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low Church와 농부 하나님 | na kim | 2015-09-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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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3. SLOW CHURCH * 본 문 : 요한복음 15장 1-5절 말씀 * 제 목 : 1. Slow Church와 농부 하나님 1909년 2월, 당시 32세였던 이탈리아의 작가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는 프상스 신문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이 선언문에서 그는 과거 사회의 비생산성,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다가올 미래의 비약적 성장을 찬양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낡은 과거의 질서는 폐기되어야 하며, 새 질서와 근대화는 선한 것입니다. 평화와 인내는 약자의 것이며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쟁과 폭력은 정당한 것으로 미화되었습니다. 기성세대보다 청년세대의 패기와 진취성을 찬양했고, 자연 중심의 삶 보다는 기계화된 미래 사회를 동경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노동, 폭동,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대중을 찬양한다. 또한 모든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색깔과 여러 종유의 모든 혁명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는 박물관과 도서관이 무용하며 전쟁과 혁명을 통한 구질서의 개편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인류의 역사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바로 이탈리아를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하도록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1918년에 미래주의 정당을 만들고 무솔리니가 권력을 잡도록 도왔으며, 그의 나이 50대 후반에는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만든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자원입대했고, 60대에 들어서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 전선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일면 맞습니다. 20세기는 인류가 살아온 그 어느 시대보다 속도와 생산성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렸던 시대였습니다. 자본주의 열강들의 세계 대전이 반복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보이지 않는 자본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의 산업화로 인한 지구의 황폐화는 과거 인류가 수천 수 만년 동안 지구에 대해 입힌 피해보다 더 컸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풍성하게 소유하게 되었지만 인류는 더 많이 싸우고 죽였으며 불행과 슬픔, 분노와 절망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1. 'Slow 철학'의 등장 미래주의 선언이 발표된 지 80년 후, 1989년 12월 프상스의 파리에서는 15개국 대표가 모여 의미 있는 선언문에 서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Slow Food 선언문'이었습니다. 이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20세기 인류는 산업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기계를 만들어 발전시키는데 힘썼고, 종국에는 그 기계를 인간 삶의 표본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더 빠른 속도를 중시하는 산업주의의 생활 방식과 세계화로 인한 획일화 현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창조적이고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파괴하고 ’세계 표준화‘ 혹은 ’규격화‘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인류의 삶을 몰아넣었습니다. 이러한 사회문화가 가장 눈에 띄게 드러나는 분야는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Fast Food - 빨리 그리고 값싸게 음식을 만들고 공급하기 위해 양과 맛에 있어서의 규격화와 표준화가 발생합니다. 미국 전역에 가도 같은 가격, 같은 맛의 음식이 수백 수 천개가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맛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지만 이제 음식이 사람의 입맛을 길들입니다. 음식이 주는 감사와 즐거움보다는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다시 노동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이 Fast Food의 본질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요즘 새롭게 시도되는 운동이 바로 Slow Food 운동입니다. 이것은 ‘느리게 살기 운동’ 혹은 Slow City 운동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슬로시티란, 인구 5만 이하에 / 친환경적 농업과 지역 농산물 중심의 소비와 생산이 가능하며 / 생태 보존을 염두에 준 토지 활용에 동의하는 지역 사회 문화가 존재하는 도시를 말합니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 23개국 140여개의 도시가 Slow City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2. 복음적 중립지대와 Slow Church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겁니다. 그 중 하나는 ‘복음적 중립지대’입니다. 이것은 교회로서의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적 중립지대는 성장이 아닌 섬김이 목표됩니다. 집중이 아닌 나눔이 목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 사랑을 통해 실현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충만한 대기와도 같이 섬기고 헌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서론에서 소개한 ‘Slow’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 또 하나의 가치를 고민하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는 ‘생산성과 속도’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가치에서 한 걸음 뒤처지는 순간, 곧 퇴보와 도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또한 이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요즘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는 일이 과거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건물과 후원, 그리고 적당한 수의 성도를 확보하고 교회를 시작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3년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실패한 것과 같다”고 합니다. 목회자 혹은 교회의 리더들이 그 교회를 ‘실패’라고 말하는 순간... 그 교회를 출석하며 섬기는 성도들의 삶과 영성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 교회가 아무도 없는 교회가 아니라면, 리더를 포함하여 두 사람 이상의 성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하고 있었다면 어떤 교회도 실패는 없습니다. 다만 성장과 성취가 Slow할 뿐입니다. 사역의 방향과 과정이 effective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실패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목회에 실패하는 목회자 혹은 리더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요즘 연구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Slow Church입니다. 복음적 중립지대가 교회의 성장과 목회자의 성취를 목표로 하지 않는, 섬김과 나눔의 가치 중심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처럼 Slow Church 또한 그렇습니다. 생산성과 속도라고 하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뜻으로 살고자 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크기와 관계없이, 성장의 속도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허락하신 가치와 목적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지역사회와 시대를 경작하시는 농부 되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땀 흘리며 추수의 때까지 성실하게 섬기는 교회를 말합니다. 3. Fast, Faster, and Fast Church 그렇다면 Slow Church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Fast Church 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Fast Church라고 불리는 교회는 없지만 교회의 지향성과 방법론이 ‘fast’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 때 Fast Church로 불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fast와 slow를 단순히 변화의 진행 속도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쓴 Carl Honor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개념들은 우리의 존재 방식 혹은 삶의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fast’는 바쁘고, 호전적이며, 서두르고, 통제와 제압을 일삼는 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런 삶의 방식은 분석하기를 좋아하지만 깊이가 없고,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기다림이 존재하지 않기에 늘 긴장과 압박감이 도사린다. ‘slow’는 이와 상반된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침착하고, 차분하며, 매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수용적이며,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삶의 방식이다. 분석보다는 사색이나 성찰을 선호하고, 양보다는 질을 우선한다. ‘slow’운동은 한마디로 사람, 문화, 일, 음식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것과 진정으로 의미 있는 소통을 추구하는 것이다.”(Carl Honore, 느린 것이 아름답다. 대산 출판사 2004 p.14-15) 사회학자인 George Ritzer는 'fast'문화 현상을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이리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를 “패스트푸드 매장이 미국 사회의 각 구획은 물론 전 세계를 잠식해가는 원리에 의한 사회 현상이다”라고 했습니다. 맥도날드화의 4가지 중요한 요소는 1) 효율성(efficiency) 2) 측정 가능성(calculability) 3)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4) 통제성(control)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fast food에 길들여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서부 사막에서 먹는 빅맥과 동부 산골짝에서 먹는 빅맥의 맛과 크기와 가격이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한 때 한국 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가 있었습니다. 온누리교회 지성전의 문제였습니다. 온누리교회가 가진 예배와 훈련과 영성이 그대로 카피된 일정 규모 이상의 교회를 전세계에 건설한다는 것이 목회자의 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교회들이 각 지역에 들어섰을 때 주변 교회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와 함께 전 생애에 걸쳐서 훈련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깊이 스스로 묵상할 수 있는가? 혹은 내가 얼마나 좋은 훈련을 받았는가? 혹은 내가 얼마나 양질의 예배 공간 속에 있는가?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식물을 성장시키는 핵심은 뿌려지는 비료가 아니라 건강한 토지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가진 생명력, 토지의 자양분이 풍성해야 합니다. 오늘날 서구 사회 중심의 기독교는 산업화, 기계화, 상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지역 혹은 시대적 특성과 관계없이 정형화되었습니다. 부흥과 성장을 위해 마케팅 전략이 도입되었습니다. 목회자가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예배에는 치밀한 각본이 준비되고, 유명교회가 브랜드화 되었습니다. 교회성장학은 마치 공식처럼 학습되고 적용되었습니다. 교회가 가진 본질적 기쁨과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4. Slow Church, 회복된 기쁨 “우리는 Slow Church를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생활양식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 Slow Church는 산업화한 교회와 맥도날드화한 교회성장론의 허구를 밝히고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한다. 또한 우리는 Slow Church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함께 살게 하신 통전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Slow Church는 주도적인 삶을 위한 부르심이다. Slow Church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모든 피조물에 연결되어 서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주목해야 한다.”(Christopher Smith and John Pattison, Slow Church 새물결 플러스 p.28-29) Slow Food 운동가인 웬델 베리는 ‘식사는 농업행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식탁을 단순한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Slow Church의 개념에서 성도들은 수동적인 영적 소비자로 머물기를 거부합니다. 생산성과 속도의 홍수에 지친 성도들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증을 부여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삶의 현장에서 한 성도, 한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주체로 세워야 합니다. Fast Food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그 음식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어떻게 가공되는지 무관심합니다. 다만 내가 먹기 좋고 익숙한 맛으로 내 손에 들어오면 됩니다. 음식이 주는 참된 기쁨과 감사를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대형화 되었지만 기쁨이 없고, 날마다 봉사하고 헌신하지만 감격을 잃을 수 있습니다. Slow Food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비로소 식탁에서 음식이 주는 기쁨과 감사, 그 음식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회복되었다고 말합니다. Slow Church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규모, 사회적 양심에 위배되지 않는 참여, 환경 친화적인 활동들, 지역 사회에 대한 참여와 헌신, 개인의 묵상과 공동체의 삶의 나눔, 교회 역사와 공유하는 전통과 문화 등 Fast Church가 잃고 있는 신앙생활의 맛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빨리 달리고 크게 성장하려는 욕구에서 해방되면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기며 더 아름답게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농부로 비유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또한 그렇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때와 목적에 맞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거두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때를 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내가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농원에서 내가 씨를 정하고 뿌리고 나의 때에 열매를 거두려는 어리석음이 바로 이 땅에서 모든 영광을 구하는 현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약 10주간 우리 교회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Slow Church 속에 공동체의 참 좋은 맛이 숨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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