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교회의 맛, 예수의 맛 | na kim | 2015-1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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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7.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 SLOW CHURCH * 본 문 : 빌립보서 2장 1-8절 말씀 * 제 목 : 4. 교회의 맛, 예수의 맛 최근 한국 교계에 화제가 되는 사건 하나는 ‘수영로 서울교회’입니다. 지난 8월부터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인 수영로 교회가 서울로 진출한 성도들을 위해서 동신중학교 건물을 빌려서 수영로 서울교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담임 목사인 이규현 목사가 한 달에 한번 이상 올라가서 예배를 인도한다고 합니다. 중앙 집중적인 한국 사회의 특성상 가끔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 서울로 진출하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서울의 기업이 지방에 지회사를 개설하기 때문입니다. 수영로 서울교회가 화제가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의 대교회가 지방에 지교회를 설립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방을 근거로하는 교회로는 처음으로 서울 지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 지역은 명성교회와 오륜교회, 사랑의 교회와 소망교회와도 가깝습니다. 그 사이에 설립된 수영로 서울 교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한때 ‘맛을 보고 맛을 하는 샘표간장’이라는 카피가 한국 교회 성장의 표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번 하나님을 믿는 맛, 신앙생활의 맛을 보면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석했던 부흥집회마다 강사들이 ‘맛을 보고 맛을 아는...’이라는 노래와 함께 교회가 세상에 예수 믿는 맛을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지역에서 성장을 이룬 교회가 환경 다른 새로운 지역에 지교회를 설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다른 교회에는 없는 그 교회가 가진 독특한 맛을 다른 지역에서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의 방식이 같고, 전하는 말씀도 비슷합니다. 성도들의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 같습니다. 선교의 방법과 대상도 비슷합니다. 교회가 프랜차이즈화되는 것입니다. 다만 지역이 다릅니다. 환경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다릅니다. 교회가 전해야 하는 맛, 교회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맛은 어떤 맛입니까? 성공한 교회와 목회 방법론의 맛입니까? 오늘날 미국에까지 곳곳에 세워진 한인 지교회들을 보십시오. 세상은 혹은 성도들은 그 교회를 통해서 예수의 맛을 느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를 만나기 전에 서울에 있는 본교회의 맛, 본교회 목회의 맛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들이 원하고 길들여진 맛은 과연 어떤 맛입니까? 1. 맥도날디제이션(McDonaldization) 메릴랜드 대학의 교수였던 사회학자 George Ritzer(조지 리처)는 그의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서 처음으로 ‘McDonaldization’이라는 용서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한 사회의 문화가 패스트푸드 음식점과 같은 특징을 가질 때 이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맥도날디제이션은 현대사회를 문화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한 방법입니다. 세계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서 비슷한 문화를 재생산하면서 문화적 제국주의화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문화의 특징을 4가지로 요약합니다. 1) 효율성 - 이 말은 업무를 달성하는 최적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패스트 푸드로서의 맥도날드는 배고픔에서 배부름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맥도날디제이션에서 의미하는 효율성은 어떤 기관의 모든 요소가 최단 시간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측정가능성 – 측정의 대상은 맛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아닌 판매량과 같은 객관적 요소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맥도날디제이션에서 양은 곧 질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지불한 비용 대비 얼마를 얻는지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량화 가능한 결과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3) 예측가능성 – 이것은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언제든지 같은 양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프랜츠이즈를 다시 찾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4) 통제성 – 맥도널드는 분명히 식당이지만 조리사 혹은 요리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고용자에 불과합니다. 조리의 과정은 이미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고, 노동자들은 그 시스템 속에서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기술과 시스템에 통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The McDonaldization of the Church 에버딘 대학교 실천신학 교수인 John Drane은 ‘The McDonaldization of the Church’라는 책에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는 먼저 다른 교회의 실패와 성공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의 시스템이나 목회, 문화나 행정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각 교회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부러워하는 동안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놓쳐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한 교회에서 대단히 빠른 시간에 대단히 큰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효율성으로 말하면 가장 비효율적인 목회를 하신 분은 예수님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순교를 당한 제자 한 사람 없이 쓸쓸하게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때로 신앙생활이란 시속 100마일을 달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천천히 한걸음씩 걸으며 온 들판에 충만한 풀꽃 향기를 느끼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거둘 열매를 바라보며 지금은 계속 씨를 뿌리고 거름이 되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투자로서의 복음적인 헌신과 열매로서의 전도 혹은 교회의 성장이 수치화될 수도, 되어서도 안됩니다. 교회가 수치화될 때 숫자는 사탄의 것이 되고 맙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 좋은 교회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측정 가능한 가치들과는 관련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대부분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깊은 교제의 시간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3. 맛보아 알지어다! 특정한 목회의 기술이 교회를 장악하는 순간 교회는 일정부분 맥도날디제이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의 제자훈련이 들어오고 사랑의 교회의 성공이 모든 목회자의 목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의 시스템을 자기 교회에 이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미국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에서 시작된 가정교회의 열풍도 그렇습니다. 매년 세미나가 열리고 수많은 목회자들이 가정교회 목회의 현장을 견학합니다. 자기 교회에 그 시스템을 이식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 미국 동부지역에도 제자훈련 혹은 가정교회를 모델로 하는 목회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십시오. 제자훈련과 가정교회를 지향하는 소수의 다소 성공한 교회와 대부분의 허덕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성공한 교회들은 그 교회의 모델을 그대로 이식한 교회가 아니라 모델이 된 목회 시스템의 토착화에 성공한 교회들입니다. 시 34:8에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 5:13에서 예수님은 교회와 성도가 세상의 소금과도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는 맛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에게도 맛이 있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맛이 가장 잘 표현된 성경이 있다면 바로 오늘의 본문(빌 2:1-8)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교회의 맛의 핵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빌 2:1) - 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빌 2:2,5) 그 마음을 가진 교회는 낮은 곳에 마음을 둡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바로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선택합니다.(빌 2:7-8) 4. 맛, 교회와 성도 여러분은 오늘 커피 한 잔 하셨습니까? 성도와 교회의 신앙 생활은 마치 원두커피 한 잔과 같습니다. 커피는 원두 자체에서 직접 즐길 수는 없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원두를 추수하고, 적절한 온도를 가해서 볶아야 합니다. 불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볶은 원두는 곱게 분쇄됩니다. 다시 뜨거운 물이 원두를 지나갑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그렇게 원두 자체가 아니라 원두가 불을 지나고 분쇄되고 물을 지나서 만들어집니다. 또한 원두는 하나를 갈아서 커피 한 숟 갈을 만들지 않습니다. 원두는 함께 모여서 함께 볶아지고 함께 갈려서 향을 섞고 맛을 섞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은 볶이고 갈린 원두들이 섞여서 향과 맛을 물에 담아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맛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성도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1) 아무런 과정에 없이 맛있는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복음의 역설은 우리가 불을 통과하고 부숴지고 물을 지나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2) 원두 하나가 커피 한잔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교회는 성도와 성도가 함께 모여서 서로를 의지하고 도우며 성장합니다. 서로에게 섞여서 향을 전하고 함께 모여서 한 잔의 커피가 됩니다. 3) 이 때 중요한 것은 원두가 서로 부딪히고 볶이고 갈리면서 하나하나에 있던 원래의 맛이 더 진해진다는데 있습니다. 볶이고 갈리고 함께 있다고 해서 그 맛을 포기하거나 잃는 것이 아닙니다. 4)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는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있습니다. 이 시간은 성숙의 시간이면서 인내의 시간입니다. 향기나는 맛있는 커피 한잔이 식탁에 올려지기까지는 연결된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회복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교회입니다. 처음에는 원두와 같을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형상이 그 속에 있지만 아직 맛깔난 성도와 삶과 향기나는 교회의 모습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 원두와도 같은 성도들이 모이고 또 모입니다. 각자가 가진 은사와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성도들을 모아 교회로 만드시고 열을 가하십니다. 때로 세상으로부터 가열되기도 하고, 때로 교회 안에서 가열되기도 합니다. 때로 스스로 훈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부숴지고 무너지기도 하고, 함께 섞여서 그 커피만의 맛을 낼 준비를 마칩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이 지나가서 커피 한 잔이 됩니다. 거름종이에 남은 커피 찌꺼기로 버려진다 해도 커피 원두의 영광은 한잔 커피에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예수의 맛, 천국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상에 흩어진 모든 교회에 같은 맛과 다른 맛을 허락하셨습니다. 같은 맛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맛과 향기요, 다른 맛이라 함은 각자에게 허락된 은혜와 은혜의 맛과 향기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가 예수님의 맛과 천국의 향기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는 토착화된 우리만의 향취가 있어야겠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각 교회가 그 교회들만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함께 섞이고 모이고 갈리고 불과 물을 지나 한 교회입니다. 우리만의 향기와 맛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전하고, 천국의 향기를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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