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성경 공부

  • 홈 >
  • 예배와 말씀 >
  • 수요 성경 공부
수요 성경 공부
마가복음 King's way 5. 더 큰 두려움 이응도 2019-06-27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20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80/5601137

초대교회 수요 예배 마가복음 King's Cross

 

5. 더 큰 두려움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이 있다면 단연 요나입니다. 그가 펼쳐놓은 짧은 이야기는 한편이 영화와도 같습니다. 그는 한 시대를 책임지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하면 안되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의 경계에서 움직인 사람입니다.

 

요나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중해 바다의 작은 배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선원들과 승객들이 그를 깨웁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게 되어 각 사람이 자신의 신들에게 기도하고 있는데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라는 질타가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깨닫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 풍랑은 자신 때문입니다. 풍랑에 대한 요나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12)

 

바다를 두려워했던 선원들과 승객들은 바다의 분노가 한 사람의 신에 대한 불순종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더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신의 분노를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방법이 무산되자 결국 그들은 신의 분노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의 해결책에 의지합니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1:14)

 

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비로소 평안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더 큰 두려움에 빠집니다. 성경은 그들의 두려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16)

1. 두려워하는 사람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배를 띄웠습니다. 다른 많은 배들이 함께 했다고 합니다.(4:35-41) 그들은 평소에 바다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어느 정도의 풍랑을 헤쳐 나가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으로부터 약 200m아래에 있는 담수호입니다. 북쪽으로 약 60킬로미터 지점에는 해발 3000미터의 헤르몬 산이 솟아 있습니다. 이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와 갈릴리 바다의 따뜻한 공기가 만나면 쉽게 폭풍우가 몰아치게 됩니다. 갈릴리에서 평생 어부로 살았던 제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풍랑은 견딜만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유례없는 큰 풍랑을 만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직감합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혀 보셨습니까? 무슨 일이든지 하게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께 분노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왜 돌보지 않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 앞에 있으며 예수님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니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거나, 위기를 외면하시거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분이 아니냐는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각 문화권에서 바다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있습니다. 인류는 늘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바다 깊은 곳에는 바다를 통제하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세이돈이나 용왕이니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깊음 속에 존재하는 깊음을 다스리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형상화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인류가 함께 가지고 있던 두려움에 그들이 당면한 개인적인 어려움이 더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고, 절망하고 있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2. 믿음의 정도, 믿음의 대상

 

어릴 적 나락으로 한 없이 떨어지는 꿈을 꿔본 적이 있을 겁니다. 대부분 성장하는 꿈이라고 해석합니다. 영화나 만화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최후의 기회가 있습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절벽에는 늘 나무 가지나 뿌리가 있어서 주인공이 붙들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저 나무 가지를 붙들기만 하면 반드시 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살 수 있을까요? 나무 가지를 붙들었는데 쉽게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히면 어떻게 될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나무 가지에 대한 얼마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나무 가지가 신뢰할만한 강도와 뿌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다양한 어려움을 만납니다. 각자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 “누구만 있으면 좋을텐데....”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는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내가 만난 문제의 해결은 내게 있는 믿음의 정도에 있는 것일까요?

 

오랫동안 한국 교회가 잘못 가르쳐 온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했는데도 잘 안되면....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 그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나의 간절함이 부족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나의 소원의 방향과 내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기도의 내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야고보서에서 하나님은 기도해도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2-3) 그것은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의 대상과 동기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후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의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4:20)

 

3. 두려움이 이유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더 재미있습니다. 그들은 더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4:41) 그들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고 험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두려움이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먼저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바람과 파도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콘트롤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예상하지 않았고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우리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풍랑이는 바다에서 작은 배에 의지해서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이 만난 문제가 그들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자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들은 배 위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원망과 분노였습니다. 그들은 바다가 두렵고, 예수님의 무관심이 두렵고, 버려짐이 두렵습니다. 자신들이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평안히 잠을 자고 있는 스승 예수가 자신들의 두려움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고, 자신들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앞에 두고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당연히 믿음 안에서 기도하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거나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으셨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수많은 'IF'를 가지고 우리의 절망과 분노를 하나님께 쏟아내지는 않으셨습니까?

 

결국 답은 왜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했을까요?

 

4. 요나보다 큰 자

 

요나서의 구조와 마가복음 435-41절의 구조는 비슷합니다. 문제를 만난 사람들, 그들의 두려움, 그리고 해결책을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습니다. 요나는 풍랑에 자신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평강 자체임을 증거하십니다. 하지만 결국 이 두 이야기는 다르지 않습니다.

 

요나는 바다 깊은 곳에 던져지지만 하나님께서 3일 만에 구원하십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라는 고난의 바다에 자신을 던지십니다. 하나님은 3일 만에 예수님은 살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교회가 섭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기사를 익히 알고 있는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12:41)고 말씀합니다. 크기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확실한 증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두려움에 있습니다. 41절에서 제자들은 더 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물론 이 두려움은 바람과 파도에 대해 느끼던 공포와는 다른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에서 느끼던 막연한 두려움을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능력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그들의 이 막연한 두려움이 마지막 성찬을 마치고 죽음을 준비하는 예수님 앞에서 누가 더 높은지 논쟁하게 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려두고 도망가게 했습니다. 이 막연한 두려움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갈리리 바다로 돌아가 그물을 던지게 했습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보여주는 이 짧은 드라마는 우리의 좋은 거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왜 분노하며 왜 원망합니까?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평강이며 능력이며 사랑이십니다. 나의 간절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를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비로소 두려움과 원망이 아닌 평강과 의지로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한걸음씩 항해하게 될 것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마가복음 King's way - 6. 더 깊은 절망에서 기다리다 이응도 2019.06.27 0 275
다음글 마가복음 King's way 4. 종교가 아니라 복음 이응도 2019.06.27 0 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