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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19. 성가대 헌신 예배 / 그의 노래 이응도 목사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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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19.

* 본 문 : 시편 96편

* 제 목 : 그의 노래


얼마 전에 상담을 하다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이 들고 어려워서 도대체 무엇을 하면 좀 즐거워질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마침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춘 합창단’ 단원을 모집했습니다. 55세 이상 되어야 자격이 있고,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나와서 얼굴에 주름만큼이나 깊게 패인 아픔을 고백하고 떨리는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생각했습니다. ‘아.... 나도 젊었을 때는 노래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노래를 해야겠다... 노래를 하고 싶다....’


그런데 당장 이곳 필라델피아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 분 앞에 신문 광고가 하나 펼쳐졌습니다. 한인 합창단을 모집한다는 광고였습니다. 쾌재를 불렀습니다. 오디션을 봤고 합격을 했습니다. 너무 기뻐하면서 합창 연습 시간이 상담시간과 맞물려서 상담 시간을 옮겨야겠다고 했습니다. 몇 달 지난 지금도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는 것으로 압니다.


남자의 자격에 나왔던 청춘 합창단은 지역 예선을 거쳐서 전국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노래 실력으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합창단에게는 다른 합창단에 없었던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삶’이었습니다. 김태원이라는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참 어려운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노래, 그 노래를 부르는 결코 청춘일 수 없는 ‘아름다운 주름을 가진 청춘들’의 삶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저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있네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라는 이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서로를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기에

바람에 실려가듯 또 계절이 흘러가고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가 피어있네

또 다시 가려무나 그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간 시간처럼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있네

또 다시 가려무나 그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라 지나간 시간처럼


합창을 할 때 모든 사람이 다 눈물을 흘리는 대목은 마지막에 84세의 노강진 할머니의 독창 부분입니다. “다가오라 지나간 시간처럼~”이라는 대목에서 저 역시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 노래 안들어 볼 수 없지요. 잠시 듣고 넘어갈까요?


1. 노래는 인생입니다.


노래를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김태원이라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곡과 가사도 잘 만들었지만 이 노래를 젊은 사람들이 불렀을 때 이런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노래가 55세 이상, 80이 넘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인생으로 불렀기 때문에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요, 인생이 곧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상담보다 노래를 실컷하는 것이 더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는 노래가 있고, 노래는 사람을 위로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 오늘의 본문으로 하나님을 노래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96편은 흔히들 “여호와 하나님의 대관식에 불리는 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세우는 예식에 불리는 시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왕들의 즉위식 때에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먼저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고, 그들의 왕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부를 때 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찬양으로서의 이 노래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세가지 찬양할 이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좀 자세하게 보면서 과연 그들은 하나님께 어떤 제목으로 찬양을 드렸는지 생각해 봅시다.


1) 그의 기이하신 행적을 찬양하라.


가장 먼저 이스라엘의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시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애굽에 대해 행하셨던 일들입니다. 애굽의 말발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 광야에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일들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원리는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정의로우심을 자신의 삶 가운데서 경험한 사람들이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찬양을 하면 그 찬양은 그 음악성 성과와 관계없이 하나님께 큰 영광을, 사람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2) 그 이름에 합당한 찬양을 돌리자.


시편 96편에 나오는 찬양의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 자체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당 주차장 방향에 보면 이제 작은 화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당 건물은 그 자체가 그렇게 멋있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공사를 할 때 주차장 방향에 화단을 만들라는 시청의 요구에 꽤 투덜거린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를 찾을 때마다 제일 먼저 꽃들이 반겨주니 참 좋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면서 참 예쁘다고 감탄을 할 때 그 꽃이 벌떡 일어나서 내 손을 잡아주거나 그 꽃 향기로 내게 향수를 뿌려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꽃이 내게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꽃 그 자체로 나의 감탄과 칭찬을 받을만한 충분한 이유와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96편의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자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은 그 다음입니다. 나는 다만 하나님 그 자체로 충분한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7~9절을 보십시오.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 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자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신앙, 요구가 들어질 때 만족하고 감사하는 신앙은 어린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부모가 주는 이익이 아닌 부모의 존재에 대해감사하게 되는 것처럼 시편 96편의 시인은 하나님의 존재에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성장이 있는 성가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상태에 따라 찬양을 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것이 아니라, 내게 하나님이 계시므로 나는 늘 찬송할 제목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찬송하자.


시편 96편에서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는 찬송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입니다. 시인의 초점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에 있습니다. 지금 시인이 사는 세상은 조금 불합리할 수 있습니다. 악이 선을 이기고, 불의가 정의를 삼킬 수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불행으로 고통당할 수도 있고, 이길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찬송하기보다 원망이 더 앞설 수도 있습니다. 감사보다는 울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초점은 지금 현재의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해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공의의 심판’입니다. 사람의 모든 형편과 상황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정의롭고 화평한 판결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의 정황은 다소 어려워도 10~13절에서와 같이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 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 96:10-13) 시인의 눈에는 하늘도, 땅도, 바다도, 산도, 들판도 모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이 땅에 임하여 하나님의 의로 세계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새노래로 찬양합시다.


저는 설교의 서두에서 ‘삶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들어가야 참된 노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20대에 가장 좋아했던 가수가 있습니다. 김광석이라는 가수입니다. 그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서 ‘나의 노래’라는 곡은 저의 18번입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않는 암흑 속에서 조용한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그런데 그는 제 30대 초반에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노래는 그의 힘이자 삶이라고 외쳤지만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노래에는 늘 그의 삶이 담겨 있었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절망 끝에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의 노래에 삶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사람의 삶이 가장 건강할 때는 사람을 지으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때입니다. 노래에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삶에는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없는 삶을 위한 노래는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쓰레기로 만들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없는 노래는 사람을 만족시키기도 하고 사람을 절망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없는 노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감정의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있는 노래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발견됩니다. 하나님이 나에 대해 행하신 일이 고백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 찬양과 영광으로 돌려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행하실 일이 신앙으로 고백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함이 있는 노래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새 날에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게 되고, 새 날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헌신 예배로 드리는 우리 성가대원들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이야기들로 하나님께 고백할 것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찬양으로 아름답게 드려질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가대가 그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성가대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했는지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서로 전하고 후대에 전승할 이야기가 많은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했던 증거와 경험들이 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노래로, 찬양으로 증거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발견되는 아름다운 경험들, 그것이 매일 새로운 노래로 고백될 때 시편 96편의 시인과 같은 노래를 우리가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부를 새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가대와 초대교회는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이름을 찬송하며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아름다운 찬양, 새노래를 날마다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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