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머 영원(전 3:11) | na kim | 2014-1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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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0. 연약한 인생, 풍성한 은혜 16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시간 너머 영원(전 3:11)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꺼내서 들여다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어떤 영원한 것이 있음을 안다. 그것은 집도 아니고 이름도 아니고 땅도 아니고 심지어 별들도 아니다.... 무엇인가 영원하다는 것, 그리고 그 무언가가 인간과 상관있다는 것을 모두가 뼛속으로 안다. 여태까지 살았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이 5천 년 동안 우리에게 말하고 또 말했건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놓치고 있다. 모든 인간의 저 깊은 곳에는 무언가 영원한 것이 있다.” - Our Town, Thornton Wilder, p.81 지난 8월, 로빈 윌리암스라는 걸출한 배우가 자살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약물 중독에 파킨슨병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12단계의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대중들에게 드러나는 모습과 자신만이 아는 내면의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워낙 좋아서 1990년에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고, 주인공인 로빈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영화는 1950년 대 말 버몬트 주의 기독교 계통의 한 보수적인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키딩이라는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은 바로 “Carpe Diem”이라는 시 구절입니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B.C. 1세기의 시인이었던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인용했습니다. 이 시 구절을 번역해버리면 맛을 잃기는 합니다만 굳이 번역하자면, “Seize the day!” 즉, “오늘에 충실하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장미의 봉우리를 거두는 때 영화에서 “Carpe Diem!”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상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키딩 선생님은 학생들을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방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현재를 즐겨라,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시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야. 믿거나 말거나, 여기 있는 우리 각자 모두 언젠가는 숨이 멎고 차가워져서 죽게 되지. 이쪽으로 와서 과거의 얼굴들을 살펴보렴. 여러 번 이 방을 왔어도 유심히 본 적은 없었을 거야. 너희와 별로 다르지 않아. 그렇지? 머리모양도 같고, 너희처럼 세상을 그들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 거라 믿고 있었고, 그들의 눈도 너희들처럼 희망에 가득 차 있었어.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 어떤 능력도 발휘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혀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여러분들.... 잘 들어봐... 여러분을 향한 그들의 속삭임이 들릴 거야. 자, 귀를 기울여 봐, 들리지 않니? 카...르....페,.... 들려...? 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너의 삶을 독특하게 만들어라!(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어쩌면 이 영화는 학교를 배경으로 기성세대가 가진 가치와 새로운 세대가 가진 삶의 창조적인 가능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조화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보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이미 과거의 삶을 살아온 기성세대가 만든 규율과 법칙을 지키며 살 것인가? 날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새로운 세대가 그들의 오늘을 가치 있게 만드는 새로운 길을 찾으며 살 것인가? 이 주제는 굳이 이 영화뿐만 아니라 교육과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관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2. 세 가지 허락하신 복 전도서에는 인생에 대한 신적인 통찰력이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인생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3가지 큰 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3:12-13절에 나옵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2-13)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상생활의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사회는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선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여 노동하고 대가를 가지고 함께 나누며 삽니다. 그리고 전도서의 기자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5:18-20에서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니라”(전 5:18-20) 두 번째는 9:9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와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에게 가정을 허락하십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 9:9) 전도서의 기자는 우리들의 평생을 헛되다고 말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은 즐거움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즐거움은 바로 가정을 구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3:22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 3:22)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노동하게 하시고 노동의 기쁨을 얻게 하십니다. 전도서에서 반복되는 ‘분복’(分福)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허락하셔 나누어주신 복이라는 뜻입니다. 노동의 대가를 빼앗기거나 허비하지 않고 나와 가정을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복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분복은 ‘Carpe Diem’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허락된 환경에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말로 들립니다. 하지만 전도서에 그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3. 옛 것을 다시 찾으시다. 전도서에서 가장 큰 고민은 인간이 시간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모을 수 있고, 사람을 살 수 있고, 쾌락을 누릴 수 있고, 지식과 지혜에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시간’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전도사 3:22에서 분복을 설명하던 전도자는 하반절에서 시간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고 했습니다. 사람은 주어진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어제의 삶을 오늘 다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내일의 삶을 오늘 알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오늘의 존재입니다. 전도서는 곳곳에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고백합니다. 전도사 3장 19에서 자신을 짐승과 다름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시간에 대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 3:19) 하지만 시간을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시간을 또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난 것을 찾으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4-15)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면서 두 가지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시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감입니다. 그 절망감의 끝에 바로 죽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절망이 향기, 곧 죽음의 향기를 맡습니다. 한편 우리는 시간을 통해 영원을 느낍니다. 시간이 있다는 것은 곧 영원 또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원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우리는 영원을 느끼면서 또한 소망의 향기를 맡습니다. 시간은 사람에 대한 절망과 하나님의 대한 소망을 우리에게 함께 줍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4.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손톤 와일더의 우리 동네(Our Town)은 한국에서 번안되어 뮤지컬로 공연되었습니다.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별히 그 뮤지컬 안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조지와 에밀리는 뉴햄프셔 주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사랑에 빠졌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룹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불행이 닥칩니다. 에밀리가 아기를 낳다가 죽게 됩니다. 에밀리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자신에게 딱 하루를 다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많은 먼저 죽은 사람들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 날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날의 달콤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맛보고 싶었습니다. 가족들이 부산하게 생일 케揚?굽고 선물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에밀리는 필사적으로 소리칩니다. “엄마... 1분만 우리 서로 바라보고 있어요. 정말 마음을 다해서 서로 바라보아요. 우리가 함께 사는 순간도 이제 곧 지나갈 거예요. 행복했던 순간도 다 지나간다구요. 우리 서로 좀 바라봐요. 나를 좀 봐주세요.” 에밀리는 묘지로 다시 인도되어 돌아옵니다. 오르간 연주자였고, 술고래였던 사이먼 아저씨가 에밀리에게 말합니다. “자, 이제 알았니? 살아 있다는 건 바로 그런거야. 무지의 구름 속을 그저 떠 다니는거야. 네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짓밟고 다니는 거지. 백만 년이나 살 것처럼 시간을 소비하고 낭비하면서 사는 거라고...” 하나님은 전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의 삶을 다양한 즐거움과 감사함 가운데 살게 하셨지만 시간을 넘어설 수 없도록 하신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허락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은 두려운 마음과 반대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른다면, 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었다면 우리는 두려움으로 시간의 강물을 떠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압니다. 시간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오늘의 기쁨과 즐거움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사모하며 오늘의 즐거움을 감사함으로 누리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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