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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3-44) na kim 201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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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7. 연약한 인생, 풍성한 은혜 18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11:43-4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5-26)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삶에 대한 모든 의지와 희망을 내려놓고 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렸고, 호흡이 멈추기 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누이들의 통곡이 점점 멀리 들려올 때 아... 이것이 죽음이구나... 이렇게 나는 이별하는구나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감각.... 누이들의 눈물에 젖은 손이었습니다.

 

나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누워 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드르릉.... 돌문이 굴려지고 밝은 빛이 쏟아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다시는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음성이었습니다. “나사로야, 나사로야... 내 음성이 들리느냐!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보렴. 일어서서 이리로 나오렴예수님, 나와 누이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미움으로 변했고, 소망에 지쳐 절망했던 나였는데, 예수님은 내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

 

묶인 몸을 뒤틀었습니다. 빛을 향해 나갔습니다. 내가 죽었음을 말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깊은 죽음의 동굴에서 생명의 주님께 나갔습니다. 수의가 나를 묶고 있었지만 발버둥치며 나갔습니다. 환한 생명이 세상에서 주님은 나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비로소 생명을 만났습니다. 죽음이 나를 동이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부정할 때 죽음 밖에서 나를 부르는 그 음성을 만났습니다. 죽음이 내 삶의 한계를 결정할 때 생명으로 나를 풀어놓으시는 주님, 밝은 생명의 땅에서 그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죽음 너머 삶을 펼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지금 내 나이가 좋아요.”

 

요즘 대학 동기들이 만든 밴드에 가입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몇몇 동기는 지난 해 미국 여행 중에 저희 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 친구들을 만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참 발랄하고 예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지난 날을 돌이키면서 참 좋았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요즘 내가 너무 좋아.”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 역시 가난하게 자란 남편을 만나고 어렵게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국립대학교에 영문과 교수로 있는 친구였습니다. “나는 다시 내 젊은 날로 돌아가기 싫어. 너무 힘들고 어두웠어. 나는 요즘이 너무 좋아. 내 나이가 좋고 내가 이룬 일들이 좋고, 내 남편과 자녀들이 너무 좋아. 친구들이 좋아.” 그 친구의 오늘에 대한 강력한 고백 앞에 다른 모든 친구들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묻혀 버렸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고백을 보면서 참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여배우 또한 그런 고백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젊은 날에는 알 수 없었던 삶의 경험들, 젊은 날에는 할 수 없었던 얼굴로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경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새롭게 만나는 경계들을 두려움이나 염려가 아닌 기대와 경이감으로 만나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2.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5-26)

 

예수님은 이 말씀을 원망하는 마르다에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함께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들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말씀의 능력과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절망,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 죽음이 곧 자신들에게 다가올 현실임을 간접 경험하고 있는 그들은 돌 무덤 속, 죽음 안에 갇혀 있는 나사로를 보면서 함께 죽음에 짓눌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이미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생명을 가르쳐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참 사람의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가르쳐도 그들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죽음 너머 영원한 생명에 속한 삶을 보여주시지만 그들은 오직 죽음이라는 한계에 가로 막혀 더 크고 높고 깊은 것을 경험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상은 진리로 충만합니다. 바른 가르침이 없어서 우리가 따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나를 따르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한 마디 말씀에도 삶은 변화되기도 하고, 3년을 동행해도 마음은 변화되지 않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에 놓은 분명한 현실로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경계를 정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경험과 사고의 경계 속에 가두어두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나의 한계와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5-26)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은 마르다와 제자들, 그리고 함께 모인 군중들에게 지금 참으로 귀한 경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모든 성도와 교회가 그 경험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경계 너머 냄새나는 시체로 누워 있는 나사로를 부르십니다. 죽음에 짓눌려 날마다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나오라! 죽음과 두려움의 세계로부터!”

3. 생명 너머 죽음 vs. 죽음 너머 생명

 

인류가 범죄한 이후 새롭게 경험하게 된 것은 죽음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든 삶은 발랄한 생명에 속한 것이지만, 죄와 함께 있는 삶은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삶, 예배와 찬양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두려움과 슬픔 고통과 눈물의 삶이 죽음에 속한 삶입니다. 살아있으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죄와 관련한 삶이라면 죽음 너머 생명으로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하신 성도와 교회의 삶입니다. 결국 생명 가운데 있지만 죽음으로 살 것이냐, 죽음의 경계 안에 살아가지만 생명으로 살 것이냐 하는 것이 성도와 교회가 늘 경험하는 삶의 문제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 경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자 사물입니다. 죽음의 경계 속에 살아가는 인류는 늘 죽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죽음 속에 살아가는 삶을 강요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골고다의 죽음의 언덕을 만들고 나무에 시체를 매달아 복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시대에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스스로 그 경계를 어깨에 지셨습니다.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우리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래서 우리의 삶의 방식이면서 붙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우리가 따라라 걸어야 할 삶의 모범이면서 우리도 그 삶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어리석게도 인류는 십자가를 사용해서 예수님을 위협하고 협박했습니다. 죽음 너머 세계에서 오신 예수님을 죽음의 경계로 위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비로소 죽음 너머 생명으로 가는, 생명 너머 죽음으로 가는 길이 되고 문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끝으로서의 죽음으로 위협하는 세상에 대하여 예수님은 죽음 너머 생명으로 답하셨습니다. 그 답은 믿음으로 십자가의 삶을 고백하는 모든 성도와 교회에게 인생의 정답이 됩니다.

 

4. “플어 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은 아직도 세마포에 싸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사로를 보셨습니다. 여전히 죽음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어찌할 줄 모릅니다. 두렵고 당황스럽습니다.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상황, 죽음 너머에서 생명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그가 생명 가운데 있음을 스스로 경험하게 하고 모든 사람에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마포가 그를 감싸고 묶어 놓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죽었다고 선언하고 그를 묶어 놓았던 모든 것을 풀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었으므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생명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나사로를 통해 주신 메시지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 움직이기를 원하십니다. 나사로를 통해서 우리가 간접 경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죽음을 함께 경험했습니가? 그의 무덤입니까? 절망과 한숨입니까? 낙심과 두려움입니까? 무덤이 열리고 그가 살아나왔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진리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2000년 전 그들은, 오늘 우리는 죽음과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참된 진리를 경험합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참된 생명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플어 놓아 다니게 하라!” 우리는 자신에게, 서로에게 이 명령을 실천해야 합니다. 새생명을 얻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에 속안 그 무엇도 우리를 가둘 수 없고 제한할 수 없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으므로 우리 또한 이미 그 경계를 넘었습니다. 죽음의 표식을 풀고 새생명으로 옷 입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삶의 한계를 죽음으로 정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십자가의 복음은 죽음을 넘어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 길 위에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춤추며 노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로 행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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