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20. 기쁨의 공동체-5.변화의 원리 | 이응도 목사 | 2013-02-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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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20. 로마서 12장/기쁨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5 “변화의 원리”(롬 12:2) 특이한 모양의 풍선을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단 정상적인 모양의 풍선을 만든 다음 그것을 끈으로 이리저리 묶어서 푸들 모양이나 원하는 다른 모양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법의 문제점은 그 끈 때문에 풍선이 압박을 받아 뭔가에 조금만 찔려도 쉽게 터져 버린다는 점이다. 어떨 때는 끈이 느슨해지거나 끊어지는 바람에 모양이 망가져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외부에서 강제적인 틀을 사용해 푸들 모양의 풍선을 만다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두 번째 방법은 아예 그 풍선 고무 자체를 푸들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풍선 속에 공기만 가득 채우면 안쪽에서부터 푸들 모양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성령께서 우리를 내면에서부터 변화시키시는 방법은 바로 이런 식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그분만의 놀라운 독창성으로 우리를 각자 독특한 인격체로 만드셨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공동체에도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주셨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채우실 때 우리는 자신이 나타내도록 창조 받은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여기에는 억지로 어떤 틀을 강요하는 외부적 압력이나 외부 힘이 변할 때 우리의 참 자아가 상실될 어떤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된 자기 자신이 되는 자유와 즐거운 희열을 맛보게 된다. - 미르바 던, Truly the Community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NIV 성경은 전반부를 이렇게 번역합니다. “I praise you because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이것을 신묘막측(神妙莫測)이라고 번역한 것은 참 적절합니다. ‘두려울 만큼 놀랍게 만드셨습니다’보다는 ‘신묘막측’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그 원래의 뜻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다”입니다.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다. 많은 시편의 찬양들이 창조세계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새로운 차원에서 경험하면서 터져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그저 무덤덤한 감정으로 바라봤던 해와 달과 하늘과 별들이 어느 날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함이 있은 후 다시 바라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은하게 비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실과 인자가 늘 빛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선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눈앞에 펼쳐진 온 우주만물보다 더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이 자기 안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하... 이 신비하고 놀라운 우주만물을 지으신 분이 바로 나를 지으신 분이구나...’를 깨닫습니다. 자신을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 말씀은 우리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한 절의 말씀은 성도와 교회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과 목표를 한꺼번에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먼저 이 말씀은 ‘변화’에 대한 강력한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방향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먼저 그 변화는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따라 마음과 생각과 삶의 모습이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주인의 자리를 세상에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나도 영악해져야 하고, 세상이 바쁘고 각박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풍조를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 전 세계를 휩쓸었던 히피 문화나 1980년대와 90년대를 휩쓸었던 X-세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개인주의와 개성의 시대라고 말하는 오늘날의 성형 붐을 생각해 보십시오. 개인의 개성과 표현의 자유를 그토록 외쳤던 사람들이 같은 복장, 같은 생각, 같은 말들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개성이 가장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 많은 현대인들이 같은 코와 눈매와 턱을 가지려고 재정을 투자합니다. 이런 모습은 로마서 12:2에서 경고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는 말씀에 걸립니다. 미르바 던은 그녀의 책 Truly the Community에서 현대 사회에 가장 큰 이슈 중에 하나인 동성애 문제에 대한 이해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계획의 관점에서 본 그녀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역할 문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왜곡과 혼란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다는 사회의 문화적 기대(cultural expectation)가 낳은 부산물이다. 우리 각자가 창조된 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현대 문화의 말에 수긍할 때, 그러한 두려움은 우리 영혼 안에 끔찍한 타락을 초대한다. 예를 들어, 민감한 성향의 이성애 남자들이 그들의 부드러운 성격 때문에 남성적(macho) 문화에 의해 비난을 받게 되면, 그들은 진정한 남성적 우정을 배우는 대신 스스로 동성애라는 사회적 범주를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어떤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방도가 남성들의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가 현대인들을 재교육하는 방식은 이렇게 강력하고도 파괴적입니다. 예를 들어 나면서부터, 혹은 환경에 의해 부드럽고 섬세한 성향을 가진 남성을 이상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모습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현대 문화가 만든 새로운 성적 취향의 범주 속에서 해방구를 찾습니다. 목표와 성취 지향적인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대문화가 만든 ‘문화적 기대’라는 것이 그들이 가진 창조적 개성을 왜곡하여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는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자신을 향한 창조적인 계획을 발견하고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변화의 방향이지 목표가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된 변화는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으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비로소 마음도, 생각도, 삶도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고자 하시는 지식은 무엇일까요? 신앙과 삶이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섭리 가운데 원래 계획된 존재로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은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재교육합니다. 오히려 세상이 소비하기에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특정한 원칙을 만들고 유행을 만들고 거짓된 가치들과 평가의 기준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기준과 가치로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난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비로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혼란스럽게 하는 세상의 가치관을 지워내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실 때의 계획과 생각을 아는 것입니다. 원래의 창조의 목적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변화는 그 목표가 뚜렷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계획으로 돌아가는 것,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계획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변화이면서 회복입니다. 앞으로 가는 것이면서 또한 돌이키는 것입니다. 참된 회복, 참된 돌이킴, 참된 변화와 성장은 하나님의 창조적 계획에 우리가 비로소 동참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3. 변화에 대한 네 가지 권면 롬 12:2의 권면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골 3:9-10 / 지식에 까지 새롭게 되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2) 딛 3:5 /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의지하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 고후 4:16 /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적 변화를 믿으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참고 1 /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1) 참고 2 /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후 4:14) 4) 딤후 2:7-8 / 지성을 사용하라.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참고 /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4. P B P ; G I N F W M Y 미국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배지 중에서 ‘P B P ; G I N F W M Y’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Please Be Patient! God Is Not Finished With Me Yet!”라는 뜻 입니다. 나는 아직 변화 중에 있고, 지속적으로 변화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완성시켜 가실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한편 나는 여전히 변화가 필요하고 여전히 부족함 중에 있다는 겸손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는 늘 변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울이 고린도후서 4:16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저 날마다 후패해지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안으로부터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성경은 우리들에게 날마다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삶을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면, 성령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교회와 성도가 되었다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우리를 향하신 원래의 계획과 목표를 회복하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 없이, 늘 감사하며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에 대해 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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