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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 The Radical Disciple – 2. 구별된 사람들(레 18:3-4) na kim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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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26. 초대교회 수요 예배

 

The Radical Disciple ? 2. 구별된 사람들(18:3-4)

 

교회와 성도는 세상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교회와 성도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함께, 그러나 다르게...’의 삶이 교회와 성도의 삶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John Stott 목사는 그의 책 제자도’(The Radical Disciple)에서 참된 제자의 가장 첫 번째 자질을 불순응’(non-conformity)라고 이름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주변 세상에 대해 이중적인 책임을 가집니다. 한편으로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그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교회는 세상과 같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도 안됩니다. 교회의 본질적 거룩함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세상과 이별해서도 안됩니다. 세상과 함께 있기 위해 거룩함을 희생시켜도 안됩니다. 도피도 아닌, 순응도 아닌 세상 속에서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면서 그들의 동화(同化)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1. 레위기 - “거룩하니..... 거룩하라!”

 

성경 레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레위기 11:4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이 말씀은 레위기 전체를 통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가르치시면서 그 모든 제사의 과정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과정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가장 자세하고 세밀하게 교훈하고 있는 레위기에 의하면. 예배의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대단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의 예배 이전에도 영광스러운 분이셨고, 우리들의 예배 이후에도 그 영광이 더해지거나 감해지지 않습니다. 참되고 가치있는 변화는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을 배웠습니다. , 제사와 예배를 통해서 영적인 유익과 변화를 얻는 것은 바로 예배자, 즉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옷입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서는 이것을 요약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2. 거룩으로 가는 길

 

그리고 성경은 곳곳에서 예배를 드린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연습하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레위기 18:3-4를 봅시다.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18:3-4)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통해 얻은 거룩을 어떻게 지키고 연습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레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우리들의 삶 속에 살아있고 역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을 연습하는 성도가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거룩함을 쉽게 상실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그들을 책망합니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11:12) 하나님는 제사를 드린다 하면서도 이방인들의 삶에 동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외식하는 자들과 이방인들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들을 본받지 말라!”(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 세상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세상과의 구별된 삶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위의 네 말씀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입니다.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성도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시는 것입니다. 세상으로의 동화(同化)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심지 있는 믿음과 능력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3. 현대사회, 무엇으로부터 구별될까?

 

그렇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오늘의 애굽과 가나안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요? John Stott 목사는 네 가지 현대 문화에 대해 말합니다.

 

1) 다원주의의 도전

 

다원주의는 모든 ‘......주의는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존중받을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구원의 유일한 길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그 나름의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오늘날의 교회는 다소 무력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모든 교육기관을 통해서 다원주의적인 태도가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고, 유일하고 근본적인 것을 주장하면 대화가 안되는 대상으로 낙인찍히기가 쉽습니다. 교회는 먼저 서로를 존중하고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만날 때, 가장 겸손하고 낮으며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지키고 보여주며 가르쳐야 할 것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진리에 관한 것, 신앙에 관한 것,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대화가 가능하고 토론이 가능해야 합니다.

 

2) 물신사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資本主義)라고 불립니다. 물질이 으뜸되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물질이 아닌 더 귀하고 가치있는 인생을 보여주고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물신사상은 영적 삶이 질식당할 정도로 물질적인 가치에 얽매여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물신사상을 경계하고 있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대신하는 현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6:20)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자족하는 은혜에 대해 증거했으며(4:11), 자족하는 마음이 경건에 도움이 된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딤전 6:6) 이어서 바울은 성경적인 물질관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6-10) 성경이 말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여정입니다. 여행을 잘하는 사람은 짐을 가볍게 쌉니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여정에 물질이 걸림이 되지 않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윤리적 상대주의

 

종교적인 다원주의가 윤리적인 문제로 옷을 바꿔 입으면 상대주의가 됩니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 아주 경악할만한 뉴스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연예인인 홍석천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는 겁니다. 강의의 내용을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이 뛰는 대로 움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입생들에게 놀라운 비밀을 털어놨습니다. 자신은 가슴이 뛰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300명이 넘는 선배들과 성적 관계를 가졌다는 겁니다. 그 한 사람을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다만 그가 자신의 삶을 여과없이 대중에게, 특히 아직 가치관이 여물지 않은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상대주의의 옷을 입고 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사에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성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을 많이 배웠다.”는 반응이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일부일처의 가정과 각각 다른 성의 결합이 창조의 원리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원리 안에서 성장하는 유일한 환경임을 믿습니다.

 

4) 나르시시즘(Narcissism)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연못을 지나다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물속에 몸을 기울이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맙니다. ‘나르시시즘이란 지나친 자기애, 혹은 자기 성취욕과 만족의 욕구를 함께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1970년 대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자기 개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교회도 그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는 뉴에이지 운동을 선두로 하는 인간의 잠재력 회복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고, 교회적으로는 긍정적인 사고와 제자 훈련 등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기 개발이 모든 부분에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장해야 하고 주신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동기입니다. 하나님이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기애의 도구로서가 아닌 섬김과 나눔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발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때 나르시시즘을 이길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8:29)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믿는 종을 부릅니다. 그를 고향 땅으로 보내어 며느리를 구해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두 가지 원칙을 일러줍니다. 첫 번째는 이방인들 중에서 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24:3-6) 이곳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입니다. 이곳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에게 동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 함께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분명한 지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세상 가운데 살지만 세상과 함께 살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우리는 세상을 닮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살아가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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