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dical Disciple – 8. 의존(갈 6:2) | na kim | 2014-07-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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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14. 초대교회 수요 예배 The Radical Disciple – 8. 의존(갈 6:2) “1960년대에 소위 ‘세속; 신학자들은 인류는 성년이 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들의 충격적인 선언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지속적인 은혜에 의존해야 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분 없이 살려는 시도, 바로 그것이 정확히 죄가 의미하는 바다. - 제자도 p.121/ John Stott 하나님은 사람을 ‘의존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서로를 의존하게 하셨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John Stott는 그의 책 ‘제자도’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누군가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경험에 대해 그의 친구인 John Wyatt의 글을 통해 소개합니다. “John Stott는 수술 후 며칠 동안 방향 감각 상실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환각증 때문에 힘들어했다. 어쩔 수 없이 간호를 받아야 하는 처지를 창피해했고 , 미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우리가 병원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몇 년 전에 심하게 아팠던 일과 그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 둘 다 눈물을 흘렸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연약함과 나약함이 강하게 느껴져서 거기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자유를 가져다준 경험이었다.” 그는 연약함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죄악 많은 세상을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제자도, 그 중 하나는 바로 ‘의존’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고 부족하기 때문이며, 서로를 도우며 의지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모할 때 참된 제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할 수 있습니까? 캔터베리의 주교였던 마이클 램지는 목회자로 안수받기를 원하는 젊은 사역자들에게 겸손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이 은사와 사명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감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감사는 교만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토양입니다. 2) 죄를 고백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평가하고 반성하십시오. 하나님의 평가 아래 지신을 맡기십시오. 이것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세입니다. 3) 굴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겸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굴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십시오.... 이 모든 것이 자기를 낮추사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 하신 우리 주님께 좀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지위에 대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명령하신 단 하나의 지위는 ‘예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지위’입니다. 5) ....웃으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우주 안에서 무한히 작고 터무니없는 피조물들입니다. 여러분은 진지해야 하지만 침통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언가에 대해서 침통하다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까지 침통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에게 겸손함이 왜 반드시 견지해야 할 중요한 덕목일까요? 비로소 독단과 편견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고, 교회와 동역자들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의존은 성숙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중에 우리가 사용하는 ‘의존’이라는 단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존’이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며, 오류의 가능성에 대한 겸손함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더욱 섬기고 헌신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적절한 의존성은 오히려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려는 경향보다 더 성숙한 성품입니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는 사람이 서로를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덕목인지를 보여줍니다. 인종 차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72세의 고집스러운 할머니 데이지 여사와 미국인 흑인 운전사 호크와의 관계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데이지 여사가 운전을 하는 중에 브레이크 대신 액셀레이터를 밟아서 사고가 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녀의 아들은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운전을 허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한 지방 판사의 운전수였던 호크를 찾아냅니다. 데이지여사는 호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당신이 필요 없어요. 당신을 원하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데이지 여사의 호크에 대한 의존성은 점점 높아졌고, 결국 몇 년 후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정말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예요.” 영화가 끝날 무렵 호크는 85세가 되고, 데이지여사는 97세가 됩니다. 파티가 열리고 호크는 천천히 데이지여사가 좋아하는 호박 파이를 적당하게 잘라서 먹여주고 있습니다. 데이지여사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번집니다. 사람은 그렇게 의존하며 죽을 때까지 함께 성장합니다.(19:12~24:14/36:40~40;31/1:33:55~1:36-08) 3. 서로 짐을 지는 삶, 그리스도의 법 가끔 어르신들 중에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어요. 자녀들이나 교회에 짐이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요.” 이 말은 정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강한 자존심 혹은 배려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가정과 교회는 서로 의존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혼자됨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지 못하여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허락하신 이유를 묵상한다면 사람의 사람에 대한 의존을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를 섬기고 의존하고 함께 성장할 때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6:2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사도 바울이 상호의존을 ‘그리스도의 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아기는 ‘어른의 마음과 지성과 능력을 가진’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성장할 수 있고, 많은 어른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아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넘어질 때 누군가 손을 잡고 일어서야 했고, 울고 있을 때 누군가의 달래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시는 분이었고, 온 몸을 십자가 위에 내던지실 때에도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대적 무능력함의 순간에도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의존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앞서 소개한 John Stott의 친구이자 의사였던 John Wyatt는 자신의 삶에 다가온 고통을 통해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의존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과 보호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존하여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을 섬기며 도울 수 있는 존재로 삽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에 의지하여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생이며 평생 성장과 성숙해가는 과정입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우리들 인생에 대한 계획하심과 섭리하심이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생에 허락하신 뜻입니다. 4. 교만도 아닌 두려움도 아닌..... 사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의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합니다. 첫째는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다. 의존을 나약한 것으로, 비겁한 것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으며 혹시 나의 선택의 결과로 내가 무너지고 쓰러질지라도 그런 방식으로 나는 나를 책임진다고 말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서로를 돕고 세우는 관계의 복음적 역동성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논리입니다.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것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사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서로에 대한 ‘돕는 베필’(suitable helper)로 만드셨습니다. 둘째, 사탄은 우리들에게 ‘의존’에 대한 두려운 생각을 줍니다. 의존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도록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상을 하도록 만듭니다. 의존은 부족하고 못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의존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연약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할 것이라는 부정적 예상 때문입니다.
사탄이 주는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힌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도, 드러내지도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회복된 관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관계에서는 여전히 옛사람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우리의 신앙을 부정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잘못된 신앙을 가지도록 만듭니다. 복음과 신앙이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의존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의존도 거절합니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회복은 없는 것입니다. 가장 늦게 사도가 되었던 바울은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사도 바울이 썼던 모든 편지의 마지막에는 성도들과 동역자들에 대한 안부와 간절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사도 바울이 필요했고, 사도 바울에게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편지를 읽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바울과 동역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의지하며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이며,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된 교회와 성도로 성장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짐을 지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음적 관계,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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