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5. 로마서 12장 기쁨의 공동체- 30.선으로 악을 이기라! | na kim | 2014-0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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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5. 로마서 12장 기쁨의 공동체 30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12:21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이것이다. 당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은 당신을 자신과 같은 사람 즉 악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며, 그의 악함은 당신의 선함을 이기지 못한다. 자신은 변화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이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신은 선을 행함으로써 그가 당신을 닮은 선한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 식으로 당신의 선함은 그의 악함을 이길 것이고 그는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사람을 승리자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렇게 마지막 해를 가한 쪽의 형편이 더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는 그것으로 끝장이 난 것이지만 해를 가한 쪽에게는 악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우매한 말에 우매함으로 대답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도록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의 친절한 대답은 그의 어리석음을 더욱 드러내줄 것이다. ...왜냐하면 우매함은 자신과 같은 무언가를 보고 있을 동안에는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무엇인가를 보게 될 때에는 자신에 대해 비로소 불만족하기 때문이다.” (Luther, Lectures on Romans/Westminster Press, 1961 p.356~357) 루터에 의하면 결국 싸움의 승리는 누가 누구에게 더 격한 공격을 하고 더 큰 피해를 입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누가 누구에게 영향으로 받고, 어떻게 동화되어가는가에 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닮으면 교회의 승리요,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면 세상의 승리입니다. 성도가 불신자과 구별되지 않으면 성도에 대한 사탄의 승리요, 불신자가 성도와 같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품을 때 성도와 복음의 승리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어떻습니까? 나의 매일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누가 이기고 있습니까? 누가 패배하고 있습니까? 1. 문제는 ‘태도’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해 함께 공부했던 ‘7가지 습관’ 중에서 첫 번째 습관인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라’는 결국 삶의 조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함께 봤던 ‘Carry Your Own Weather’라는 영상을 기억하십니까? 그 영상의 마지막에는 풀턴 쉰 주교의 말이 인용되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면의 날씨를 자기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자신이 품고 사는 세상의 하늘색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Each of us makes his own weather, determines the color of the skies in the emotional universe which he inhabits.)” - Fulton J. Sheen. 세상에 만연한 악을 보며 자신의 삶의 길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내면의 질서입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많은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발생했던 때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질서를 바꾸지 않으면 상황의 변화에 따라 문제는 또 다른 얼굴로 우리들에게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결국 ‘문제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적인 삶’이란 우리가 과거에 경험하고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의해 설명되는 생활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나는 문제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만나는 우리들의 내면의 질서이고 그 질서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악한 세상에 대한 승리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2. 세상은 악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악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악’은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악’이라고 말할 때 ‘the evil’이라고 한 것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하게 ‘세상’이 아니라 악한 문화, 악한 습관, 악한 사람, 악한 법, 악한 행동들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삶을 통해 만나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포함하고 니다. 아주 사소하게 우리를 염려와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하는 문제들로부터 당시 로마교회와 성도가 만나야 하는 로마 황제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정부 권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1장까지에서의 교리와 12장부터의 윤리를 설명하면서 성도와 교회가 지켜야 할 태도를 명시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은 “세상에게 지지 말고 진리로 세상을 이기라”는 말씀과 바꾸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즉, 바울은 교회와 성도가 속하여 살아가는 세상을 악한 것으로 보고 있고, 반대로 교회와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심 가운데 있음을 당연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이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 가운데 사는 성도와 교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역설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필연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3. ‘규범적인(normative)‘ 혹은 ’교정적인(corrective)’ 그렇다면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입장을 견지해야 하고, 어떻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먼저 논란이 되는 구절 하나를 생각해 봅시다. 롬 13:1-2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압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2:1-2) 이 말씀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성도와 교회는 언제나 그들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논리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특히 1절은 모든 정부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워졌으므로 교회가 속한 정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논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당시 로마 교회와 성도들이 처했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성경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각 성경이 기록된 정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어떤 상활 속에 있었고, 무슨 목적으로 그 성경을 기록했는지를 알면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보편적인 박해 및 불평등의 문제와 더불어 과중한 세금 징수에 대한 불만을 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이 가진 불만과 분노에 대해 ‘규범적인(normative) 교훈’이 아닌 ‘교정적인(corrective)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서나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교리적인 원리가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서 어느 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함께 와서 예수님께 규범적인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마 22:17)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마 22:21)라는 교정적인 대답을 주십니다. 당 시대의 상황 속에서 가이사에게 바쳐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따라 양보하지 말아야 할 우선순위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이 진리는 아주 단순한 세 가지 논리적 단계를 거칩니다. 첫째 세상은 악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절대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에는 기본적으로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셋째, 교회와 성도의 승리는 예정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악해지고 강해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약해지고 더 선하고 더 의로워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4. 세상 권력에 대한 이해 세상의 권력에 대한 바울의 보편적인 이해를 서신서들을 통해서 생각해 봅시다. 1) 지상의 정부들과 권력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만들어졌습니다.(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2) 그들은 타락했습니다.(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19-22)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4) 교회와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0-12) 예수님이 보여주셨고, 말씀을 통해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승리는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 속에서도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선한 삶의 원칙’입니다. 그 원칙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조롱하고 시험해도 주님은 선한 삶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의 원리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잘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의 길을 걸으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4-18) 바울이 성도가 견지해야 할 무기를 언급하면서 당시 천하무적의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의 전사의 모습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로마의 전사는 무기를 사용하지만 그리스도의 용사는 복음을 사용하고 기도를 사용하고 믿음을 사용합니다. 세상의 악이 성도의 선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성도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서부터 예정된 승리를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은 로마서 전체를 요약하면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21절에서 전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성도와 교회가 될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교회와 성도가 더욱 복음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있습니다. 승리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복음에 대해 담대하고 세상에 대해 용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승리하셨고,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이미 교회와 성도에게 허락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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