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1. 기쁨의 공동체 - 9. 서로에게 속한 공동체 | 운영자 | 2013-05-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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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 로마서 12장/기쁨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9 “서로에게 속한 공동체”(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참 재미있는 선배 목사님이 한 분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셔서 후배들도 잘 챙기시고 성도들도 잘 섬깁니다. 모두가 다 아는 효자입니다. 부모님을 한국에서부터 모셨고, 미국에서도 목회를 하면서 잘 모셨습니다. 지난 해 그 목사님의 아버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어머님은 많이 슬퍼하셨습니다. 교회당으로 오고 가는 길에 묘지가 있어서 그 목사님은 매일 교회로 오가면서 꼭 어머니와 함께 아버님의 산소를 들렀습니다. 요즘 어머니는 말끝마다 “내가 빨리 죽어서 너희들 아버지한테 가야할텐데...”말씀하십니다. 특히 며느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내가 죽어야지... 이 꼴 안보고 죽어야지... 빨리 아버지 옆으로 가야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거의 자학에 가까운 시어머니의 말씀에 며느리는 늘 꼼짝 못할 수 밖에 없었고 늘 힘들어했습니다. 몇 일 전에 하루는 어머니께서 며느리에게 또 “내가 죽어야지... 이 더러운 꼴 안보고 빨리 늬들 아버지한테 가야지...”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짜증을 내셨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목사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간절한 소원은 며느리에게 말씀하실 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를 하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실텐데 왜 자꾸 며느리한테 그러세요. 기도를 하세요, 기도를!!!” “무슨 말이니? 무슨 기도를 하라고?” “어머니가 날마다 죽고 싶다고 하시잖아요. 며느리한테 자꾸 말씀해봐야 아무 것도 안되거든요. 기도는 하나님께 해야지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줄텐데 왜 며느리한테 그러세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잠시 눈을 깜빡이던 곧 어머니는 벼락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고생해서 낳고 키웠더니 어미를 죽으라고 한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치셨습니다. 교회로 가서도 집사님들을 붙들고 우리 아들이 나 빨리 죽으라고 기도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어머니를 달래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이야기를 워낙 재미있게 하셔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저의 어머니 생각도 났고,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섬기는 많은 어르신들 생각도 났습니다. 사람의 숨겨진 마음과 표현하는 말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쉽게 섭섭해하시고 노여움을 타시는 어르신들께 잘해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가끔씩 불평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자신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하시지 그랬냐고 물으면, 상담을 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고 역정을 냅니다. 상담을 전공했으면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딱딱 알아서 이해하고 답을 줘야지 말을 안했다고 마음을 몰라주면 어떻게 하냐고 말합니다. 혹은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것은 섭섭하고 억울해서 홧김에 말한 것인데 그걸 그대로 믿고 상담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기가 말하는 것을 믿지 말고, 그 말을 하게 된 이유와 심경을 제대로 읽어달라는 것이지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표현하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화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이 아닌 마음을 읽는 사람입니다. 먼저 말하는 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은 저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에 누구도 정말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고,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기도하기 전에 나의 마음과 생각을 먼저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서 나와 대화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늘 대화의 부족에 허덕이고 불만족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의 신비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보다 잘 아시고 마음을 읽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 계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로 나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 로마서 12:5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속하였고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교회의 존재의 신비에 대한 중요한 진술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지체가 서로에게 속하였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이 말은 성경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한 몸을 이룹니다. 한 몸된 우리들 모든 지체는 서로에게 속하여 또한 한 몸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로에게 속하였다는 말은 ‘그 안에 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자신의 존재의 주권을 내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나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다른 지체의 필요를 따라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한 지체가 모든 지체의 필요에 헌신하고 또 모든 지체는 그 한 지체의 필요에 헌신합니다. 모든 지체가 이 원칙을 지키면서 서로 협력할 때 가장 건강한 몸이 되고 교회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적 원칙이 우리의 교회적 관계 속에서 실천되는 교회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속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은 우리의 교회적 현실에서 그리 쉽지 않습니다. 초기 교회 중 하나인 로마 교회조차도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서로에게 속하였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에 대한 태도의 문제 아담과 하와가 이루었던 공동체는 가장 아름다웠지만 곧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는 그들의 존재의 근거였는데,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의 근거를 깨뜨리고 나왔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건강하게 지켜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이웃과 지역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돕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섬김과 나눔의 기본 동기와 동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모이고 성장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역시 그 동기와 동력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의 성취나 성공, 보람이나 기쁨에 초점이 있다면 그 사역은 금방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교회는 먼저 예배하고 전도하고 세례를 주고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교회의 중심이기 때문이요, 교회의 존재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경건생활과 예배에서 힘을 잃을 때 교회는 서로를 섬기는 힘도 잃게 됩니다. 세상은 오늘 교회를 세상의 가치관과 관심, 방법론으로 물들이려 합니다. 이것은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현대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중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그것은 교회와 성도의 경건 생활과 예배를 통해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만족함과 평강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자신과의 관계의 문제 오늘날 교회의 공동체성을 방해하는 요소는 지체된 성도들 안에 있습니다. 지체로 섬겨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에 대해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들은 스스로를 복음과 공동체에 부적절한 존재로 여깁니다. 자신이 변화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교회가 자신에게 맞게 적절하게 세속화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경건과 거룩’이라는 교회의 표지를 허물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경계가 교회의 문턱을 높이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성도가 교회를 통하여 부적절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지 교회가 성도의 과거의 삶을 따라 세속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어떤 성도는 교회는 결코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자신의 종교성을 만족시키는 곳입니다. 모든 기쁨과 즐거움은 교회 밖에서 찾습니다. 단지 구원과 생명의 문제에 대한 답만을 교회에서 얻으려 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얻는 영적인 만족과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한 그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없습니다. 때로 낮은 자존감이나 죄책감이 공동체의 교제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구원하고 해방하는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죄와 수치감에 얽매여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스스로를 닫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합니다. 늘 안으로 갇혀 살아갑니다. 공동체에 존재하는 이러한 자기로부터의 소외의 가능성은 의외로 우리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방할 때의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속한 공동체의 첫걸음입니다. 4. 교회적 관계에서의 소외 오늘날 교회 공동체를 섬기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교회의 공동체성을 방해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교회 자체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성도들이 교회로부터, 교회적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잘못된 교회의 관행이나 문화, 건강하지 못한 관계, 개인의 연약함과 악함은 교회의 공동체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많은 지체들이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하지 못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상처와 아픔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교회가 성도를 소외시키는 현상은 빼 아픈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 자신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영적 자각과 반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여 한 몸이 됩니다. 각자의 삶에 문제가 있고, 만들어가는 관계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어떤 능력도 동기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독생하신 아들을 보내시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교회 공동체로 세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 있고, 내 안에,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에 속했고 교회는 주님께 속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속했습니다. 서로에게 지체되었고,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기능합니다. 다른 지체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나는 다른 지체를 위해 역할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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