 영성 회복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용서 받기를 원하면서도 용서하는 일에 대해 망설입니다. 예수님은 용서하지 않고서는 참된 용서를 맛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6:14-15의 말씀은 의심이나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용서는 늘 양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용서에 어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오히려 분노나 우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비록 잘못이 내게 있지 않고 그에게 응분의 대가를 돌려주어야 할 위치에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 정서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 심각한 위기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온다면 그것은 성도로서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용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자신의 심판자의 자리에 둘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 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에게 있어서 용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믿음의 본질이자 의무입니다.


2. 용서 받기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용서받기를 원하지만 때로 자존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해서 용서를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일은 나의 잘못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고백하는 일과 관계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인정하고 나의 연약함을 사람들에게 겸손히 고백하는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스티븐 아터번 박사와 데이빗 스툽 박사는 이 일을 위해 다음의 다섯가지 선행 조건이 있다고 말합니다.


1) 하나님께 내 의지를 맡기는 것

2) 내 잘못을 합리화하지 않고 시인하는 것

3) 겸손히 몸을 낮추어 내 행위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것

4)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남에게 입힌 손실을 배상하는 것

5) 나에게 상처 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하지만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자 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 받아야겠다는 자기 의지와 만족에 충실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과 정서를 고려하여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용서하기


‘용서’라는 말은 몇 가지 잘못된 개념들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용서를 거짓되게 만드는 몇 가지 개념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1) 잘못을 축소하기


부부간의 폭행이 있었던 경우 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몇 가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 중 하나는 부부 관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을 축소하려는 것입니다. 견딜 수 없고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이 발생했지만 그것보다는 아직 배우자의 좋은 점과 가정을 중요성을 먼저 생각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면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거짓말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그 가정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잘못으로 드러낼 때만이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을 축소할 때 그 잘못은 축소된 만큼 삶에 남아서 그 삶을 병들게 합니다.


2) 변명하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삶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정당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나쁜 행동에 대해 변명하는 것은 과거를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진술하여 새로운 과거를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3) 회피


진정한 용서는 분노를 부인하지 않고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내가 당한 불의에 대해 격분을 느낄 수 있고, 내가 받은 학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고,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학대자를 미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용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잘못에 대해 분노하기를 회피하거나 그 잘못을 보지 않으려는 시도는 결국 상대방을 잘못된 삶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용서를 가로막는 요소들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용서를 가로막습니다.


1) 상실에 대한 두려움


- 분노가 제공하는 에너지를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정죄와 분노를 통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관계에서의 우위와 권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 도덕적 우월감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2) 오해


용서는 잘못을 눈 감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것은 “네가 한 일은 옳은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란 “네 행위의 결과는 나의 결정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 아래 있는 것이다.”는 사실을 관계 속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정의의 체계에서 하나님의 정의 체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합니다.


-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닙니다.

-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회복을 전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용서한다는 것과 완전한

신뢰의 관계의 회복은 다릅니다.

-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용서는 화해로 가는 단계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든 용서가 화해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지만 용서를 위해서 화해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용서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에 대한 가장 좋은 예는 요셉의 삶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대한 복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의 과정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고백합니다. 두려움에 떠는 형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 형들을 달래는 요셉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으며 오늘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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