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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 슬픔, 그리고 기쁨’(빌 2:5-11) na kim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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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2. 연약한 인생, 풍성한 은혜 13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포기하는 슬픔, 그리고 기쁨’(2:5-11)

 

나로서는 지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 약하고 시시한 것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강하고 중요한 것들로 변화될 수 있다. 평범한 것들이 비범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머리에 뿌려지는 맹물이 참 생수와 연합하는 세례가 되고, 빵 한 조국과 포도주 한 모금이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된다. 통제력 상실과 그로 인해 불가피한 포기는 모두 일종의 성례일 수 있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작은 걸음일 수 있다. 그분은 모든 상실을 넉넉히 보상해주시는 분이다.

-모자람의 위안, 도널드 맥컬로우/IVP, p.216

 

어제 청춘합창단은 가까이 있는 귄위드 양로원에서 함께 예배하고 미니 연주회를 했습니다.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양로원에 가서 예배를 인도할 때마다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곳을 통해서 얻는 삶에 대한 생각들은 좀 더 깊고 좀 더 영적입니다.

 

그 분들 중에서 제가 한 10년 전에 여성 봉사회에서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칠 때 나오시던 분이 있습니다. 20명 정도의 한국 아주머니들이 90분 수업에 절반은 수다로, 절반은 영어를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 때에도 수업에 나오던 분들 중에서 최고령이었습니다. 어찌나 성격이 대단하시든지 조금 늦게 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으면 불호령을 내리던 분이었습니다. 자원봉사로 가르치던 제게도 아낌없이 잔소리를 하시던 대단한 성품의 소유자셨습니다.

 

제가 처음 양로원에 가서 예배를 인도할 때 한쪽 모퉁이에 휠체어에 앉아계신 그 할머니를 보고 놀랐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안좋으셨습니다. 물론 저는 그분에게 저를 아시겠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휠체어에 실려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그 분을 보면서 정리되지 않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예배를 인도하러 갔을 때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승하와 함께 제가 휠체어를 밀어드렸습니다. 그때는 좀 말씀이 가능할 때여서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었는데 역시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승하가 귀엽다면서 방에 있던 과자와 두유를 주셔서 들고 나왔습니다.

 

요즘은 건강이 많이 좋아보였습니다. 어제 연주회를 많이 즐기시는 것 같았고, 중간에 집중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시는 다른 할머니에 대해서 젊었을 때 대단했던 성품이 드러내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그 할머니는 뵙는 것은 제가 양로원에 가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면서 의미 있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나는 맡긴다는 것

 

좋은 설교자였고, 또 기도에 대한 묵상의 글을 많이 남긴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런 기도문을 썼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의 몸과 나의 생명과 / 그리고 나의 전 인격을 당신께 드립니다.

나의 죄를 당신 앞에 가져왔으니 / 용서하소서.

나의 꿈과 소망과 목표를 당신 앞에 가져왔으니 / 축복하소서.

내가 당하는 시험을 당신 앞에 가져왔으니 / 그것을 이길 힘을 주소서.

나의 일과 의무와 책임을 가져왔으니 /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주소서.

나의 친구와 가족과 사랑하는 자들을 당신께 의탁하오니 / 그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소서.

당신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해 / 감사와 고마움을 당신께 바칩니다.

매일 밤 항상 나를 보호하고 감싸주시는 / 당신의 팔에 의지하여 잠들게 하소서.

 

하지만 이 기도 역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지와 소원으로 기도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속적인 욕망이 신앙화되어 기도로 표현되는 것보다는 보다 하나님의 뜻에 가까울 수는 있겠습니다. 맡기는 기도에서조차 자신의 신앙적인 의지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나를 포기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하나님 앞에서 연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 나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그런 영적인 경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언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될까요?

 

2.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적인 위기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던 주인공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순간을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깊은 한숨이 배경 음향으로 깔리고.... 주인공이 슬로우 비디오로 천천히 잔디에 드러눕습니다. 하늘을 봅니다. 깊고 푸른 하늘에 구름이 흐릅니다. 클로즈업 되었던 주인공이 점점 멀어지고 작아집니다.

 

삶에는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의지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양로원에서 함께 예배하면서 느끼는 막연한 부담감 혹은 슬픔들은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어제 한 장로님이 내 마음의 강물을 부르시면서 목이 매인 것도 한 때 푸른 청춘을 살던 처형이 지금은 휠체어에 의지해서 양로원에 계신 것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젊은 날들이 기억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두 발걸음 옮길 수 없고, 내가 입맛이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두 손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아마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저 내 다리에 힘이 없어서 휠체어에 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나서 누군가가 내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그 휠체어조차도 움직일 수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관계들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하나님에 주신 나의 마음은 여전히 푸르고 맑은 빛깔로 반짝인다면.... 나는 어떤 감정으로 나 자신과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요?

 

3. 포기하는 슬픔 혹은 기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할머니는 이미 나이가 많아 운전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와 운전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차를 특별히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일정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인정되기 어려운 것은 그 자유가 이제는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때입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기능을 하나씩 잃을 때마다 삶이 누리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어졌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황하고 부정하고 원망하고 슬퍼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데이지 할머니의 미소는 많은 것을 상징합니다. 자유를 잃었지만 관계 속에서 더 큰 기쁨을 얻은 사람의 미소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의지’(意志)포기사이의 힘든 긴장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관계적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보다 큰 관계 속에 들어가서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그 관계가 제시하는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지음 받음과 동시에 자기 고유의 정체성과 의식을 개발하고 성장시켜야 할 의무를 가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엄마의 품에서 시작되고 가정 안에서 성장하지만 자아가 성장하고 나와 너를 구별하고 자기 뜻을 주장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관계 속에 성장하여 개별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시 관계화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 판단과 욕구를 관계 속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합니다. 결국 사람을 창조하시고 세상에 내놓으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은 의지포기를 연속적으로 경험하면서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빌립보서 2장은 우리들에게 늘 깊은 묵상과 감사를 허락합니다. 내려놓고 포기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물과 피를 쏟으면서 고민하고 기도할 문제이며,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두려운 순간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느끼는 불안함은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적인 감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내려놓는 기쁨, 복종하는 즐거움을 이미 아셨습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감정을 잘 해석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드리는 기쁨, 자신의 살과 피가 제자들에게 나눠지는 기쁨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이 두 가지 감정을 경험하게 합니다.

 

4. 하나님을 만나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환경 뒤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놀랍고도 위로가 되는 경험입니다. 우리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오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소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연습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작은 포기들을 경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관련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포기할 때 우리는 슬픔과 아쉬움, 때로는 분노가 교차되는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나 자신의 의지와 즐거움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킬 때우리를 위해 그 일을 먼저 감당하신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삶의 한계를 통해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비로소 우리가 두 팔과 다리를 펴고 하나님의 품에 편안히 누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내 마음의 강물이라는 노래와 함께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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