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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6. 요셉 소명 - 13. 내면에 숨은 적군(삼상 15:30-31) (2) 이응도 목사 201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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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6. 6.

요셉 소명 - 13. 내면에 숨은 적군(삼상 15:30-31) (2)


지난 번 2012년 가족 수련회에서 우리 교회가 다 함께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소원들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이나 말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과 행동, 그리고 관계를 조종하고 있는 깊은 소원들이 있었습니다. 때로 그 소원이 나의 신앙과 조화되지 않고, 때로 그 소원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지 않기도 합니다. 갈등을 일으키고 반복되는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원을 뿌리 뽑지 못합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고, 나와 동일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Westminster 신학교에서 기독교 상담학을 공부했던 Hannibal Silver 목사는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소원들을 ‘우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소원들을 분류하고 그 소원들이 나의 삶의 영역들을 어떻게 콘트롤하고 있는지 보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조사했던 ‘Life only has meaning.... / I only have worth it ....."라는 질문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대답을 만드는 질문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힘과 영향력을 발휘할 때 존재감을 느낀다.”라고 대답했다면 그는 관계를 콘트롤하고자 하는 우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라고 대답했을 때 그는 사랑과 존경이라는 우상을 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재정적인 안정감을 확보했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라고 했다면 그는 재정이 그의 우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힘과 영향력’, ‘사랑과 존경’, ‘재정적인 안정’ 이 모든 것은 정말 근본적인 우상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것들을 가지기를 원하는 또 거대하며 본질적이며 원시적인 우상 하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더 많이 믿고 있는 것,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내가 더 많이 섬기고 있는 것,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는 내가 더 많이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것,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내게 더 많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 -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1. 내 앞에 ‘나’를 세우다.


인류가 최초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건은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입니다. 에덴에서 인류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삶이 예배였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예배였습니다. 서로에게 기쁨과 자랑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인류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보는 길을 열었습니다. 아니 자신을 보되 하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통해서 자신을 보는 길을 연 것입니다. 사탄이 인류에게 말합니다. “너 자신이 세상과 너를 control할 수 있어!”


사탄이 인류에게 다가와 인류를 그 자신 앞에 세우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사탄은 인류가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하더냐?”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위에 대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그 말씀에 대한 인류의 믿음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류는 쉽게 그 믿음이 흔들립니다. 한번도 자신의 지식과 믿음을 객관화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두 번째 단계는 인류가 가진 믿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아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사탄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 속에 심어둔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부정합니다.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범죄의 결과에 대해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눈으로 자신을 보게 합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세 번째 단계는 ‘섬김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 자기 숭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는 말은 인류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유혹입니다. 이 말은 바벨탑을 건축할 때 사용되었고, 사울이 유혹받을 때 사용되었으며,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인류가 자신의 삶과 환경을 다스릴 수 있다는 유혹은 참으로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그 맛이 창세기 3장 6절에 소개되기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고 표현되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인류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위하는 삶을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선택하고 그것을 전파합니다. 죄는 이렇게 유혹적이며 파급력이 강합니다. 사탄이 사용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바로 인류 안에 있는 ‘자기 우상이 유혹’이었습니다.


2. ‘통제(Control)라는 영적 요새’


오늘날도 이 유혹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을, 세상을 control하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쓴 오스 힐먼은 ‘통제라는 영적 요새’가 그 내면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그들은 매우 불안합니다. 그러나 불안한 모습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통제자이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구와 거만함으로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은 대개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주변 세계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통제는 자신을 지키고 보존하는 방편입니다.


3) 그들은 의심과 경계심이 많습니다. 그것은 인간 관계를 훼손합니다.


4) 그들은 쉽게 분노합니다. 어떤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그들은 낙심하고 분노합니다. 일이 잘못될 때, 심지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문제가 나빠질 때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며 자신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5)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겉으로는 거창하게 행동하지만 내면은 소심합니다. 그들은 통제력을 잃을까봐 늘 초조해합니다.


6) 그들은 상황에 부적절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과잉 반응을 보이며 지나칠 정도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사소한 문제에 분노하고 과민하게 대응합니다. 그들의 이런 반응 때문에 주변 관계들이 손상당하고 상처를 입습니다.


7) 그들은 통제하도록 가정에서부터 훈련받았습니다. 통제하려는 태도는 그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전부로 알고 있습니다.


3. 나를 높이기 위한 전략 - Control


그렇다면 왜 인류는 Control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울왕은 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왕이 사무엘 앞에서 고백하는 Control의 이유에 대해서 들어봅시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 15:30)


이 한 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참으로 슬픈 인류의 죄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깊고 끈질깁니다. 슬프고도 처절합니다. 사울왕은 사무엘에게 매달립니다. “제발 사람들이 앞에서 나를 좀 높여주시오” 그 영광을 얻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control합니다. 사울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점검해 봅시다.


1) 자신을 control하다.


사울은 먼저 자신의 의식을 control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라는 말을 반복합니다.(삼상 15:20-21) 자신의 욕심을 정당화하면서 그는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은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의식을 조작합니다. 자신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일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일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마치 사무엘에게 제발 나를 높여달라고 매달리는 사울왕이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 관계를 control하다.


사울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관계를 사용합니다. 자신의 지위를 사용하고 권력도 사용합니다. 그 목표는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자신이 영광을 얻고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때로 이런 유혹에 빠질 때 우리는 관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관계를 깨뜨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소원을 들어준 후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높이려는 시도 때문에 관계에 상처를 입은 경우는 없는지 돌아봅시다. 나를 위해 사용된 관계는 곧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3) 환경을 control하다.


사울왕은 자신의 환경을 사용해서 자신을 높이려 합니다. 그는 왕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는 승리했고, 전리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더 큰 왕이 되고 싶고, 더 많은 영광을 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처한 모든 조건과 환경을 사용합니다. 더 많은 영광을 위해 그것들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환경을 control해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유혹, 우리에게도 여전히 있습니다.


4) 하나님을 control하다.


사울이 당하는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을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자신을 높이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만나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유혹이자 시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인 터전이며,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 초점 맞춰져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4.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 자유는 내가 나를 control하고, 관계를 control 하고, 상황을 control하고, 하나님마저 control하고자 하는 욕구를 버릴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나를 control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순종하고 맡길 수 있기 때문에 비로소 행복의 문을 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자주 듣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고, 가슴 깊이 인정하고 있지만 잘 하지 못하는 바로 이것 - 내가 나를 지고 가는 인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짐이 되는 인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아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기쁨과 감사의 삶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우리를 조종하는 적군들을 발견하고 대적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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