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24. 기쁨의 공동체 - 8. 다양성의 힘 | 미디어선교팀 | 2013-0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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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24. 로마서 12장/기쁨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8 “다양성의 힘”(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5) 저는 한국 음식 중에서 찌개 종류를 참 좋아합니다. 주재료가 해물이든 육류든 원하는 재료를 다양한 야채와 함께 넣고 끓여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참 재미있고 맛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냉장고 있는 재료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닿는 대로 꺼내서 숭숭 썰어서 적당한 비율의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서 잘 끓이기만 하면 누구나 맛있는 찌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함께 여러 가지 재료가 모여 각각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그 찌개만의 독특한 맛을 만든다는 것이 한국의 대표 음식 찌개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의 찌개는 같은 이름의 찌개라 하더라도 집 마다,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는 겁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같은 이름의 수많은 다른 맛이 존재하는 것이 찌개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같은 사람이 만든다고 해도 또 다른 맛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도 찌개의 원리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로마서를 크게 보면 1-11장까지는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12장부터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2장 1-3절에서 자신의 논지의 근거를 먼저 밝혔습니다. 1절에서 그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절에서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구별하자고 권면했습니다. 3절에서는 자신에 대해 각자에게 허락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4-5절을 보면, 바울이 왜 로마 교회를 향해 이런 편지를 썼어야 하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교회입니다. 바울신학을 대표하고 있는 로마서는 결국 로마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나아가서 로마교회처럼 세상 가운데 세워지는 모든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보내신 편지입니다. 2000년 전, 로마교회가 경험했던 어려움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복음을 함께 묵상해 봅시다. 교회, 다름과 같음의 조화 교회가 가진 신비 중 하나는 바로 다름과 같음의 조화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며 각각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지체가 된다는 것, 또한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또한 각 교회가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지체가 된다는 것은 복음의 논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조화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이 놀라운 복음의 논리가 이해되고 설명되고 자랑될 수는 있지만 개 교회와 성도의 관계를 통해서 증명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다양성 가운데 연합하는 기독교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이라면 우리 가운에 이 공동체는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요?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그림은 성경을 통해서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을 우리들의 실제적인 관계와 구조를 통해서 실행에 옮기는 일은 우리들이 가진 한계를 직면하게 합니다. 왜 우리는 우리들의 다름을 하나님 안에서의 연합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양한 은사와 성품을 가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의 참된 연합을 경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를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 발휘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나 비전에 모든 것을 획일화시키려는 의도가 개인의 은사 발휘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로서의 모든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곳에서 은사를 넘치게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방향성이나 사역의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고 사역 또한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사역임을 고백하는 성도라면 그의 모든 일은 이미 하나님의 일입니다. 공동의 목표와 헌신자에게 허락된 사역의 자유, 이 두 가지가 아름답게 조화될 때 우리들의 모든 차이는 교회가 헌신하는 사역의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2. 직분과 은사, 넘기 어려운 벽 또 하나 교회가 만나는 어려움은 직분에 대한 오해와 편견입니다. 교회 내에서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각자의 은사에 맞게 허락된 축복입니다. 교회 공동체 앞에서 어느 직분이나 사역이 다른 직분과 사역에 대해 질적인 우위를 점하거나 더 많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직분의 차이를 사역의 질적인 차이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서로 합의해야 할 중요한 직분과 사역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연합의 원칙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연합하며 또한 각각의 은사를 발휘합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모든 은사와 사역은 중요하며 각각 감당하게 되는 직분 또한 연합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또한 이것을 강조합니다. 두 번째 원칙은 섬김의 원칙입니다.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를 섬기며 교회를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직분은 곧 ‘섬김’입니다. 권위나 권력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직분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더 많이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섬기는 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겸손과 순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합의해야 하는 원칙은 바로 합의의 원칙입니다. 내 뜻대로 열 개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보다 성도와 교회가 합의하고 협력하여 하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합니다. 이것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일과 사역을 위해 존재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기업이나 동호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몸이 되며 그 몸이 건강하게 움직일 때 그것이 사역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어 얼마나 아름답게 서로를 섬기며 서로 협력하는가에 있습니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덜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복음의 원칙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섬김과 나눔 가운데 누릴 수 있다면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기쁨의 공동체로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 공동체 사역을 위해 각 지체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헌신하고, 모두가 자신을 개인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연합된 몸 안에 속한 지체로 이해할 때 우리 교회 공동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우리의 연합과 섬김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다. 우리가 가진 은사의 다양성은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접근하고 보여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다양성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교회가 같은 얼굴로 존재할 때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을 폭넓게 만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각각의 은사를 따라 섬기는 다양한 성도들의 연합일 때, 또한 각각의 교회가 허락된 다양한 은사로 몸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때 교회는 세상의 다양성보다 더 넓고 깊은 창조적인 은사의 다양성으로 준비될 수 있습니다. Ernst Kasemann이라는 신학자는 “그리스도는 자신의 지체들의 모든 상황과 모든 역량과 약함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다. 세상으로부터 물러서지 않고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위해 그분은 제자도의 온갖 다양한 형태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이해할 때 그 다양한 속에 숨어 있는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려 합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립니다. 다른 말로 하면 능력과 자질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Kasemann이 언급한 대로 자신의 지체들의 모든 상황과 모든 역량과 약함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니다. 연약한 존재를 버리지 않으시고 부족한 인격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과 함께 결합하시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된 모든 성도는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모든 지체는 그 안에 허락된 각각의 은사를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자격과 은혜를 누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2:3에서 “이미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서 넘치거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눠주시는 믿음의 분량대로 수고하며 헌신할 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성도가 되며 교회가 됩니다. 4.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몸이 되어.... 문제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포괄적으로 세상에 증거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바울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롬 12:5)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 연약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고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와 결합한,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결핍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서는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기 쉽지만 함께 교회로 모이니 그리스도의 은혜가 공동체를 통해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회 문화는 교회 공동체의 문화와는 정반대입니다. 사회에서는 집단에 순응하든지 혹은 개인의 희생과 헌신 위에 집단을 만들어갑니다. 약자로 순응하거나 강자로 강요하는 것이 오늘날 세상적 관계가 가진 문화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 받은 은사를 따라 공동체를 섬깁니다. 공동체는 개인의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개인은 공동체의 목표와 비전에 자발적으로 헌신합니다. 이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폭발하게 됩니다. 세상에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양성은 교회의 힘입니다. 우리의 모든 차이와 다양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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