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dical Disciple – 5. 창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신 10:14) | na kim | 2014-0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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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6. 초대교회 수요 예배 The Radical Disciple – 5. 창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신 10:14) “이들은 가능한 곳 어디에서든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를 선택한다. 불필요한 기기는 전원을 꺼 놓는다. 가능한 한 윤리적으로 건전한 환경 정책을 갖고 있는 회사의 식품과 재화와 용역들을 구매한다. 환경 보호 협회에 가입한다. 지나친 소비와 불필요한 낭비를 피하고 가능한 한 재활용을 한다.....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으로 모든 세대의 중요하고도 긴급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질병, 무지, 노예제도의 해악, 그리고 다른 형태의 잔인무도함과 착취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과부와 고아, 난민과 죄수, 정신이상자, 굶주린 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한다면서, 또 예수의 제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분의 소유인 이 땅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불가사의다. 그들은 이 땅이 오용되는 현실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낭비와 소비의 생활 방식으로 이 땅의 오용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창조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반영되도록 하셨다.” - The Care of Creation 서문에서 / John Stott John Stott 목사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자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세상에 순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날마다 더욱 닮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에 대한 주권적 다스림의 사역에 속한 것입니다. 1. 세 가지 기본적 관계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세 가지 기본적인 관계를 허락하셨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요약하는 한 마디는 바로 ‘하나님의 형 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관계가 파괴되었을 때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삶을 소비합니다. 두 번째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서로에게 ‘돕는 배필’(suitable helper)로 지으셨습니다. 서로를 보호하고 도우며 서로를 위해 헌신하여 섬기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 관계가 깨어졌을 때 사람은 서로를 해치게 되고, 손가락질 하며, 책임을 전가합니다. 서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과 죄를 나누는 관계로 삽니다. 세 번째 관계는 사람과 피조물들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어는 ‘다스림’입니다. 죄는 피조 세계를 다스를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사람에게서 빼앗았고, 이후 사람은 피조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이 아닌 소비하고 파괴하는 존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악으로부터 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회복하시는 것은 (1)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백성이 되는 것과 (2) 교회적 관계를 회복하여 한 형제되고 자매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3) 또한 죄의 결과로 신음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스리고 가꾸는 일을 감당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언젠가 우리들에게 허락하실 새하늘과 새땅(벧후 3:13, 계 21:13)을 바라보며 신음하며 고통하는 피조세계(롬 8:18-23)을 다스릴 사명이 있습니다. 2. 두 가지 선언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습니까? 성경은 두 가지 기본적인 선언을 통해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땅은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라는 하나님의 주권 선언과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시 115:16)라는 사람에 대한 위임 선언입니다. 이 두 가지 선언은 서로 모순되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창조로 만들어졌고, 위임으로 인해 사람의 손에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위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땅을 창조의 원리를 따라 보존하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사람은 끊임없이 땅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했습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했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땅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범죄 이후에 땅은 사람에게 노동하지 않으면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놓습니다. 더 많이 땀 흘리고, 더 많이 노력해야 땅에 대해 위임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삶을 소비하는 일과 땅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 이 두 가지 극단을 넘어서는 참된 지혜와 충성된 믿음이 필요하겠습니다. 3. 건강한 관계를 위하여 그렇다면 자연 세계와 우리 성도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는 두 가지 잘못된 태도를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을 신격화하는 일’과 ‘자연을 착취하는 일’입니다. 많은 환경보호단체들이 그들의 활동의 이론적인 근거로 창조주와 그분의 창조 세계를 동일시하는 ‘범신론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자연 세계를 영들의 거처로 이해하는 정령 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이 내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충족되고 스스로 조정하며 스스로 영속하는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뉴에이지 가이아 운동도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자연을 하나님인 것처럼 경배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아닌 다스림의 대상입니다. 또한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착취 또한 피해야 합니다. 자연에 대해 우리가 마치 하나님인 것 같은 결정권을 가지려 하는 것을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라’(창 1:26-28)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성있는 청지기의 역할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파괴적 소비와 지배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이 올바른 관계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연에 대해 인간과 하나님이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라”(창 2:15)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명령’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연이지만 그 자연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보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새로운 자원을 개발해야 하는가 하면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피조세계와 사람의 삶의 질을 조화롭게 높여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다스리는 일에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위임하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4. 예배하는 사람으로 창조하시다. 앙리 플로허(Henri Blocher)는 ‘태초에’(In the Beginning)이라는 책에서 창세기 1장의 절정은 일하는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위해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마지막은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람의 수고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먼저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의 수고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사람이 배우고 경험해야 할 가장 우선적이며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환경과 생태계의 위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미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포함하는 고민들입니다. 먼저 세계 인구의 증가에 대한 걱정입니다. 학자들은 2050년에 세계 인구는 약 95억을 넘어설 것이며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일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2014년 현재 인구의 1/5이상이 절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의 증가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구의 증가를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전쟁이나 기아, 질병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가 아닌 합리적이고 성경적인 대안들을 교회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지구 자원의 고갈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대체 연료가 계속 개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결국은 화석 연료로서 소비되고 나면 회복할 수 없는 자원이거나 핵과 같이 인류의 미래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연료들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와 국가, 인류적인 차원에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환경을 우리의 편의에 과사용하는 일을 줄여야 합니다. 쓰레기 처리 또한 환경을 다스리는데 큰 문제 거리입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최소한 3달에 한 번씩은 자기 몸무게만큼의 쓰레기를 버린다고 합니다. 1년이면 4배는 될 것이고, 평생 80을 살 경우 자기보다 320배가 넘는 쓰레기를 세상에 남기고 죽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릴 것을 명령하신 이 세상에 대해 큰 쓰레기더미만 남겨놓고 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기후의 변화입니다. 지난 겨울은 참 춥고 힘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기후의 변화가 감지되었고, 어려움을 겪은 지역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기후의 변화가 인류의 자연에 대한 개발과 무분별한 사용의 결과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교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발하고 이윤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을 맡기면 결국 이러한 기후와 환경의 변화를 형벌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상에 대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직분을 감당하면서 세상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거룩한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이 사명을 늘 기억하며 삶을 통해서, 공동체를 통해서 이 사명에 성공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을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신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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