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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쉼, 창조의 완성 na kim 201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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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11. 11.                                          초대교회 수요 성경 공부 - SLOW CHURCH

 

* : 창세기 2 1-3 말씀

* : 8. , 창조의 완성

 

              20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프로테스탄디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Karl Marx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온 사회작자이자 정치학자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금서 목록에 그의 책이 올라갈 정도로 오해가 깊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저자의 이름이 비슷하고 제목에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때문에 막스 베버가 한국에서 고생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기도 했습니다. 

 

              책은 근대 사회학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온 책입니다.  베버가 책에서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근대 자본주의가 , 어떻게 유럽에서 싹트고 발전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윤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맹아는 고대 중국이나 인도, 바벨론 문화 속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는 유럽만이 가졌던 독특한 사회 역사적 환경에서 찾았습니다.  핵심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는 서구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영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정신이 자본주의의 윤리적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고 봤습니다.  그는 청교도 정신의 가지 측면에 집중했습니다.  첫째는 금욕주의입니다.  청교도들의 금욕주의는 사치와 향락, 태만을 죄악시했습니다.  말씀으로 살고, 청빈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그들은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직업을 통한 부의 축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이자 사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했고, 신흥 자본가로 성장할 있었고, 중세 봉건영주로 대별되던 사회적 리더십을 대체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타문화권에서의 자본주의적 맹아들이 성장 확산되지 못했던 반면 유럽에서의 자본주의가 건강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배경에는 청교도 정신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청교도적인 가치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가장 강하게 자리 잡은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대륙의 원주민의 역사를 단절하고 그들만의 새세상을 건설하고자 했던 Puritan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은 노동과 부를 숭배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청교도의 청빈 정신과 금욕주의라는 핵심 사상은 사라지고 노동과 결과로서의 부에 대한 집착만 남았습니다.  정신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은 것입니다.  국제 노동기구는 연평균 노동 시간을 계산했을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137시간, 영국인보다 260시간, 프랑스인보다 499시간 많이 일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참고로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374시간 많이 일합니다.  이것을 하루 평균으로 나누면, 미국인은 프랑스인보다 시간 , 한국인은 프랑스인보다 시간 정도를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과 재화의 창출이 절대적 가치로 자리 잡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들로 살고 있습니다.

 

1. 안식일이 제정되다.

 

              사실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일하지 않고 게으른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노동이 절대적 가치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안식의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곳은 출애굽기 16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가 다스리는 애굽이라는 국가의 압제와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법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창조 이후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을까요?

 

              성경이 출애굽 이전 시대의 안식일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노동의 조건에 대해서는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이 애굽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유목민이었지만 또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노동하며 소득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노동을 수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들어가고 다음 노동해야 이유가 바뀝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노동의 결과가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분리’가 발생합니다.  첫째는 노동만 계속하는 사람들과 쉼만 계속하는 사람들의 계층 분리입니다.  애굽은 많은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왕족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사회였습니다.  둘째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의 결과로서의 생산물이 분리됩니다.  노동했지만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노동의 결과물로서의 부가 분리된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이런 상황이 애굽 나라 뿐만 아니라 당시 근동 지방의 모든 나라에 공통된 문제였습니다.  시대 사회를 지탱하는 종교적 사상적 배경이 바로 맘모니즘, 물신사상이었습니다.  생산수단에 발전이 생기고, 사람들은 필요보다 많은 것을 생산할 있게 되었는데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발생하는 이유가 애굽에서 발생했던 분리들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이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전혀 새로운 경제원리와 법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바로 만나와 안식일입니다.

 

2. 만나의 의미

 

              채드 마이어서(Chad Myers) 하나님께서 만나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당함’과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날 필요한 만큼의 만나를 적당하게 거두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많이 거둔 사람이든 적게 거둔 사람이든 모두 같은 결과를 얻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16:18) 만나의 은혜를 누릴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상위 1% 세계 자산의 40% 가지고, 상위 10% 세계 자신의 85% 가지는 상황은 만나적 경제원리와는 맞지 않다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상위 10%입니다.  이미 우리는 ‘만족과 적당함’에서는 선을 넘어섰다고도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부의 재분배가 가진 가치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축적을 통한 부의 집중과 재생산이 물신주의의 가치관이라면, 재분배를 통한 화목과 화평은 하나님의 경제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세상에 풍성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생산해내는 재화의 양은 인류를 충분히 먹여 살리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에서 10 가까이 되는 사람들은 하루 1.25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살고 있습니다.  현대 인류의 불행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대해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의 성장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하루 동안 인간의 노동이 없어도 세상은 나를 위험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 하나님은 우리의 6일의 노동에 대해 7일의 풍성함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 7일째의 안식이 다시 시작되는 노동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안식년과 희년으로

 

              출애굽기 후반부에 가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년’을 가르치십니다.  “너는 여섯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23:10-11)  하나님의 백성의 휴식과 사회적인 빈곤이 하나님이 정하신 안식년의 율법을 통해 만나고 있습니다.  신명기 15장에 따르면 안식년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어야 합니다.( 15:1)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리치 아니하겠는 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경내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손을을 펼지니라”( 15:11)라고 했습니다.  ‘가난’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지키는 신앙의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음 안에서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아가서 레위기 25장으로 가면 안식년( 25:1-7) 희년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7번의 안식년이 지나 50 희년이 되면 모든 현재적 질서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초의 질서로 회복됩니다.( 25:10)  공동체의 빚은 사라집니다.( 25:13, 25-28)  노예는 해방됩니다.( 25:47-55)  축적되고 집중되었던 모든 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모든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5:23)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다시 세상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25:42)  약자를 보호하되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할 있어야 합니다.( 25:43)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세상에 대한 출사표를 희년의 선포와 함께 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61:1-2)

 

              하나님의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은 일하게 하시고 그리고 쉬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쉼은 ‘질서의 회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15:11에서와 같이 하니

나님은 사람의 세상이 ‘가난’이 발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서의 ‘가난’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가 함께 만난 문제이면서 함께 해결해야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의 쉼은 예배이면서, 질서의 회복이면서,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신앙적 행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만나를 항아리에 담으며

 

              창세기 2:1-3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쉼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쉼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창조의 절정은 인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쉼’에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쉼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며 새날을 준비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율법이어서가 아니라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는 영적인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면서 언약궤를 만들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언약의 안에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넣어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6:33)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돌판,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상징하는 만나를 보관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만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하나님은 그들의 일용할 양식에 간섭하시고 충분한 은혜로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만나를 기억하고 마음의 항아리에 담아서 보관하면서 세상이 주는 결핍에 대한 두려움을 넉넉하게 이겨나가야 합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아닌 신뢰와 감사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과 예배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안식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만나, 그리고 우리들에게 보관하라고 명령하신 만나 항아리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죄와 악의 사슬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믿음으로 참여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연약했던 그들을 격려하시기 위해 만나를 통한 영적 훈련을 허락하셨습니다.  후손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것을 항아리에 보관하여 교육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허락하신 항아리를 지키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적 쉼에 동참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삶의 질서를 회복하며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며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상처난 마음과 시선을 회복하게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가 하나님과 더불어 쉬는 안식을 통해 우리 안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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