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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 기쁨의 공동체-23.핍박하는 자들을 향한 축복 na kim 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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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 로마서 12장 기쁨의 공동체 23

핍박하는 자들을 향한 축복”(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2:14)

제가 신학교에 시험을 치러 올라갈 때 아버지께서는 시험장이 있던 인천까지 올라오셨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다고, 그냥 부산에 계시면 연락드리겠다고 해도 뜻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면접시험을 보던 둘째 날, 저는 사실 좀 민망했습니다. 면접하시는 교수님들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셨던 아버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저의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셨습니다. 결국 면접 하는 중에, “그래... 자네가 이성태 목사의 아들인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면접하시던 모든 목사님들이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에도 아버지는 무엇인가 제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다 좋은 교회에서 좋은 목사님들 밑에서 배우는 것이 좋다고 이 교회, 저 목사님을 소개하셨습니다. 자존심만 똘똘 남아 있던 저는 아버지의 그 어떤 권고도 따르지 않고 제가 선택한 사역지로만 다녔습니다.

제가 김해 평야 한 가운데 있던 샛별교회를 섬길 때였습니다. 공군 의장대장으로 복무하면서 20대 후반을 불태우던 시기였습니다. 한번은 헌신예배를 드려야겠는데, 강사로 모실 분이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아버지를 한번 초청해서 말씀을 듣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교를 부탁드렸더니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아직도 그 싱글벙글하시던 표정이 기억이 납니다. 그날 설교는 성도들에게 하는 설교라기보다는 제게 하는 권면였습니다. 계속 제가 어릴 때 어땠는지, 얼마나 아버지의 말씀을 잘 안듣는 아들인지, 그 아들을 여기까지 가르치고 인도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씀 가운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회 현장에서 말씀 전하시는 것을 정말 기분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계속 무엇인가 더 말씀해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1. 아들아, 내 아들아....

아마도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향해 품었던 마음이 그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디모데전후서를 통해서 영적인 아들로 삼았던 디모데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부모가 되어 1세기 초대교회의 목회자인 아들을 생각한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바울이 설명하는 초대교회의 현실은 고통하는 때입니다. 딤후 3:1-5는 그 시대와 세상을 향한 바울의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바울이 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세는 세상의 마지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현장의 다른 표현입니다. 목회자로서의 디모데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교회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권면합니다. 바울은 12-17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2-17)

2. 경건한 삶과 핍박받는 삶

3:12는 바울의 교회와 목회 현장에 대한 이해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와 목회자에게는 고난과 핍박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이말을 바울은 무릇’(In fact)라는 단어로 시작했습니다. 3:1에서 말세를 고통하는 때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바울은 이런 환경에서 목회하는 디모데가 바른 초점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가 고통의 정도나 핍박의 부당함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가 당한 모든 목회적인 어려움은 3:2-5의 표현 속에 들어 있고, 바울은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디모데가 핍박이 심할수록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3:13)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3:12)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In fact 박해를 받으리라”(3:12)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과 세상 앞에서의 박해를 함께 받게 됩니다.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건전지의 양극과도 같습니다. 이 둘이 함께 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In Fact’입니다. 다만 성도에게는 이러한 왜곡된 삶의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견딜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아들 디모데를 말씀으로 격려합니다. 바울은 14절에서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권면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불의한 세상 속에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견디고 승리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배우고 확신한 대로 사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 그것이 고난 가운데 있는 교회와 성도의 길입니다.

3. “축복하라, 사명이다.”

바울은 로마서 12:14에서 성도와 교회가 당하는 고난과 핍박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핍박하는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에 대한 핍박이 가져오는 영적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한 도전을 직면할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세상이 주는 고난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던져버리거나 그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빼앗지 못하도록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고통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우리가 가진 믿음의 가치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믿음은 핍박을 통해서 더욱 정제되고 다듬어집니다.

 

핍박은 또한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은 늘 경계선이 그려졌습니다. 복음에 순종하고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복음에 적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이 서 있었습니다. 복음을 적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핍박하며 결국 십자가를 준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핍박의 이유들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 그들 중에는 자기 논리를 더 강화시키고 더 굳건히 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같이 한 때는 핍박자였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점검하고 돌이켜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복음 앞에 직면하지 않을 때에는 모두가 복음에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복음을 접하고 핍박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 안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극적인 회심의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핍박을 당하던 핍박을 하든 그 이유가 복음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는 핍박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을 재고할 수 있습니다. 핍박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두려움과 분노일 것입니다. 롬 바울은 12:14에서 당시 성도와 교회가 보였던 즉각적인 반응을 언급합니다. 아마도 당시에 많은 성도들이 핍박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 줄을 압니다. 핍박을 당하면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은혜요, 핍박을 하는 사람도 자기 안에 있는 거짓된 논리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은혜에 무관한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핍박하는 세상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핍박하는 세상을 축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자 이유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존재가 세상이 축복이요, 핍박에 대한 성경적 반응이 축복이 되며, 선포하는 복음이 축복입니다

4. 내게 소망에 대해 묻다.(벧전 3:15)

베드로 사도는 벧전 3:15에서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벧전 3:15)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망의 이유를 묻는 것은 우호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14절에서 이미 베드로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벧전 3:14)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또한 교회와 성도가 존재하는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핍박하고 억압하는 환경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3:15를 다른 말로 이해하면, 성도와 교회는 이 세상이 발견하지 못했던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의문을 품고 도대체 너희 안에 어떤 소망이 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고 핍박하고 억압하는 우리들을 오히려 축복하느냐?”라고 묻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분명한 소망의 이유가 있을 때 그것은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세상은 그것을 거부하고 적대하기도 하지만, 한편 궁금해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이 삶을 통해 증거될 때 세상에 대해서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12:14의 본문 말씀을 디모데후서 3:12의 말씀(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와 교회는 핍박을 받을 것이다)과 벧전 3:15의 말씀(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왜 핍박 받는 성도와 교회가 세상을 오히려 축복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복음을 적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으로 산다고 하는 성도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적대적 행위를 당하지 않는다면, 세상 살기가 너무 편하다면, 아무도 내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말세에 핍박과 고통이 있는 때에 아무런 저항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말씀을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주신 주님, 그 열매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열매는 불의한 세상에 대해 축복이 되는 우리들의 삶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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