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1. 11. 2.
영성 회복의 7단계 – 6. 변화(change)
인생은 어쩌면 흐르는 강물일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게 왔다 가는 바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고 생명이 그러합니다.
내가 머물 곳은 어디입니까?
사람들은 사람들을 떠납니다.
사람이 세월의 강물이 몸을 맡긴 이상 / 사람은 사람에게 흔적만 남기고
이 골짝 저 골짝 그렇게 흘러가 버립니다.
이렇게 남아 있는 나도 / 결국 흘러 흘러 떠나가고 있습니다.
먼 이방의 땅에서 내 고향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 / 남편을 만났습니다.
아직 행복에 지치기도 전에 / 남편을 생명의 시간 위에 띄워 보냈습니다.
나 또한 어디로 가야 하는지, / 어디로 흘러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남편과 어머니를 통해 여호와를 알았습니다.
이방의 신이었던 여호와를 / 나의 신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 이방의 땅으로 건너온 남편의 가족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었던 신,
한번 맺은 언약은 /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지키는 신,
그 백성 이스라엘이 아무리 패역해도 / 사랑과 인내로 기다리는 신,
나는 여호와를 만났고 알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했을 때
나는 평생 다시 없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떠났고, / 세상도 나를 외면했고,
남은 어머니마저 나를 떠나겠다 했습니다.
내 고향에 남아서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그들의 땅으로 함께 가서 / 내가 이방인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인생은 그런 것일까요? / 그저 흘러가고 떠나가는 것일까요?
죽음보다 깊은 곳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흘러 다니는 인생을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 인생에 닻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 세상 모든 것이 흘러가고
모든 사람이 떠나가지만 / 흐르지 않고 떠나지 않는 곳에
내 인생을 묶어두기로 했습니다. / 어머니를 따라 유대땅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해도,
남편 없는 저주받은 여인으로 산다 해도 / 남편을 통해 만난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께
내 인생의 닻을 든든히 내리기로 했습니다.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는지 / 아픈 이별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믿음은 때로 선택입니다. / 믿음은 때로 포기입니다.
믿음은 때로 나를 던지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이 지나가고 흘러가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나는 지금도 그 짧고도 중요했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내 인생에 내린 든든한 닻을 기억합니다.
1. 내가 만난 하나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경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만나는 방식과 과정이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룻이라는 여인 또한 독특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였던 나오미는 유대땅에 기근이 들자 이방땅으로 옮겨가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결코 신앙적인 선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고 그들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그 땅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흉년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으로 옮겨간 그들의 선택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선택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잘못된 선택 속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들은 약속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버리지 않으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정을 향한 신실하신 계획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인 룻은 이 연약한 가정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배웠고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 가정에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듯한 시험과 고난이 다가왔을 때 룻의 마음 속에 있던 믿음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문제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선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룻에게 신앙을 소개한 나오미와 그녀에게서 하나님을 배운 룻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나오미는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나오미는 철저하게 상황 중심적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을 피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나면 그곳에 머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마치 옷과 같습니다. 늘 입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바꿔 입을 수도 있습니다. 추위와 더위,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늘 자기중심적인 선택을 합니다. 먼저 믿고 더 많이 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와 다른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룻은 자신이 만나고 믿게 된 하나님께 뿌리내린 선택을 합니다. 룻기 1:16에서 룻의 선택을 묵상해 봅시다. 그녀는 유대땅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로 결정합니다. 남편을 잃은 저주받은 여인으로 살기로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동정, 혹은 멸시 어린 시선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그녀의 선택의 동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에 있습니다.
신앙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상식입니까? 이익입니까? 성품입니까?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입니까?
3. 변화되고 있습니까?
누구나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잘못된 선택을 통해서 바른 선택을 배워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변화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좋은 모델이 되는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눅 22:32는 이 말을 듣는 당시 베드로가 인정할 수 없었던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의 배신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만약 그것뿐이라면 신약 교회의 기초를 놓은 우리가 아는 베드로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택한 제자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그의 모든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 선택에 맞는 변화를 만들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변화는 처절한 고통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자기 부인과 부정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그는 참된 제자가 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모든 형제들 가운데 벌떡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한 사람이 베드로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당신들이 못박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언한 사람도 베드로였습니다. 초대교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믿음으로 승리했던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잃고 자기를 잃었으며, 자신을 포기했을 때 변화를 얻을 수 있었으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때 다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변화되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 직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과 선택에 맞는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까?
4. 새로운 선택과 결정을 앞에 두고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만나는 나오미는 세월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어도 베드로가 보여준 변화된 선택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녀는 언제나 자기 앞에 놓여진 상황에 맞는 선택을 원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룻은 늘 새로운 선택과 결정을 합니다. 그녀는 신앙의 경륜의 성장에 따라 선택과 결정의 질적 성장을 보여줍니다. 결국 그녀는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5명의 여인 중 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에서 행복과 영광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질적 성장은 곧 영성의 성장의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우리의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과연 우리는 변화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변화는 무엇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습니까? 신앙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입니다. 이 반복되는 선택과 결정은 날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작은 변화의 과정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만일 작은 변화조차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분명 퇴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신앙의 경륜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과 결정의 질적 성장이 없다는 사실은 영적 퇴화의 과정 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영적인 관계에 있어서 늘 질적인 성장과 변화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작은 선택과 결정들 가운데 그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신앙은 크고 광범위한 것이지만 우리의 선택은 지극히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우리의 영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를 향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굳건히 세우고 성도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너는 돌이킨 후에”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명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사명은 변화의 열매이지만 변화없는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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