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dical Disciple – 7. 균형(벧전 2:1-17) | na kim | 2014-0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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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7 초대교회 수요 예배 The Radical Disciple – 7. 균형(벧전 2:1-17) “짧은 기간 에드워드 8세로 재임했던 고(故) 윈저 공은 1972년 5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영국 T.V.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그의 성장 과정, 짧은 통치, 퇴임 등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예전 영상들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년 시절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조지 5세)는 엄격한 규율주의자였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면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누구인지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꾸짖으셨습니다.” 자신이 왕위에 오를 황태자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사람은, 그에 맞게 처신하며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제자도 p.101/ John Stott John Stott 목사는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실패는 거의 모두 제자의 포괄적인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태만에서 나온다.” 교회와 성도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삶을 살아갈 때, 자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부여된 정체성과 관련이 없는 삶을 살 때 시대와 이웃의 삶에 대한 영적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하고 허약한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어떤 삶으로 부름을 받았는지를 알 때 허락된 가치와 의미를 꽃피울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 교회에 대해, 성도의 삶과 가치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17의 말씀은 우리가 성도가 되며 교회가 되며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다양하고 균형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말씀에서 일련의 다양한 은유들을 사용하여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은유들을 통해서 각 은유의 의미와 그에 해당하는 의무, 그리고 그 은유들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서 우리의 제자됨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여섯 가지 은유들 1) 갓난아기 베드로 사도가 가장 먼저 사용하는 교회에 대한 은유는 ‘갓난아기’입니다. 다시 태어났기 때문(벧전 1:23)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네가 거듭나야 한다.”요 3: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영적인 갓난아기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기의식입니다. 니고데모는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합니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인격에 성령이 허락하시는 깊은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마음을 얻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갓난아기와 같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요? 베드로 사도는 수신자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2절) 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1절)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의 더러운 습성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의 인격과 습관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그리고 다시 권면하기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2:3)고 권면합니다.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다면 마치 젖을 맛본 갓난아기와 같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향하라는 것입니다. 2) 산 돌 (4-8절) 베드로가 두 번째로 사용하는 이미지는 ‘산 돌’입니다. 그는 지금 건축 중인 한 건물을 보고 있습니다. 그 건물은 돌들을 쌓아 올린 건물이며 교회입니다. 물론 그것은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성도와 성도로 구성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을 ‘신 돌’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십니다. 우리는 그 위에 하나씩 쌓여 거룩한 교회가 되어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한 교회로 서로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연결되고 연합하여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교회로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서로에게 속하였습니다. 함께 살아있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살아있는 교회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제사장 베드로는 앞에 사용한 두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들 모두가 스스로 자라야 하고(갓난아기), 서로 사랑하고 헌신해야 할(산 돌) 존재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성도에 대해 말합니다. 모든 성도는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장은 두 가지 특권을 누렸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희생과 은혜로 이 특권은 우리들 모두에게 나눠집니다. 성도가 제사장이며 교회가 제사장입니다. 히 10:19-20은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배라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너희는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4) 하나님의 백성 베드로는 우리들이 개인적인 성장(갓난아기)과 교제(건물을 구성하는 산 돌), 그리고 예배(제사장)의 의무가 있는 존재로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존재로서의 성도와 교회는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구약의 두 성경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첫째는 출 19:5-6입니다. 하나님은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소유가 되며 모든 나라 중에서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호세아서를 인용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호 1:9) 하지만 베드로는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ㅇ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 어둠에 있었더니 이제는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 있느니라”(2:10) 베드로가 잊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거룩한 나라와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것은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2:9)입니다.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5) 나그네와 행인 헬라어에서 본문의 ‘나그네와 행인’은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나그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고, ‘행인’은 집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수신자들을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삶이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입니다. 벧전 1:1-2에서 이미 베드로는 이 부분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벧전 1:1-2) 라는 말로 수신자를 지정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면서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에 잠시 속한 교회와 성도의 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적절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의 시민권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6) 종 베드로가 제시하는 마지막 이미지는 제자들을 ‘양심적인 하나님의 종’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6-17절에서 하나님의 종이 가지는 특별한 면이 있습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하나님의 종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 자유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종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소속과 순종의 참된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2. 균형 베드로가 사용한 여섯 가지 은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장이 필요한 갓난아기, 서로 돕고 섬겨야 할 산 돌, 예배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나그네와 행인, 천국의 시민인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이 여섯가지는 각각 세 쌍의 균형을 이룹니다. 먼저 우리는 각각 개인적인 제자로 성장하는 일과 공동으로 교제하고 섬기는 일에 함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느 한 가지가 우선하고 다른 한 가지가 차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은 균형과 조화 속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두 번째 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일과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일에 함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배에 소홀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배만 있고 증거가 없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 두가지 일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는 순례자로서의 삶과 시민으로서의 삶에 함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순례자이면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종이면서 자유인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와 교회가 제자로서의 삶에 쉽게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포괄적인 정체성을 잊는데서 옵니다. 조지 8세가 웨일즈의 어린 왕자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네가 누구인지를 늘 기억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한다면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존재로 부르셨는지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한 아름다운 삶, 간절히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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