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성경 공부

  • 홈 >
  • 예배와 말씀 >
  • 수요 성경 공부
수요 성경 공부
12.5.23. 요셉 소명 - 12. 내면에 숨은 적군(고후 10:4-5) (1) 이응도 목사 2012-05-24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30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80/544770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5. 23.

요셉 소명 - 12. 내면에 숨은 적군(고후 10:4-5) (1)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있다면 단연 삼국지였습니다. 먼저 만화로 된 삼국지를 읽었고, 박종화씨가 다시 쓴 5권으로 된 소설 삼국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재미있고 새로웠습니다. 영웅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서로 연합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단연 유비와 관우, 장비일 것입니다. 소설 삼국지는 그들의 도원결의로부터 시작하고 그들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우와 장비는 참으로 대단한 영웅이었습니다. 패하는 적이 없고, 충성스러우며, 용맹했습니다. 한번 주군이자 형님으로 모시기로 결의한 것을 평생 목숨을 바쳐 지켜내는 ‘의리’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과정 또한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그토록 용맹했고, 당할 자가 없었던 이 두 장수는 도대체 어떻게 역사에서 사라졌을까요?


유비가 촉나라를 세우고 한중왕으로 등극하면서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는 긴장합니다. 먼저 촉과 충돌하는 것은 오였습니다. 오나라에는 주유와 노숙의 뒤를 잇는 명장 여몽이 있었고, 그는 형주에서 촉의 관우와 일진일퇴를 거듭합니다.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던 관우, 그가 강하다는 것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적장 여몽도 알고 있었으며, 그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웠던 적장 여몽은 그에게 있었던 유일한 약점을 찾아냅니다. 관우 안에 은밀하게 숨어있던 강력한 적, 오의 장군 여몽은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볼 수 없었던 적, 그것은 바로 관우의 자신감과 교만이었습니다. 여몽은 관우의 자신감과 교만을 이용하여 함정을 파고 기습했고, 관우와 아들 관평을 쓰러뜨립니다.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었던 위대한 장수가 자기 안에 있는 적들에게 패배한 것입니다.

장비는 형님의 죽음을 비통해합니다. 복수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군사들이 백기와 백갑, 즉 상복을 입고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밤까지 당장 그것들을 만들 것을 명령합니다. 부하였던 장달과 범강은 갑자기 백기와 백갑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장비에게 간언합니다. 장비는 화를 참지 못하여 두 사람을 매우 심하게 때립니다. 입에서 피를 쏟을 만큼 호되게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 모의를 합니다. 만취하여 잠든 장비의 침소에 들어가 그의 목을 벱니다. 창과 칼을 들고서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던 용맹한 장수 장비는 그렇게 자기 부하들의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두 영웅은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 밖에 존재하는 적들이 아닌,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적들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자신감과 교만이 관우를 죽였고, 급한 성품과 형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장비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고, 장비와 부하들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믿었던 부하들의 배신으로 장비는 죽임 당하고 만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어떤 장수도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던 곳에서 은밀하게 자라고 있던 강력한 적군이 그들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1. 사탄아, 물러가라!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상황과 대상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말씀을 주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명령하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이 명령을 사용하셨습니까?


먼저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로 나가십니다. 40일을 금식하며 하나님과 교통한 예수님께 사탄이 다가와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세 번째 시험을 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같은 명령이 다시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것은 16장에서입니다. 베드로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단한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십니다. 축복하시고 새로운 이름도 주셨습니다. 그의 신앙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른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제자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이고, 죽임 당하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황망해할 때 베드로가 다시 나섭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못하리이다.”(마 16:22) 바로 이 때 모든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예수님의 명령이 선포됩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3)


베드로는 사탄일까요? 정말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수님의 뒤를 따랐고, 그는 여전히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이토록 엄청난 말씀을 하셨을까요?


2. 드러난 적군, 숨은 적군


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 과정은 마치 전쟁과도 같습니다. 성경이 신앙 생활을 전투로 표현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성도와 교회는 오랫동안 눈에 보이는 적들에 대해 승리해왔습니다. 핍박과 고난은 교회와 성도를 늘 강하게 했고, 교회와 성도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가장 크게 고난당할 때 교회는 가장 크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연약함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에서 나타났습니다. 성경에 이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적, 즉 핍박과 고난에 대해서는 담대하고 의연했던 성도와 교회는 자기 안에 있는 적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엇이 적인지, 왜 적인지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성도의 믿음과 관계와 영성을 파괴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교회는 늘 내부의 문제로 무너집니다. 바르지 못한 영성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잃었던지, 아니면 내부의 관계가 상하여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탄은 교회를 핍박하기보다 교회를 잘되게 하고 성장시킴으로서 더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성도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보다 부자가 되게 하고, 성공하게 만들면 스스로 신앙과 교회적 관계로부터 멀어진다는 것도 압니다. 오늘날 사탄은 지혜롭게 교회와 성도에 대해 일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내 안에서 자라나서 성도로서의 나를 대적하는 사탄의 엄청난 무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위에 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과 싸울 때 넉넉하게 승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아닌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과 생각들은 우리 안에 견고한 진을 치고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도와 교회로 살지 못하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적들이 진을 치고 그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오스 힐먼은 다음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1) 파괴적인 ‘생각’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부정적인 신념을 형성한다.

2) 그 사람이 이 파괴적인 생각과 신념에 몰두하는 가운데 파괴적인 ‘감정’이 일어난다.

3) 파괴적인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포함한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4) 파괴적인 행동이 파괴적인 습관을 형성할 때까지 이 과정이 반복된다.

5) 습관은 더욱 견고해지고 요새화된다. 일단 내면에 요새가 구축되면 사탄은 은밀한 작전

기지를 그 사람의 심령 속에 확보한다.


문제는 우리 속에 있는 적군의 진지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로 그것이 발견되어도 나의 성품으로,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환경 탓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고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과 싸우거나 그것들을 피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숨은 적군의 힘이요, 사탄의 가장 고차원적인 전략입니다.


4. 나의 내면은 무엇과 일치하고 있는가?


관우가 되어봅시다. 장비가 되어 봅시다. 그리고 베드로가 되어 봅시다. 내면의 적과 치열하게 싸웠던 바울이 되어 봅시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싸움하고 있습니까? 관우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은밀한 적을 보지 못했고, 자신을 믿었고, 적장은 그의 힘과 교만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처절하게 패배했습니다. 장비는 분노했습니다. 형님 관우를 그리워하고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가 그리움이 그의 급한 성품과 만났습니다. 부하 장수들이 그를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결국 믿었던 부하들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죽임당합니다.


베드로는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위해서 십자가로 가는 길을 막아섰습니다. 그 마음에 조금도 거짓됨이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실된 마음이었다면 그는 십자가를 막아설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갔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사탄의 간교함을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행해 물러서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내면에 숨어 있는 간교한 사탄의 전략을 소리쳐 물리치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스스로 자신에게 역사하는 적군의 진지를 발견하고 고민하며 영적 싸움을 계속했던 바울의 신앙과 지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자신의 사역과 그 열매에 취하지 않고, 영적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피해의식이나 성취감에 물들지도 않고,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바로 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의 세력이 자신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말씀과 영으로 지키고자 했던 그의 간절함이 우리들에게 본이 됩니다.


내 안에 숨어서 마치 나의 생각인 듯, 나의 가진 기질인 듯, 마치 나인 듯 활동하는 적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의 도전을 받아도 나의 보호와 묵인 하에 여전히 견고한 성을 쌓고 내 안에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적군들 - 우리가 발견하여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말씀과 하나님의 영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은 하나님의 영토이며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12.6.6. 요셉 소명 - 13. 내면에 숨은 적군(삼상 15:30-31) (2) 이응도 목사 2012.06.08 0 210
다음글 12.5.16. 요셉 소명 - 11. 고난에 대한 해석(2) 이응도 목사 2012.05.18 0 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