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2. 기쁨의 공동체 - 12. 섬기는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 | 미디어선교팀 | 2013-06-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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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2. 로마서 12장/기쁨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12 섬기는 은사 & 가르치는 은사(롬 12:6-7)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롬 12:6-7)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은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은사란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지체로서의 모든 성도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되 허락된 은사를 통해서 전달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사는 은혜를 나누는 매개체의 역할을 합니다. 은사의 영적 유익 따라서 은사를 따라 공동체와 이웃을 섬기는 모든 지체들이 누리는 영적 유익이 발생합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사용되고 있다는 영적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라 받은 은사를 사용하고 있고,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은혜를 따라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삶에 참된 즐거움과 기쁨이 생깁니다. 이 기쁨은 하늘로부터 말미암는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높아지고 많아지는데 뿌리가 있다면 천국의 기쁨은 섬기고 헌신하는 중에 발생합니다. 나의 희생과 나눔을 통해 이웃의 삶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볼 때 깊은 감사와 희열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자유함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영적 자유는 “내 뜻대로 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아무런 내적인 장애나 어려움이 없음을 말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욕심에 내 마음과 삶의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따라 자신의 삶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누리는 참된 자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가 누리는 영적 유익은 공동체와의 상호작용 가운데 발생합니다. 성도의 영적 유익을 공동체가 함께 누리며 공동체에서 발생한 유익은 모든 지체가 함께 누립니다. 한 지체의 영적 자유로 말미암은 아름다운 섬김은 모든 지체의 유익이 되고, 공동체의 성장은 지체의 성장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로마교회에 주시는 은사의 종류에 대한 말씀은 예언의 은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언의 은사로 교회를 섬기기를 원하는 지체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믿음의 분량대로’였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대조되는 것 같은 두 가지 은사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르치는 은사’와 ‘섬기는 은사’입니다. 2. 섬기는 은사 ‘섬기는 은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과연 섬기는 것도 은사일 수 있을까요? 영어 성경 NEB는 ‘섬김’을 의미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를 ‘관장하는 일’(administration)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집사를 의미하는 ‘deacon’이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그 직함은 본래 사도들이 말씀 선포와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궤’하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에게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 단어를 교회의 필요를 따라 많은 일을 관리하고 섬긴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이 단어는 교회 공동체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지체들이 효과적으로 받은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일을 감당하고 섬기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교회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은사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때로 놀랄 만큼 섬기는 일을 잘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이 은사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섬김의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교회의 지체로서 보편적으로 허락된 이 은사를 인정하고 섬김을 통해서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섬김의 은사는 마치 너무 일반적이어서 은사가 아닌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섬김의 은사를 받은 지체들이 자신에게 있는 이 은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서 다른 은사를 추구하거나 열망하기도 합니다. 많은 교회가 가르치는 일이나 예언의 은사 등 눈에 띄는 사역만을 강조하다보니 조용하게 섬기는 은사를 발휘하는 지체들을 경시하거나 외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 이 은사가 사라지면 그것은 마치 차량을 정기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달리기만을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은 잘 달리는 것 같지만 곧 문제를 만나고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교회는 매일 구제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사도들이 가르치고 기도하는 사역에 전염할 수 있도록 그들은 남은 교회의 모든 일에 헌신했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안수하고 세워서 교회 공동체의 필요한 기능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들 없이 초대교회가 건강하게 설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가르치는 은사 하지만 섬기는 일로 안수를 받았던 집사들의 사역은 섬기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성도들과 교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섬기는 일을 감당할 또 다른 성도들이 나타났을 것이고, 그들은 교회의 필요를 따라 가르치는 일과 교회를 다스리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는 일에 일반 성도들의 참여를 강조하고 요청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겠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가르치는 일에 동역했던 초대교회 집사들의 사역의 연장에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에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는 세 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먼저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 혹은 가르치는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진리’를 가르치는가에 있습니다. 바울은 가르치는 사역에 동역했던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는 권면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원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바르게 전할 수 있어야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하기를 저마다 듣기 좋은 말만 찾아다니는(딤후 4:3-4/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일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가르침은 성경 위에 있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참으로 많은 정보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교회는 우리가 나누는 진리를 시대를 따라 소비하는 정보 중 하나로 격하시키기도 합니다. 교회는 진리의 가르침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시대의 격한 흐름이 교회를 흔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나누기를 원하는 지체들은 가르칠 내용에 대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방식과 종류를 다양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지체들의 관심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최선의 것을 나누는가에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성실하게 나누기를 원하는 교사들과 함께 역사하셔서 함께 나누는 성도들의 인격과 성품의 변화를 만들어 가십니다. 특별히 현대 교회에 많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가르치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에 있는 사역이나 앞서는 사역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하겠습니다. 다만 말씀으로 섬기는 일이요,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알아야 합니다.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것이요, 우리에게 허락하신 천국의 은혜를 나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자신의 말을 먼저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은사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함께 나누는 성도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아는 대로 제일 좋은 학습의 방법은 본보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성도가 함께 나누는 성도들의 삶의 좋은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의 책임과 의미가 더 무거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가르치는 자가 더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므로 되도록 교사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약 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이 말씀은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임과 동시에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는 지체들을 더욱 존경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 무거운 의무와 심판 앞에 있으면서도 그 사역을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은사와 섬기는 은사는 초대교회를 지탱했던 두 가지 은사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도들 또한 일곱 집사들이 교회를 섬기기 전에는 섬기는 은사를 감당해야했고, 섬기는 은사로 안수를 받은 집사들 또한 교회의 필요를 따라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함께 감당했습니다. 성도와 교회가 성장하고 은사와 사역도 성장합니다. 서로 조화되고 균형을 찾아가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회의 필요를 따라 자원하여 섬기고 헌신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섬기면서 서로에게 지체가 되어 순종하고 헌신하는 영적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초대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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