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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작하고 지키라! na kim 201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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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4.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 SLOW CHURCH

 

* : 창세기 2 15 말씀

* : 7. 경작하고 지키라!

 

              에덴동산에 대한 우리들의 일반적인 오해 하나는 그곳을 완벽한 휴식과 휴양이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Slow Church 저자인 패티슨은 자신이 TV 만화영화 심슨가족에서 묘사된 에덴동산을 기억합니다.  ‘세 가지 성경 이야기’라는 제목의 그날 드라마는 엄마인 마지가 설교 시간에 졸다가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꿈속에서 마지는 에덴동산에서 가장 안락한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사자와 양이 함께 누워있고, 남편은 ‘협조적인’ 돼지의 옆구리에서 베이컨을 잘라내어 굽습니다.  신기하게도 상처 하나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휴양지에서의 휴식과 다를 바가 없는 에덴동산의 삶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땅에 대해 노동하지 않으면 없게 되었습니다.  3:17-19 말씀에 근거해서 이제 땅과 사람 사이에는 저주가 흐르고, 저주에 대한 사람의 의무는 노동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은 사람에게 있어서 범죄의 결과이며 저주의 열매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노동의 의무가 범죄 이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창조 직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15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을 경작하고 지키는(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일을 맡기십니다.  1:28에서는 아담에 대한 최초의 명령, 문화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28)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주셨던 가장 중요한 명령이 바로 노동과 관련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 노동,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은 사람을 복주시고 노동하게 하셨습니다.  ‘노동’, ‘노동할 있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자 복입니다.  노동에 대해 교회가 접근하고 가르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도권이 우리들에게 있지 않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4:1에서 고백하는 바와 같이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것”( 24:1)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 집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집을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스(oikos)' 성경에 1,600 이상 등장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19)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이제 에베소 교회는 외국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동일한 시민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가족의 관점에서 보면 에베소 교회는 손님이나 나그네가 아닌 ‘하나님의 권속’(members of God's household)입니다.  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집에 속한 공동체의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영어에서 경제를 의미하는 economics 헬라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유래했습니다.  말은 집을 의미하는 oikos’와 ‘법, 경영’을 의미하는 nomos’의 합성어입니다.  성경적으로 경제는 ‘하나님의 집을 경영하는 방식’이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노동과 경제가 성경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성경적 노동의 가지 측면

 

              2:15에서 우리는 노동에 대한 가지 성경적 개념을 찾을 있습니다.  하나는 ‘경작’(work)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키는 일’(take care of)입니다.  무엇에 대해 work 하고 무엇을 take care of 할까요?  1장의 문화명령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모든 생물에 대해 일하며 보살피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노동이라 부를 있습니다.

 

              위르겐 몰트만의 제자로 현대 기독교 학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에 사람으로 꼽히는 미로슬라브 볼프는 ‘경작’과 ‘지키는 일’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은혜로서의 노동의 양면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노동은 생산의 측면과 함께 보호의 측면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 시스템은 생태계의 상호 의존적 시스템과 함께 균형 있게 공존하는 쪽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적인 개념의 노동은 재화를 생산하고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지키고 보호하며 보살피는 일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17, 19에서 땅이 저주를 받은 것은 인간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성도와 교회는 땅에 대한 하나의 의무를 가집니다.  그것은 땅이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받았던 저주를 거룩한 노동을 통해 회복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2:15에서의 ‘경작’외 ‘보살피는 일’은 여기서 중요한 의미를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 환경으로서의 땅에 대해 노동할 아니라, 자연환경을 어떻게 회복하고 보살필 것인가 하는 또한 교회의 관심과 기도 속에 있어야 합니다.

 

3. 노동의 왜곡

 

              인류가 산업사회로 진입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흥 성장과 함께 기독교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난 300년간 인류는 이전 세기와는 비교할 없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자본주의의 철학적인 기초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의 중심에 노동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노동은 보다 많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적은 소비입니다.  사람들이 노동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을 통해 경제적인 능력을 확보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꿈꾸는 삶은 노동하지 않고도 소비할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소위 ‘다단계’를 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대부분 다단계 판매를 하시는 분들의 논리는 비슷합니다.  작은 차이를 제거하고 나면 다단계의 논리는 크게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판매망 구축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산으로서의 노동뿐만 아니라 유통으로서의 노동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단계에서는 유통의 과정과 비용을 줄이고 대신 사람의 관계를 사용합니다.  번째, 이런 유통의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제품의 질적 우위 때문입니다.  질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유통의 과정과 비용을 줄여서 판매하기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엄청난 이익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저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소비자이면서 또한 이익을 발생하는 구조 속에 들어오라고 권합니다.  내가 제품을 사용해보고 좋으면 다른 사람에게 제품을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 또한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하는 이익을 볼뿐만 아니라 최종 소비자가 발생시키는 이윤의 일정 부분이 제품을 판매한 개인에게 돌아갑니다.  중의 일정 부분은 다음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차례로 돌아갑니다.  단순한 소비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관계를 사용하여 유통을 통한 이윤을 발생시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논리는 다단계 판매를 통해서 안정적이고 선한 삶을 있다고 말합니다.  일정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나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됩니다.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수익으로 구제하고 선교하고 안락하고 선한 삶을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제게 다단계 판매를 권했던 사람은 ‘많은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섬길 재정의 어려움에 빠지지 않고 여유있는 삶을 즐길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어떤 목사님의 가정은 조기 은퇴를 하고 휴양과 선교를 번갈아 하면서 여유있는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다단계는 크게 두가지점에서 비성경적입니다.  첫째 인간관계를 통해서 이윤을 발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품을 선택할 있는 권리와 기회가 관계 때문에 박탈당하거나 제한될 있습니다.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이윤을 발생하는 관계가 되고 나면 이윤이 사라질 관계도 손상을 받게 됩니다.  또한 노동을 피해야 대상으로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상 노동하지 않는 삶이 목적일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복주시면서 노동을 명령하셨습니다.  노동은 은혜요 복입니다. 

 

               어디 다단계 뿐이겠습니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이 성경적인 노동의 원칙에서 벗어난 오래되었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서의 노동의 개념을 회복하는 일에 함께 노력할 있어야 합니다. 

 

4. 성경적인 노동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가 속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역사회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권속들이 함께 일하며 은혜를 누리며 감사와 영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현실의 상황가운데서 교회가 성경적인 노동을 회복하기 위해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1) 성경적인 노동과 직업을 선택할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많은 직업들이 거룩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중립적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직업 혹은 노동은 비성경적이거나 비도덕적입니다.  교회는 노동의 목적을 새롭게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재화의 발생이 노동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과 함께 주신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2) 노동을 예배와 연결할 있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의 1항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당에서의 예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업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통해야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시면서 일상의 예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성도의 삶에서는 세속적인 일과 성스러운 일의 구별이 사라집니다.  성도의 매일의 삶은 예배이어야 하고, 직장생활 또한 예배의 연장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로서의 노동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3) 노동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국제 노동기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세계의 미성년(5-14) 노동자는 2 1,500만명에 이릅니다.  중에 절반의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하고 있고, 1 2,600 명의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 가운데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마약이나 매춘에 희생되고 내전과 테러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또한 오늘날 세계적으로 3,000만명의 현실적 노예가 존재한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노동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저주로서의 노동에 생명을 맡겨버린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노동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노동의 성경적인 원칙이 회복되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어느 소수의 집단에 생산수단과 노동의 결과물이 집중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분배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4) 교회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청지기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에이미 셔먼은 ‘하나님 나라의 소명’이라는 책에서 교회가 성도들의 ‘직업에서의 청지기적 책임’을 가르치고 나아가 그들에게 허락하신 달란트를 통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독교적인 비영리단체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사람의 만든 모든 조직은 원래적 목적과 선을 지키기 힘이 듭니다.  신앙적 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단체를 원래적 목적으로 계속 새롭게 되어야 하고 새로운 단체들이 새로운 비전 가운데 만들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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