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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한계를 만나다.(전 2:12-17) na kim 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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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9. 연약한 인생, 풍성한 은혜 2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육신의 한계를 만나다.(2:12-17)

 

고백하건데 저는 식탐이 있는 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대단히 맹렬하지는 않아서 민망할 만큼 표시가 나지는 않지만 가끔씩 정신없이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식탐이 있다고 판정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저는 긴장하거나 화가 나면 허기를 느낍니다. 상황이 뜻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 예상에 벗어날 때, 내가 원하는 질서가 통하지 않을 때 이상하게도 먹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배가 고프면, 그리고 그 배고픔이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화가 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서 집에 들어갔는데 밥이 없으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화기 치밀어 오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켰는데 예상되는 시간을 넘어서도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끓어오릅니다. 너무 유치하고 부끄러워서 표현을 못할 뿐 혼자 씩씩거리는 일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함께 먹는 음식이 나오면 늘 분배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개수를 새기도 하고 큰 덩어리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합리회하기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공평한 방식의 분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조금도 손해를 보기 싫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식사를 급하게 빨리 먹는 습관을 가진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누군가 저를 상담한다면, 가난했고 형제들이 많았던 저의 성장기에 대해 주목할 것입니다. 먹을 것은 늘 부족했습니다. 형님들은 셋째인 제게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 받을 것과 누릴 것은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다행스러운 것은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다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식탐과 함께 몇 가지 좋지 못한 습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식탐은 제가 고치고 싶은 습관 중 하나입니다. 사실 좀 소위 모양이 빠지기는 합니다. 허급지급 빨리 먹어치우고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는 일, 다 함께 먹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음식에 손을 뻗는 일, 숫자를 세고 양을 재면서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 머리를 굴리는 일 등은 다른 사람들이 굳이 눈치를 채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저 스스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번은 제 아내가 제게 좀 천천히 먹을 것을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함께 식탁을 나눌 때 이야기하면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러고 싶었습니다. 노력해보았습니다. 되는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식사의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몸에 새겨진 습관은 쉽게 되돌아갑니다. 이미 체질화된 식습관을 바꾸는 일은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1. 육신의 한계를 만나다.

 

우리는 다양한 한계를 인생 가운데 체험합니다. 그 중 하나는 우리들의 육신이 가진 한계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육신의 한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몸에 익숙하게 새겨진 습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우리가 극복하기 힘든 몸의 욕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의 육신의 범위를 넘어서는 우주의 질서를 통해서 다가오기도 하고, 질병이나 죽음의 형태로 닥치기도 합니다.

 

전도서를 통해서 만나는 솔로몬은 자신이 가지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식과 즐거움에 대한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2:3) 하지만 그의 결론은 한계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그가 찾은 답입니다. 그 고백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전도서는 결국 인간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성경이면서 한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에 대한 참된 지혜와 뜻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계를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요?

 

2. 노화, 한계인가? 과정인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중년이 되어 자신에 대해 가정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내면은 여전히 젊고 발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마음은 청춘인데....”라는 말들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온 노화라고 하는 현상을 인생이 만나는 하나의 한계로 인식하고 부정하려고 합니다. 일정한 기간, 마음보다 몸에 먼저 노화현상이 찾아오고 마음은 그것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 기간에는 무리해서 몸을 움직이다가 다치기도 하고, 예전같지 않는 몸의 반응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계속 예전 건강했을 때의 자신의 몸의 상태에 대해서 중얼거리면서 현실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또 하나 보편적인 반응은 노화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운동과 식습관, 그리고 수술과 약물 등이 사용됩니다. 물론 운동을 하고 자신을 가꾸는 일은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그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분명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형이나 약물을 사용하여 노화되지 않는 척하려는 것이 건강하지 않습니다. 결국 처절한 현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운동을 규칙적으로 열심히 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짜고 비타민을 먹고 보습제와 콜라겐을 바르고 지방을 뽑고 처진 살들을 당겨줘도 결국은 기력은 쇠하고 우리는 늙어갑니다. 다소 건강이 좋아지고 보기 좋아질 수 있으나 결국 세월을 이길 수는 없고 기력은 다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노화를 한계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아서 영유아기를 거쳐서 소년기, 청년기를 거치고, 장년기와 노년기를 지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라는 선물을 감사하게 잘 사용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화는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한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 여행의 과정입니다. 허락하신 시간을 살면서 허락하신 육신을 건강하게 잘 사용하고 육신의 선한 청지기로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과정을 중단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기쁘게 감사하게 잘 사용하기 위함이지 건강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운동과 기타 식습관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건강이라는 유한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또한 건강이라는 유한한 목표 또한 언젠가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한계와의 싸움이 아닌 시간 여행의 과정을 즐길 수 있으면 좋습니다.

 

3. 우리는 몸 이상의 존재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뜨르와의 51년간의 사랑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몸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곧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을 했던 보봐르는 어쩌면 그녀의 실존의 근거를 육신에서 찾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인간의 가치는 그가 가진 육신의 매력과 일치한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 문명은 이런 생각을 지지합니다. 눈에 보이는, 내가 체감할 수 있는 육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안정감의 근원을 몸에서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몸을 치장하고 단련하고 꾸미고 고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사람은 이상입니다. 우리는 영혼이며,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내가 가진 믿음과 비전이 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얼굴에 주름을 발견하고 머리카락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할 때, 분노와 부정이 아닌 육신 이상의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 가운데 있음을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 수퍼맨이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리브는 낙마 사고로 척추를 크게 다쳤습니다. 전신마비가 찾아와서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은 육체 그 이상의 존재임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척수 부상에 대한 연구 증진을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더 크고 가치있는 삶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파킨슨 병과 싸우고 있는 마이클 제이 폭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1991년 파킨슨 병으로 진단을 받았고, 병력이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99년입니다. 2000년 현역 배우에서 은퇴한 그는 마이클 폭스 재단을 설립하여 파큰슨 병 치료와 환자들을 돕는 사역을 시작했고, 각종 봉사활동과 모금활동을 주도합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병을 진단 받은 후의 10년이 내 인생의 최고의 시간이었다. 나는 행운아다. 내 몸의 질병이 내 삶의 가치를 제한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4.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두 사람의 질병은 그들의 내면의 성장의 기회였습니다. 대중의 인기와 영화에 집중하던 그들이 인생의 참된 가치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더 가치있는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전에는 오히려 육신의 한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한계에 허우적거리며 살았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에 그들에게 허락된 보석과도 같은 시간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질병이나 기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목회자로서 제가 그들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기도는 무조건 낫도록 해달라는 기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기도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신앙에 근거한 지식과 양심을 통해 드릴 수 있는 기도는 고통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질병이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을 경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된다고 해서 다른 질병이 없는 것 아니고, 이 질병에서 낫는다고 해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문제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그것을 벗어나면 다시 그보다 큰 문제가 덮쳐오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문제 중심의 신앙은 그래서 늘 새로운 문제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우리의 육신의 한계와 연약함은 오히려 우리가 육신을 넘어서는 더 큰 가치와 의미가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의 끝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인도하심을 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가운데 오히려 변화하며 성장합니다. 한계는 장벽이 아닌 하나님으로 인도하는 길이 됩니다.

 

한계를 부정하려고 씨름하며 허우적거리던 솔로몬은 결국 한계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아들 앞에, 그리고 교회 앞에 고백합니다. “헛되도다!” 그리고 그는 전도서의 마지막에 자신이 발견한 가장 중요한 지혜를 전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 한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한계를 발견하고 인정하고 그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진리를 찾은 것입니다. 인생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육신의 한계를 통해서 영원을 향한 아름다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들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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