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6. 기쁨의 공동체-4.변화의 시작 | 이응도 목사 | 2013-0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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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6. 로마서 12장/기쁨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4 “변화의 시작”(롬 12:2) 한 꼬마 아이가 꽃봉오리를 자기 손으로 펴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꽃잎은 조각조각 떨어져 버릴 뿐이었다. 마침내 화가 난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내가 펴려고 하면 꽃잎이 떨어져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펴시면 아름답게 펴지는데...?” 질문의 심오함에 깜짝 놀란 아이의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아이는 곧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외쳤다. “아~ 알았다. 하나님은 꽃을 안쪽에서부터 펴시니까 그런 거구나!.” 미르바 던은 그녀의 책 ‘Truly the Community’에서 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순응하는 것’과 ‘변화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려 합니다. 순응이란 사람의 개성이나 단체의 정체성이 외부에서부터 억지로 부과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변화란 개인이나 공동체가 내부로부터 열리는 것입니다. 이 둘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미르바 던에 의하면, 사람은 안에서부터 열려야 합니다. 내면, 다른 표현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곧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직 자신에게만 주신 삶의 가치와 목표를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자신을 결정하고 순응하며 살 것을 강요할 때, 그는 자기 안에서부터 역동하는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1.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 로마서 12:2에 나오는 ‘새롭게 하다’라는 동사는 ‘특정한 형태나 패턴의 표준을 다라 우리의 행동을 형성하거나 모양 짓지 말라’는 원래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필요나 요구에 굴복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 필립스 의역본은 이 본문을 “주변 세상이 당신을 틀에 박지 못하게 하라.”(Don’t let the world around you squeeze you into mold.)로 변역합니다. 환경이 나를 쥐어짜듯 쫓기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음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되며 환경을 주도하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개 교회의 개성을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지역에 이름을 달리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 교회들은 각각 어떻게 다르며 왜 여러 이름으로 존재해야 할까요? 어제 잘 아는 목사님 한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 지역에 신학교가 있으니 혹시 미국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싶은 분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원래 그 지역의 큰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분립 개척된 교회였고, 성인이 40명 정도 모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자 한분을 청빙해서 2년 정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흥하고 성장하면 좋겠는데, 상황이 어렵고 성도들이 조금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갑자기 사임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장로님 한 분을 포함하여 성인 15명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좋은 목회자를 만나서 교회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그 교회는 그들이 원하는 좋은 목회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만일 아직 준비된 대답이 없다면 함께 모이고 기도하고 연구해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좋은 교회를 찾아서 연합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느 한 교회의 잘못된 행정이나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는 것, 그들에 대한 반대와 미움이 새로운 교회 개척의 이유가 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시대를 본받지 않는다는 것,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교회가 존재해야 할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지역의 다른 교회들과 다른, 우리만의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다듬어야 하고, 확실하지 않다면 찾아야 합니다. 이 지역과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하나님이 이런 교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과 변화는 바로 그 비전과 목표로부터 한걸음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2. 성취 원칙(performance principle)의 함정 로빈 스크로지스라는 신학자는 자신을 가장 번거롭게 하고 수고하게 하는 잘못된 삶의 원칙은 바로 ‘성취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취 원칙’(performance principle)이란 성공 혹은 성취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을 최대의 선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성취의 원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숫자’입니다. 사회적인 성공도, 경제적인 성취도 모두 숫자로 평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러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성취의 원칙에 교회가 순응하게 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잘되는 교회, 번성하는 목회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취와 성공에 집착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소수의 성취를 즐기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다수의 실패한 교회와 목회자가 한 지역에서 함께 경쟁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울도, 빛도 소금도 되지도 못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취와 성공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장(場)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성취 원칙의 함정은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와 가정의 행복에 대한 기준도 바꾸어 놓습니다. 적어도 이정도의 부는 갖춰야 하고, 적어도 이정도의 명성은 얻어야 하고, 적어도 이정도의 지위는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삶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기쁨과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늘 부족하고 갈급하게 삽니다. 성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삶의 현실을 바라보며 보다 많은 성취와 성공에 허덕이게 됩니다. 가정의 행복은 어떻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성취의 일정한 기준을 들이대고 그것을 이루어야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고 요구한다면 과연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3. 마음을 새롭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성경 어디에서 우리가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없습니다. 다만 주신 삶에 감사하며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삶에 대해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입니다. 교회와 사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목회와 대형교회가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역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목회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숫자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우심을 성도와 교회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날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민 교회들이 다양한 사역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성공담을 교회를 통해 실현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현대 문화가 가진 물질주의, 시간관, 부도덕과 유행, 성공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을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가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에서 자유를 누리는 분이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시고 십자가라는 참으로 신실한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께서 그런 길을 먼저 걸어가셨다면, 우리 또한 그 길 가운데 우리의 인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각각의 피조물을 지으시고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어주시는 것은 그 모든 개체에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각 성도의 삶이 그러하고 각 교회가 그러합니다. 각각 그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목표를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안으로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성도와 교회, 안에서부터 동력이 자라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자원들이 오직 그 성도와 교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조합이 되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특정한 기준으로 획일화되지 않은, 각각의 창조적인 은사와 개성이 성도의 삶과 공동체를 통해 표현될 때 하나님의 창조적 성품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변화를 시작하다. 곧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한국 교회발(발) 비극적인 소식 하나가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정현 목사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개척했을 당시에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 주관하고 있는 국제 제자 훈련원에서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때 그 분의 열정적인 강의와 찬양 인도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C.C.C.에서 훈련을 받고 제자 훈련이라는 목회 컨셉으로 무장해서 25년 전 교회를 개척했고 하나님이 한 목회자와 동지들에게 주신 비전과 목표가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가 조기 은퇴를 결정하시고 후임으로 오정현 목사가 선택되었을 때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세습으로 많은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참 좋은 모범을 세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정현 목사가 가진 성과주의적 경향에 대해 많은 우려를 보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오정현 목사가 서울 사랑의 교회로 부임하고 가장 먼저 선택한 사역은 아쉽게도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1대 담임 목회자의 그늘을 벗어나고 자신의 사랑의 교회를 세우고 싶은 욕심이 앞선 것입니다. 건축법에 위배되는 많은 사항이 있었지만 사랑의 교회가 가진 정치력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적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오래 전에 오정현 목사가 받았던 남아공에서의 박사 학위가 의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렇게 외면의 성과와 성공에 목매는 사람은 학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보편적인 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박사 논문의 대부분이 표절로 확인되었고, 남아공의 학교도, 사랑의 교회도, 본인 자신도 큰 문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안으로부터 피지 못하고 밖에서 억지로 피우려던 한 야심있는 목회자의 삶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변화의 시작과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시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성공과 성취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뜻이 실천되는 신실한 교회가 우리의 비전이어야 합니다. 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말씀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한번 새롭게 된 경험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변화는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시간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때 날마다 새롭게 되는 은혜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변화될 때 우리의 말과 행동이 변화되며 관계가 변화되며 가정과 교회가 변화됩니다. 그 변화의 길목에서 서로를 돕고 세우며 함께 변화의 성장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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