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1. 18.
본 문 : 요한복음 3장 23-36절 말씀
제 목 : 내면의 질서 - 3.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아브라함의 길 - 1. 부르심
그가 나를 불렀습니다. /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성으로
내 마음에 우렁우렁 울려 퍼졌습니다. /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야훼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조상들에게는 수많은 소원이 있었고 / 소원만큼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신으로부터 삶의 형통을 찾고자 했던 아버지는 / 형상이 없어서 만들 수 없고
자신의 소원을 인정하지 않는 / 야훼라는 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 풍요와 다산, 전쟁과 저주, 생명과 번영....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소원도 / 아버지의 손을 거치면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신을 만들었고 / 그 신은 아버지를 배부르게 했습니다.
그가 나를 불렀습니다. / 아버지가 만든 수많은 신들의 침묵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마음을 울리는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 사람의 소원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사람의 손으로 빚어지지도 않았던 신, / 그가 저기 저 하늘 깊고 깊은 곳으로부터
여기 낮고 황량한 땅에 찾아와 / 나를 불렀습니다. / 침묵하는 신들의 땅을 떠나
말씀하시는 신 야훼의 땅을 찾아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신을 만났습니다. / 그는 사람의 소원에 복종하는 신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을 사람에게 불어넣는 신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불렀습니다. / 나는 그의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다.
1.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아브라함은 어쩌면 무모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갈대아 땅에서 우상을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다가온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길을 떠납니다. 그 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배우고 경험하고 교제하고 언약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생명보다 소중한 아들을 드릴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믿음과 삶이 가능할까요? 그의 믿음의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과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의 우선순위를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춰져 있었고 그는 평생을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러합니다. 그녀에게는 두 번의 결정적 고비가 있습니다. 16세의 소녀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는 일과 눈물로 키운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과연 그녀는 이 두 가지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눅 2:15-20에 답이 숨어 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군 천사의 찬양을 듣습니다. 어린 아기 예수가 탄생했고 그 아기는 온 세상을 구원할 구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은 그 아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와 마리아와 요셉을 찾습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했습니다. 18절과 19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복된 소식을 잊었습니다. 다만 한 사람,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고 초대 교회를 세우는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마리아의 평생에 가장 중요한 음성, 가장 중요한 부르심을 받았던 때입니다.
성경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성도요, 그들이 모여 교회요,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신앙의 고백과 우선순위가 있을 때 우리는 단순하고 분명한 선택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을 느끼지 못했든지 혹은 그 부르심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방향을 상실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이 많고 선택하기 어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네 가지 특징
사울 왕과 세례요한은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관과 신앙, 인격과 성품은 위기를 만났을 때 가장 잘 드러납니다. 사울왕은 다윗의 등장으로 그 왕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등장으로 존경과 사람들을 잃고 있습니다. 어쩌면 삶의 가장 큰 위기가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위기에 대응하고 있습니까?
사울왕은 울부짖으며 술에 취해서 왕위를 빼앗길 수 없노라고,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택하신 왕 다윗을 죽이기 위해 광야를 헤매고 다닙니다. 그는 삶의 질서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맙니다. 요한은 자신을 향한 부르심의 의미와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과 명예와 존경을 잃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의 반응을 통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네 가지 특징을 생각해 봅시다.
1) 청지기 의식
세례 요한은 청지기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사울왕과 같이 늘 쫓겨 다니는 사람,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를 좇아간 제자들을 저주하고 예수를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르심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아갈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잠시 받았던 명예와 사람들의 존경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브뤼셀에서 봉직했던 다닐즈라는 이름의 추기경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예배당에 가서 기도한다. “오늘 할 일을 이제 마쳤습니다. 주님, 심각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교구가 저의 것입니까? 당신의 것입니까?” 하고 주님께 묻는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당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나는 대답한다. “그래 맞다. 나의 것이다.” 라고 주님이 대답하신다. 그러면 나는 “주님, 이제 이 교구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일은 당신 차례입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렵니다.”하고 말한다.“
2) 정체성
세례 요한은 정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사역과 정체성에 대해 어떤 환상에도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과 자기 자신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일을 대단하게 한다고 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높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그 어떤 권위와 영광도 소망하지 않습니다. 그의 신앙의 고백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누군지,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겸손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부르심 앞에 무릎 꿇은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3) 목적의식
요한은 분명한 목적의식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영광을 얻기보다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에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을 보고 옥중에서 눈물로 감격하며 기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요3:29를 봅시다. 요한에게는 참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기쁨은 자신을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르신 부르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목적의식과 기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질서에 소비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헌신하는 인생으로서의 목적과 기쁨이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4) 자유함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그의 책에서 한 영국의 교장 선생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교장은 45세에 자신이 65세 생일을 맞이하면 볼 수 있도록 편지를 한 장 씁니다.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로 당신은 65세가 되어서 이제 교장의 직무를 더 젊은 사람에게 넘겨줄 때가 이르렀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당신을 대치할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 없이는 안된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선전이다. 믿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그 교장은 65세가 되었을 때 그 편지를 뜯어보았고 자신이 20년 전에 예상한대로 스스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이 다했음을 압니다. 그는 자유입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신랑의 자리를 준비하는 자신의 부르심을 마쳤습니다.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영적 평안과 자유를 선언하신 것처럼 요한은 이제 결혼 잔치를 준비하는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 이상을 원치 않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3. 광야로 나아가라
기독교 심리학의 초석을 놓은 ‘폴 뚜르니에’ 박사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를 잃었고, 6세에는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격리되어 자랐습니다. 16세에 그는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집니다. 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폴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습니다. 비로소 소심하고 어두운 성품을 가진 한 소년이 자신의 삶을 긍정적이고 의미있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많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친구의 모습으로, 대로는 아내의 모습으로, 때로는 제자들을 통해서 자신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영적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인생의 광야에 버려졌고, 혼자 사는 법을 익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같이 광야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심리학, 기독교 정신 병리학의 초석을 놓게 됩니다. 그가 저술한 책이 유명한 “The Listening Ears”입니다. 그 귀는 인간의 신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귀이며,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그 자신의 귀이며,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듣는 부르심 받은 귀입니다.
요한은 광야의 사람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 아버지 스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은 이미 연로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다시 요한에게 관심을 가질 때 그는 혼자였습니다. 광야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음성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는 요한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였고 그의 영이 성숙하게 되는 곳이었고 그가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발견한 곳이었고 그리고 영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이 그의 평생을 지키는 소명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쫓기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이 마음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세상의 성취와 번영을 추구하며 살면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사울왕과 같이 높은 자리에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점점 메말라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부르심의 삶을 살고 싶습니까?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영적인 고독을 맛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비로소 살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가죽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어도 하늘의 삶을 살았던 요한처럼 이민자의 척박한 삶을 살아도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단순하고 당당하고 분명한 인생의 발걸음을 걸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의 삶을 통해 우리 심령의 깊은 곳에 작은 울림으로 다가오십니다. 그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모세를 부르셨고 엘리야를 부르셨고 요한을 부르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 그 부르심대로 사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피조물의 가장 큰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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