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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5. 요셉 소명 - 2. 고난, 은혜의 통로 이응도 목사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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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2. 29.

요셉 소명 - 2. 고난, 은혜의 통로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 독학으로 글을 배웠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영원한 형벌에 대한 환상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그는 경건하고 사랑이 많은 여성을 만났고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많은 회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는 30세가 되기도 전에 갑작스런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사로잡힌 존 번연은 말씀을 연구하고 설교에 헌신하기로 결정합니다. 열심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정부의 허락없이 설교하는 일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 투옥 당하게 됩니다.


한번은 3개월 형을 선고 받았는데, 계속 설교를 하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형이 12년으로 늘어나버렸습니다. 그는 절망합니다. 도대체 내 삶에 왜 이런 고난이 계속해서 다가오는가...? 그는 차가운 감옥에서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그의 고민이 하나의 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천로역정’은 단순히 한 사람의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천국으로 가는 성도의 아름다운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한 사람의 삶을 사용하신 열매입니다. 존 번연은 마치 요셉에 그랬던 것처럼 감옥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경험했고, 범사를 주관하시며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아름다운 이야기로 사랑과 감사를 고백한 것입니다.


1. 은혜의 주인공


시편의 기자는 이러한 삶의 아름다운 원칙이 요셉의 삶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 105:16-22)


이 시편에서 은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당연 요셉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말씀을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요셉의 삶에 늘 함께 하셨고, 그의 삶에 대한 놀랍고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요셉을 놓지 않으셨고, 인도하셨고,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의 모든 고난은 은혜로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그저 애굽의 감옥에서 스러질 먼지와 같았던 그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주인공이 되며, 구원의 은혜를 증거하는 삶을 변화되었습니다. 결국 은혜를 은혜답게 만드는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2. 은혜로 가는 길


성경에 나오는 많은 신앙의 선조들은 모두 같은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한 사람씩 그들이 경험했던 그 과정을 묵상해봅시다.


먼저 거의 흠이 없는 지도자로 인정받는 여호수아를 봅시다. 그는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갈렙과 더불어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광야에서의 자유인이 아닌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경험했었습니다. 그 경험이 그의 자유를 다 달콤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 경험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더 감사하게 했을 것입니다. 가나안은 그래서 그에게 약속의 땅인 것입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모세는 어떻습니까? 그의 인생의 여정은 참으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드라마입니다. 나면서부터 불행이 예고된 삶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어머니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동족을 위해 일하고자 했지만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절망 속에 보냅니다. 이스라엘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지만 당장 가나안은 그들에게 펼쳐지지 않습니다. 홍해를 만났고, 애굽의 군대를 만났으며, 전쟁을 해야 했고, 반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물과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눈으로 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마감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참으로 큰 영광을 주십니다. 가나안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구약을 대표하는 두 선지자를 만나십니다. 그들과 말씀을 나누십니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막 9:4) 누가 이런 영광을 얻었습니까?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떻습니까?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할 때의 두려움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지는 처절한 상황을 생각해보셨습니까? 비난과 모함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성전으로 향하는 창을 열고 기도했던 그의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고, 아모스가 그랬고, 호세아가 그랬습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동일한 패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사역을 하시기 전에 광야를 경험하십니다. 아니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더 격심한 광야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그랬습니다. 원래 연약했던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사도로 일하고 섬기기 전에 큰 실패를 거듭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야망과 욕심을 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나야했고, 그들의 소망이던 스승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그 죽음 앞에 자신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한지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빈 무덤을 발견하기 까지 죽음보다 깊은 절망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그들은 방황을 거듭합니다. 이런 모든 시련이 그들로 하여금 더 연약함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의 성도들로 변화시키는데 힘이 됩니다.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 또한 고난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회심했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냉대를 받으면서 그는 이방인을 향한 열정을 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향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스데반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모든 잊지 못하는 고통은 그의 사역의 자양분이 되고 거름이 됩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납니다.


3. 새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경의 역사에 가장 안타까운 leader는 사울왕이었습니다. 그는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는 괜찮은 삶을 사는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셔서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왕의 당시의 모습을 완전하다고 여기셔서 기름 부으신 것은 아닙니다. 사울을 기름부었던 사무엘의 말을 들어 봅시다. 사무엘은 사울을 기름 부은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삼상 10:6)


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예언자들의 무리와 함께 생활하며 새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한 번의 경험으로 그쳤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에서 말하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사건’은 일회적으로 그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늘 변화되어야 하며 늘 새롭게 되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계속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사울왕이 왜 변화와 성장을 계속 경험할 수 없었는지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성장하고 인정받고 왕으로 택함을 받는 모든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의 삶에는 특별한 고통과 고난의 흔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그 현장으로 자신을 밀어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번 영광을 얻고 그 영광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버립니다. 결국 신앙도 가정도 왕권도 나라도 빼앗기게 됩니다. 만일 그가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삶을 다듬을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의 마지막은 그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지도자, 만일 그에게 고난이라는 은혜의 통로를 지나가는 영적 경험이 있었다면 우리의 안타까움은 존경과 자랑스러움으로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고통은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그 고통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때로 고통이 없는 환경 속에 살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고통의 환경 속에 두고 겸손과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풍요로운 삶의 조건들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 고난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때로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수도자의 모습으로 교회의 역사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었습니다. 고통과 고난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신앙과 삶의 다양한 자양분이 되어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고, 오늘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삶으로 빚어갔습니다.


4. 한 팀이 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고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의 과정에 성도를 그저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와 한편이 되시고 한 팀이 되십니다. 고통이 그 성도의 마음을 파괴시키지 않도록 하나님은 성도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풀무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친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에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며, 교회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약 5:13-14)


그렇습니다. 성도와 교회와 하나님은 좋은 팀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교회에 맡기십니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성도는 교회의 사역에 협력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성도는 어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과 삶을 지켜나갑니다. 이것이 성도와 교회와 하나님이 한 팀이 되어 고난의 세상 가운데 승리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어떤 고난도 성도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지키보 보호하십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그 여정에서 하나님과 교회와 한 팀이 되어 승리를 향해 전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교회는 언제나 승리할 것이고, 성도는 늘 찬송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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