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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6. 기쁨의 공동체 - 13. 위로와 구제의 은사 미디어선교팀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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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6. 로마서 12/기쁨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13

 

위로와 구제의 은사(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8)

 

지난 주일 우리는 참 아름다운 연주회를 다 같이 경험했습니다. 감동적이면서도 기분 좋은 음악회였습니다. 청춘합창단을 계획하고 준비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 우리가 함께 만난 결과가 더 아름다웠습니다. 기대보다 못한 것이 우리의 삶의 현실이기 쉬운데 우리는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좋은 열매를 먹고 있습니다.

 

연주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저기 40명 가까이 서 있는 어르신들을 한 분씩 무대에 세워서 노래를 하게 하면 어떤 소리가 나올까...? 과연 음정과 박자, 가사와 감정을 용기 있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청춘합창 대원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우리가 경험한 아름다운 합창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함께 소리를 모으고 서로의 약한 부분을 도와가면서 노래했을 때 우리는 참 아름다운 하모니를 경험했습니다. 합창단원 모두의 감정이 노랫말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모두의 기쁨이 음정을 통해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과 힘이 아닐까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함께 하면 할 수 있는 일들.... 합창의 힘이 그런 것이요, 연합하고 연결하여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즐거움이 그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의 여러 은사들 중에 공동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은사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은사섬기고 나누는 은사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교회와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나누는가에 달려 있는 은사입니다.

 

1. 함께 할 때 잘해요.

 

혼자 할 때보다 함께 할 때 일의 능률이 더 오르고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로마서 12장에 나와 있는 은사 목록 중에서 오늘 우리가 생각할 은사들입니다.

 

먼서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위로하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은 121절에서 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권할 때사용했던 단어입니다. 고린도후서 1:4에서는 우리가 받았던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라고 말할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위로하다라고 하는 뜻 외에도 격려하다’ ‘촉구하다’ ‘탄원하다’ ‘경고하다’ ‘훈계하다등의 다양한 의미로 상황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롬 12:8에서 이 단어를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이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은사를 사용하는 행동 전체를 설명하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서로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할 누군가가 공동체 내에서 늘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땀 흘리되 기쁨과 감사함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 준비되어 있는 삶이란 참으로 든든합니다.

 

2. 잘못된 위로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내에서 늘 좋은 위로와 권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연약함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오히려 큰 상처와 아픔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상처와 아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가장 첫 번째 스텝은 바로 그들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우리는 다른 성도의 삶에 왜 그런 어려움과 아픔이 다가왔는지를 판단하고 설명하려 합니다. 답을 주려하고 길을 보여주려 합니다. 하지만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답과 길을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할 일은 함께 아픔의 자리에 있어주고 함께 눈물 흘려주며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성급하게 제시되는 단순한 해결책, 지극히 종교적이면서 교과서적인 답은 그 말을 하는 나에게는 정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런 말들이 자신을 마치 그 정도의 답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고 수치스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삶의 문제란 직접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직면한 문제를 내가 결론지으려 하거나 답을 제시하려는 태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가 해석하고 치료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1차적으로는 그 문제 자체로부터 아픔을 경험하지만, 2차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지독한 외로움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 12:8에서 공동체 내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은사를 받은 지체들이 해야 할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도 분명합니다. ‘위로하는 은사를 받은 지체는 위로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하지 않기로 해야 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정죄와 판단과 함께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답을 주거나 교훈하지 않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위로와 권면의 은사는 부드러움이 그 특징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연약한 중에 오히려 성장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베풂으로 얻는 기쁨

 

바울의 은사 목록에서 위로하고 권면하는 은사 다음으로 언급되는 은사는 구제하는 은사입니다. 구제하는 것, 나누고 섬기는 것도 과연 은사일까요? ,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면 기쁨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은사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 지속적으로 가능한 은사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베푸는 은사는 줄 것이 있어야, 내게 넘치고 남아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베풂을 통해서 얻는 기쁨을 놓치게 만듭니다. 이 은사의 기초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무한하게 공급하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바르게 깨닫고 누리는 사람은 소유가 넘치고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이 나누고 섬길 수 있게 됩니다. 한글 개정에서 번역한 구제’(metadidomi)에 대한 가장 적절한 번역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혹은 나누어주기일 것입니다. 단순히 재정적인 나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과 재능과 사랑과 물질을 다 포함하는 아낌없는 나눔입니다. 형제와 이웃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내가 채우고자 하는 기꺼운 마음입니다.

 

이 은사는 특히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샬롬(shalom)은 이 개념을 잘 정리해 줍니다. 물론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다툼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의 개념은 부족함이 없이 만족한 상태의 평화까지를 포괄합니다. 만족과 온전함의 상태, 복지와 평화를 포함하는 의미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에게 진지하게 샬롬~”이라고 말했다면 이것은 상대방이 그러한 만족과 평안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적인 표현입니다. 굶주린 이에게 샬롬을 말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목마른 이에게 샬롬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마시게 해야 합니다. 사회적인 억압과 차별 가운데 있는 지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함께 낮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고,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샬롬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순수한 동기로 나누라.

 

12:8 하반절의 NIV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if it is contributing to the needs of others, let him give generously” 한글 개역에서 성실함으로로 번역한 내용이 영어 성경에는 ‘generously’ , ‘관대하게’ ‘예의 바르게’ ‘아낌없이’ ‘후하게의 뜻입니다.

 

나누고 섬기는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 혹은 단체가 가장 쉽게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바로 섬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관대함 혹은 예의’(generosity)를 잃는 것입니다. 왜 스스로의 필요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판단하고 가르치려는 태도를 가지기 쉽습니다. 내 것으로 베풀고 나눈다고 해서 고압적인 태도나 얕보는 마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바울은 섬기고 나누는 은사를 사용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언급할 때 ‘generously’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베푸는 은사가 공동체 내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순전한 마음과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중적인 마음과 태도가 아닌 단순하고 순전한 마음을 가질 때만이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살고 나눈다는 단순한 의도를 품고 가능하면 많은 이웃과 함께 주신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제하는 은사가 한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만 사용되는 은사는 아닙니다. 구제의 필요는 바로 사회적인 불평등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은사와 사역의 공동체성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개개인이 할 수 있지만 정의를 행하는 것은 오직 공동체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 악에 저항하는 것은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바꿔 놓는 일은 오직 공동체로 뭉칠 때만이 가능합니다. 정의를 세우고 공의를 실현하는 일은 한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사회적인 불평등과 억압에 대해서 교회가 공동체로 함께 섬겨 나갈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은혜가 사회 속으로 스며들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속한 공동체는 늘 위로와 구제의 은사를 필요로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까지 우리는 이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서로 경험하게 됩니다. 날마다 마음을 낮추어서 서로를 섬기고 세우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사역이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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