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15. 요셉 소명 - 16.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 | 이응도 목사 | 2012-08-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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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2012. 8. 15. 요셉 소명 - 16.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 ‘전략적 세계 중보기도 네트워크’를 주관하고 있는 모리스 루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사업들을 신앙의 관점에서 컨설팅하고 사업과 사역을 결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루딕 인터네셔널 그룹을 운영하면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반유대주의적인 움직임을 경계하고, 이스라엘 안에 있는 교회들을 돕는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십자가를 담대하게 지고 가는 요셉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요셉을 이런 사람으로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 요셉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입니다. - 요셉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 요셉은 언제 어디서나 담대하게, 두려움과 주저함 없이 진리를 말합니다. - 요셉은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처신합니다. - 요셉은 인위적인 전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창의성과 혁신성이 사고의 특징이 됩니다. - 요셉은 시대를 분별합니다. - 요셉은 겸손과 섬김의 사람입니다. - 요셉은 개인적인 필요와 욕구보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집중합니다. - 요셉은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신뢰합니다. - 요셉은 주님의 임재를 소망하며 경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 요셉은 종교적인 은둔처가 아니라 세상 속에 들어가서 사역합니다. - 요셉은 재계와 사업 관계, 그리고 정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 요셉은 모든 고통의 경험들을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역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삼습니다. 1. 숨은 요셉, 에스더와 모르드개 이상 모리스 루딕이 말한 요셉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예, 요셉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 다양한 얼굴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서 요셉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얼굴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스라엘이 가장 깊은 고통 속에 있을 때 요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십니다. 페르시아가 근동지방을 지배하고 있을 때, 가장 잔혹한 왕이었던 아하수에로왕의 시대에 두 사람을 준비시키시고,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입니다. 에스더서의 대략은 이러합니다. 이야기는 지금 이란에 해당하는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왕이었던 아하수에로는 와스디 왕비를 쫓은 후 새 왕비를 간택하려고 합니다. 일찍 고아로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 의해 양육된 에스더는 젊고 아름다웠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왕궁이 하급 관리로 일하던 모르드개는 여동생이 왕비로 간택되자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모르드개는 페르시아의 군대장관이었던 하만과 사이가 나빴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미워하여 모든 유대인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아하수에로를 설득하여 유대인을 멸절시키는 조서를 선포하게 하고, 모르드개를 처형시킬 킨 교수대를 세웠습니다. 하만의 음모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왕에게 나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새로운 결정을 내려주기를 간청하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먼저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리리라”는 결단으로 왕에게 나아갑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법은 그 누구도 왕의 부름 없이 왕에게 스스로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왕후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왕이 구원의 홀을 내밀어 구해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스스로 왕에게 먼저 나아갔고, 간청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습니다.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준비된 교수대에는 하만이 달렸고, 모르드개는 제국의 2인자가 됩니다. 2. 보이지 않는 하나님 재미있는 것은 성경 ‘에스더’에는 한번도 ‘하나님’ 혹은 ‘여호와’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믿음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성경에서 보이지도,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는 성경이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 속에서 극적인 긴장감이 절정에 도달하는 것은 4장입니다.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해결의 열쇠가 얼핏 보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찾아가 민족을 위한 수고와 헌신을 요청합니다. 그의 요청은 이렇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3-14) 하나님은 이미 이들 속에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전제로 하는 대화였고,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알고 신뢰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5-16)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권면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았고,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그녀는 함께 금식으로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세상의 상식과 법을 깨뜨리고 왕에게 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의논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했고, 하나님께 의지해서 나간 것입니다. 17절에서 모르드개 또한 믿음으로 반응합니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 4;17) 때때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나를 보호하시거나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감각이나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함께 역사하시는 분이며 그 증거를 에스더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과 삶에 역사하셔서 언약의 백성을 이방의 땅에서도 지키시는 것입니다. 성경 에스더의 가장 큰 영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죽을 수 있을까요? 또 하나 에스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 교훈은 순종에 관한 것입니다. 칠흑 같은 역사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인생의 가치와 역할을 고민하던 두 사람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합니다. 물론 글로 명확하게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기도와 묵상으로 그 일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삶이 보장됩니다. 그 일을 하면 삶은 큰 위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에스더는 죽음을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때로 참 위험한 일입니다. 나의 성정과 이익에 반대되는 여러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상식과 질서에 반대되는 결정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 결정을 실천했을 때 다가오는 수많은 불이익을 내 한 몸과 삶으로 지고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그래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은 예수님과 함께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함께 갔습니다. 요셉은 이방의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원칙을 지켰고, 다니엘은 원수의 땅에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나의 마음과 생각에 주시는 뜻을 위해 나를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요? 나를 위해 하나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사는 시대와 지역을 위한 뜻을 보여주실 때 나의 성정과 시간과 재물을 사용하여 헌신할 수 있을까요? 때로 내가 위기에 빠질 수 있고, 때로 내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때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가능성 앞에서도 나는 담대하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오늘날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 믿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에 대하여 옳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성경 에스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이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아마도 모르드개도, 에스더도 그렇게 이름 없이 사라져갈 수 있는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역사의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그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성경이 한 사람의 마음의 변화와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과 결정 속에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고 있고, 오늘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그들 속에서 발견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영웅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사람들을 주목합니다. 그들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비겁하고 나약하지만 그들에게 있는 믿음을 사용하여 담대하게 역사의 어둠 속을 걸어갑니다. 그들은 때로 죽음이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불 가운데 던져지기도 하고, 사자굴에서 뒹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순종과 헌신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펼쳐집니다. 그들의 삶은 순종할 때 가장 크게, 가치 있게 사용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자신의 삶을 드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두렵거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거나, 다른 더 중요한 것이 마음 속에 있어서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못하시는 것일까요? 모르드개는 이 일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믿음으로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일을 하십니다. 다만 우리의 삶이 참된 가치와 생명을 얻는 일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아닌, 나의 믿음의 실패이며, 내 인생의 가치를 얻는 일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비록 자신들은 허덕이며 배를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해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음으로 살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불 밝혔던 두 사람,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합니다. 함께 순종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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