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8. 요셉 소명 - 15. 평강이 있을지어다. | 이응도 목사 | 2012-08-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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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8. 8. 요셉 소명 - 15.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22) 한국 교회가 성도로서의 자기 인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전에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 기도와 간구로 해결되는 문제들, 은혜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소원에 집중해왔다면 80년대에는 교회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하나님과 성도 개인과의 관계 속에서 영적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위 ‘축복송’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그 때입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찬송가를 불렀고, 복음송은 주로 부흥회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불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80년대에는 서로를 축복하고 세우는 찬양들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너는 택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시작하는 축복송을 처음 배우던 때기 기억납니다. C.C.C. 에 있었던 저는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었습니다. 먼저 다른 찬양들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습니다. 곡이 특별히 경쾌하거나 감성을 자극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으로 찬양을 만들었다는 것이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한편 많은 생각을 하게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인가….’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80년 대 중반에는 대학생으로 사는 것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대학가에는 매일 최루탄 연기가 가득했고, 청년으로서의 미래는 어두워보였습니다. 나는 비참한 역사의 현장에서 이렇게 참담한 마음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성경은 나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선언하고 있었고, 그것을 노래로 부르자니 무엇인가 찬양과 말씀에 대해 내면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에 대하여 선언된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삶의 현실과의 뚜렷하고 분명한 차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1. 기름 부음 받은 도망자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을 때 그는 여전히 양을 치는 소년이었습니다. 시대를 이끌고 있는 선지자 사무엘이 직접 찾아와서 자신을 불러 세우고는 왕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의미를 다 깨달아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기름부음은 받았으되 양치기 소년으로서의 자신의 삶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느새 사울왕의 정적이 됩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일부터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주변에 몰리고 있었고, 늘 자신의 권력에 대해 불안해 하던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의 삶에 치명적인 위기가 반복됩니다. 사울왕을 피해 유대 광야를 헤매고 다니면서 그는 아마도 궁금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사람,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 받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며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인생은 이대로 쫓기다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과 보이는 두렷한 위기 속에서 그는 고민하고 방황하지 않았을까요? 만일 그가 낙심하고 절망했다면 그의 의심이 옳았을 것입니다. 그는 실패하는 인생을 살다가 먼지처럼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지켜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목전에 앉아도 그의 잔이 평강으로 넘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삼상 22:2) 그에게 같은 아픔,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그와 같은 마음으로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충성된 장수가 되고 신하가 되어 평생을 다윗과 함께 합니다. 고난의 시기, 그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견디어 갔고, 하나님은 그에게 동지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가 고난을 견디면서 자신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을 모으시고 훈련시키시고 영광의 때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2. 당신의 기억이 꿈보다 클 때 “당신의 기억이 꿈보다 클 때, 당신은 무덤을 향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의 고통에 두려워하고 마음을 빼앗길 때, 우리는 허락된 비전의 삶을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하나님이 내게 두신 거룩한 뜻은 과거의 어두운 진흙에 파묻혀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자신이 기름 부음 받았다는 사실을 현실의 고통 속에서 잊어버렸다면, 혹은 그것을 부정하고 원망했다면 그는 성경이 자랑하는 다윗왕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선언하시고 부어주신 은혜를 따라 살기로 결정했고, 어떤 시련과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3. 담대하라, 평안이다!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윗이나 저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자신들의 현실과는 다른 말씀을 전했던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비현실적인 복음, 혼란스럽고도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풍랑이는 바다에서 죽음의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어부였던 그들이 죽음을 예상할 정도로 큰 파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고, 제자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꾸짖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다는 잔잔해졌고, 그들은 평안을 얻었습니다. 같은 경험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더 높은 풍랑이 일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고 난 다음의 그들의 삶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겠다 약속하시는 것은 ‘평안’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은 무엇입니까? ‘환난’입니다. 서로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담대함’을 권면하십니다. 평안의 약속이 환난의 현실을 이길 수 있는 열쇠를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환난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요한복음 17장 전장에 걸쳐서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연약한 사람들을 붙드시고 인도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 제자들과 성도들이 두려움에 가득 차서 모든 문들 걸어 잠그고 떨고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들 앞에 살아서 서셨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던진 첫 마디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평강을 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권면하시는 것은 평강이되, 그들의 삶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예수를 믿기로 결정하면 그들의 삶의 현장은 십자가로 바뀔 것이요, 믿지 않기로 결정하자니 살아계신 주님이 눈 앞에 있습니다. 그들이 연약함과 두려움 사이에서 고민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요 21:22) 성령은 연약한 성도들이 두려움과 염려가 아닌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열쇠와도 같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도 안되며, 의지로도 안되는 일입니다. 세상의 파도는 높고 우리가 타고 있는 삶의 현실의 배는 너무 작습니다.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수 없고, 두려움과 염려로 살아가지 않을 수 없을 때, 성령 하나님은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지키시고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원수의 목전에서 다윗을 지키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를 세상의 위협에서 지키셔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과 뜻이 성취되는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신 마음(딤 후 1:7-8) 사도 바울은 심성이 연약한 디모데를 늘 걱정했습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랑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1세기, 초대교회의 척박한 현실을 이겨 나가기에 너무 연약한 심성을 가진 디모데를 격려하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이 이해하는 복음은 늘 고난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삶의 현실은 고난으로 다가와도 우리를 이해하고 해방시키시는 복음은 자신의 삶에 참된 기쁨과 평강을 허락했습니다. 바울은 이 평강을 영적 아들된 디모데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리고 바울은 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품을 것을 권면합니다. 그 마음은 곧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디모데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세상을 살 때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선포하신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영적 현실이 되어 우리의 심령과 삶으로부터 평강의 강물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더 지나 저는 목회자되었고, 그 찬양을 가슴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찬양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아름다운 선언이 우리의 삶의 엄연한 현실이 되는 것은 우리가 담대하게 믿음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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