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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6. 요셉 소명 - 11. 고난에 대한 해석(2) 이응도 목사 201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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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5. 16.

요셉 소명 - 11. 고난에 대한 해석(요 11:4) (2)


믿음은 우리의 삶에 대해 새로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보며 나를 보며 내가 만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그 성도는 벌써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고통입니다. 믿음의 관점으로 바라본들 고통이 쾌락으로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고난은 여전히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나를 바꾸기를 원하시는 분이지 나의 상황을 바꾸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는 늘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넘어설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고통과 고난의 문제에 대해 믿음으로 해석하고 이기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가 만나는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질병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3. 질병에 대한 이해


성경이 소개하는 우리의 신체적인 질병의 원인은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죄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질병을 고난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때로 질병은 우리의 잘못된 삶의 과정이 만든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11:20-32에서 바울은 성찬에 대해 가르치면서 성도의 잘못된 삶이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0-32)


또한 구약 성경은 '정결'이라는 단어는 천번 이상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근동 지방의 열악한 위생 조건과 환경 속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질병에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한 삶과 함께 그들의 삶의 정결도 중요한 신앙의 덕목으로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방 백성들의 어리석은 삶의 모습을 따라 살다가 전염병을 앓게 되거나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일들이 빈번했습니다. 질병은 그들의 삶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던 불순종의 결과로 기인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죄와 어리석음의 결과로 질병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한편 하나님께서 질병을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아직 문명과 지성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질병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을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를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5-16)


야고보 사도의 관점은 분명합니다. 질병은 성도의 죄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질병에 대해 정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우리가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의 가능성을 살피며, 혹 나의 범죄의 결과가 질병의 원인이 아닌지 돌아보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더욱 사모할 수 있습니다.


2) 사탄의 시험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탄이 질병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분명한 것은 사탄이 성도를 시험하는 목적은 질병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병은 시험의 수단을 뿐입니다. 성도를 두려워하게 하고 염려하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흔들어 놓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욥을 시험하기로 결정한 사탄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그의 모든 관계까지도 빼앗아갑니다. 그 모든 것으로도 하나님과 욥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던 사탄은 결국 질병으로 욥을 시험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질병 가운데 성도의 승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질병보다 무서운 것이 죽음일진대,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우리는 질병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우리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이 오히려 하나님과 성도의 사귐을 더욱 깊이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질병을 통한 시험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는 성도들 앞에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타락한 세상의 자연스러운 일부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영원히 사는 존재는 없습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다가온 결과물이라면 질병은 그 과정일 뿐입니다. 즉 타락한 세상이 가진 비참한 일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질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바르게 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질병이 없는 삶과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모든 사람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질병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질병으로 말미암아 지나친 고통을 경험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는 일, 성도로서의 존엄을 잃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좋지 못한 상황에까지 가는 일 등을 경험하지 않거나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할 수는 있겠습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통로가 됩니다.


때로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성도로 하여금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4)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야 베다니로 가십니다. 가족들이 모든 절망과 분노까지도 접은 후에 예수님은 그곳으로 가셨고, 가족들과 함께 울음 울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진리였던 것은 오늘날도 진리입니다. 생명은 오직 주님께 있고, 생명과 죽음 사이에 있는 질병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때로 그것이 사탄에 의해 사용되는 것 같고, 때로 그것이 사람의 죄의 결과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만물에 생명을 허락하신 분이시며, 죽음을 이기시는 분입니다. 질병 또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대해 시편에서는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


요한복음 9장에 나온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 또한 이것을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1-3)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익(영광)을 위해서 사람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기도 하시는 분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을 당하며 질병의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질병에 의해 고통당하는 인생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사로와 같이, 혹은 예수님은 만난 소경과 같이 삶의 어느 한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고통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엎드리는 순간 우리의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질병이 나아서가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서가 아닙니다. 인류가 감당해야 할 죄로 말미암아 다가온 질병과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서 절망 밖에 할 수 없던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서 다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는 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그는 지금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병이 들었습니다. 육신의 병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잘되게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하고 부자가 되게 하셨지만 그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떠났고, 영적인 질병에 걸렸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순중하지 않음으로 자신에게 허락하신 왕국을 병들게 합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 병을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이 질병을 통해 우리가 집중해야 할 참된 가치입니다. 이것에서 승리하는 성도는 질병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드는 성도,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과 더욱 깊이 만날 수 있는 성도에게 모든 질병과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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