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1. 11. 16.
본 문 : 고전 1:1-3
제 목 : 교회론 - 1.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예수는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했고 가장 사랑했던 제자도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물과 피를 쏟으며 기도하실 때에나 십자가 위에서 고통과 고독에 몸부림칠 때에도 그 누구도 예수님과 함께 그 고통과 고뇌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단 한 사람도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예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그가 죽은 지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그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그와 만날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과연 실패했습니까? 그는 과연 패배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는 성공했고 예수는 승리했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승리의 증거요 깃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교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서 교회가 과연 무엇인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오늘을 점검하고 내일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 교회는 부름 받은 백성들의 모임입니다.(마 22:1-14)
저는 한 때 제 안에 있는 신앙을 부정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였습니다. 유물론에 관련된 철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한국 역사와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면서 그 동안 내가 잘못된 것, 헛된 것을 믿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 것이라고 결심했었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했습니다. 내가 이미 무신론자로 살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내 안에 신앙이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이 되면 교회로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저 그 동안 해오던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아니었습니다. 딱 한번, 시국 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느라고 주일 한번을 빼먹은 것 빼고는 단 한 번도 예배에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하는 시기를 3-4년 지나자 다시 자연스럽게 내 안에 계신 주님을 확인하게 되고 그 주님을 만나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나의 의지로 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내가 계획한 것도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내 편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신 것이요, 하나님 편에서 나를 찾아오신 것이요,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마 22:1-14는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첫 번째 요건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3절과 9절을 보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임금이 있습니다. 그는 종들에게 사람들을 부를 것을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믿음은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부르시지 않으면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공로로 초청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에게 있는 사랑으로 초청 받은 것입니다. 고전 1:9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에게 예수를 알게 하셨고 우리의 평생에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늘 확인하며 감사하는 교회가 됩시다.
2.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고전 1:2)
두 번째 교회의 본질적 특징은 본문 2절 하반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큰 의미가 담겨 있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이라는 말과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 그리고 ‘각처에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보편적인 교회가 있는가 하면 또 고린도 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처에 흩어져 있는 교회, 한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 교회가 과연 어떻게 같은 하나님의 교회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그 비밀을 2절 하반절에서 공개합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1-13을 봅시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모임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부르되 과연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 부르고 찾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예수님을 찾습니까? 언제 예수님은 여러분의 그리스도가 되며 주가 되며 임금이 되며 여러분의 생각과 판단을 결정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위기의 순간에 그리스도 예수를 찾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상식과 판단을 의지합니까? 여러분은 놓치기 싫은 불의한 이익이 눈 앞에 있을 때 그 불의를 선택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릅니까? 여러분은 고통과 고난의 순간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합니까?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힙니까? 여러분은 유혹과 시험이 다가올 때 그리스도 예수를 부릅니까? 아니면 시험과 유혹이 주는 즐거움을 선택합니까? 여러분은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결정의 순간을 앞에 두고 그리스도 예수,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나의 주님을 부릅니까? 아니면 상황과 조건과 사람을 생각합니까? 우리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는 과연 어느 때에, 어떤 상황에서 우리의 주가 되며 우리의 임금이 되십니까?
3. 교회는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엡 2:19-22)
하나님의 교회의 세 번째 요소는 ‘변화’에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과연 다음 중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1) 사람 2) 건물 3) 조직 4) 사역
답은 고전 1:2에 나와 있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교회 곧…’ 이라고 말한 후 그 교회를 무엇이라 설명하고 있습니까?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부르는 자들’입니다. 자, 그러면 사람과 건물과 조직과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는 과연 무엇일까요? 교회는 곧 사람이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나만이 알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과연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교회가 사람이라면, 나처럼 연약하고 부족하고 더럽고 비겁한 사람이라면 그 교회는 너무 초라하고 너무 한심한 수준이 아닐까요? 과연 하나님은 이 정도의 교회에 만족하시고 이 정도의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까요?
고전 1:2에서 교회는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엡 2:19-22를 봅시다. 이 본문에 의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건물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은 완성된 건물도 아니요 완전한 건물도 아닙니다. 혼자 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건물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것은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그것은 ‘되어가는’ 교회입니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고 있고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네번째 그것은 함께 지어져 갑니다. 완성된 건물이 되고 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채로 서로 만나고 돕고 연결되고 함께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을 미쳐야 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세 번째 본질적인 특징은 ‘변화’에 있습니다. 그것을 고전 1:2에서는 짧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변화인지 짧은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그렇습니다. “거룩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화의 과정에 있고 우리의 교회 또한 그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성화의 과정을 신실하게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날마다 더욱 거룩하여지는 하나님의 교회의 삶을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4. 교회는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요 20:21, 마 28:18-20)
이제까지 고전 1:2 본문에 근거하여 교회의 본질적인 세가지 특성을 생각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나아가서 교회가 간과할 수 없는 마지막 본질적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가진 사명에 있습니다. 교회가 가진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요?
요 20:21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교회를 세상에 보내십니까? 마 28:18-20을 봅시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는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사람이면 아무도 이 명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의 세가지가 교회의 본질적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이 마지막 교회의 본질적인 특성은 교회의 존재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 그것은 분명 ‘가라!’고 하는 명령에 근거하고 있고 우리는 세상으로 가서 교회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 나온, 보내심을 받은 교회요 성도들입니다. 먼 세계로 선교사로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전파하는 교회의 사명을 벗어난 것도 아니요, 누가 나를 선교사나 목사로 지칭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명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해서 늘 그저 이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요 날마다 거룩해져야 하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증거되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시고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로 세워지고 변화되고 역사하는 아름다운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삶 위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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