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dical Disciple – 3. 예수를 닮은 사람들(빌 2:5-8) | na kim | 2014-03-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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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5. 초대교회 수요 예배 The Radical Disciple – 3. 예수를 닮은 사람들(빌 2:5-8) 자신의 제자들 중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힌두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다면, 인도는 내일이면 너희 휘하에 있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한 예는 아랍의 무슬림이었던 이스칸다르 야디드(Iskandar Jadeed) 목사의 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늘날 이슬람은 없을 것이다.”
- 제자도(IVP, John Stott, p.46) 위에 인용된 문장에 동의가 되십니까? 우리는 이미 이런 종류의 영적인 자성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성도라면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어야 할텐데... 내가 만일 제대로 된 예수쟁이라면 내 이웃, 내 가족, 내 교회는 나를 통해서 무엇인가 변화되는 것이 있어야 할텐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적인 자성이 우리의 마음의 결단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John Stott 목사는 그의 책 ‘제자도’에서 같은 고민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청년기에 고민하게 했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게 했던 두가지 고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하는 것과 두 번째는 “우리가 회심했다고 하면, 그 다음 단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청년 John Stott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목적 요1 3:2-3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들을 향해 두신 목적가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해야 할 일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1 3:2-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는 중에 ‘그와 같이’ 됩니다. ‘누구와 같이’ 일까요? ‘예수님처럼’.... ‘예수와 같이’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것이며, 그리스도처럼 될 것이라는 아름다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3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 사는 동안 예수를 닮아가고 또 닮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2. 성경적인 기초 여기서 우리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세 관점(현재, 과거, 미래)에 대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택하심과 부르심은 변할 수 없는 우리의 과거에 이루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변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셔서 역사적인 목적을 지금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종말론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나라에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립니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이 하나의 목적으로 묶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감’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목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들에게 제시합니다. 롬 8:29와 요1 2:6, 고후 3:18을 통해서 생각해 봅시다. 1) 롬 8:29 / 목적을 미리 정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이 본문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고,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맏형님과 같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목적은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안에 그 형상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2) 요1 2:6 / 변화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1 2:6)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능력도,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보이셨던 삶을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내 삶 전부가 바뀌지 못한다 해도 나의 이 순간이 순종과 헌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변화는 현재 내 삶에 일어나고 있는 과정입니다. 3) 고후 3:18 /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 약속된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가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을 만날 때에는 이미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회복되고 변화되어 영원한 영광이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됩니다. 그 영광을 지금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3. 무엇에 대해 닮아갈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성육신을 어떻게 닮을 수 있을까요? 성육신(Incarnation)은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닮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가 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신 사건을 가장 요약하는 단어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빌립보서 2:5-8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닮아갈 수 있는지, 왜 닮아가야 하는지를 밝힙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섬김의 본받는 삶은 실천적입니다. 혹 교회에서 세족식을 재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발을 씻기는 행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헌신의 삶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엡 5:2에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3) 그리스도처럼 인내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한 때 ‘용서’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했던 적이 있습니다.(마 18:21) 그리고 그는 용서와 인내에 대한 묵상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초대교회들에 전합니다. 벧전 2:19-21은 인내와 용서에 대한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19-21) 4) 선교적 사명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선교적 사명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 그리고 그 선교적 사명이 제자들에 의해 계속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사명, 오늘날 우리들이 본받고 지켜야 할 가장 큰 사명입니다. 4. 그리스도가 보이는 성도와 교회 존 풀톤(John Pulton)은 ‘오늘날의 복음 전도’라는 작은 책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선포는 자신이 말한 바를 그대로 구현해 내는 사람들의 선포이다. 그들은 곧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 소통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지 말이나 개념이 아니다.... 진정성은....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전달된다... 잠간의 불성실로 인해 지금까지 소통을 위해 이루어놓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소통은 진실한 인격으로 가능하다.” 우리가 왜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을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는 성도와 교회, 사람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복음이 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윌리엄 템플은 어떻게 하면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내게 헴릿이나 리어왕 같은 희곡을 쓰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세익스피어는 할 수 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내게 예수님의 삶과 같은 삶을 보여주고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살았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러나 세익스피어의 재능이 내 속에 들어온다면, 나도 그처럼 희곡을 쓸 수 있다. 예수님의 영이 내 속에 들어온다면, 나도 그분처럼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못합니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을까요? 예...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가능성은 조금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변화되고 영광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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