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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King's Way 15. “신(神)을 먹고 마시라”(막 14:22-25) 이응도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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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 예배 마가복음 King's Cross

 

15. “()을 먹고 마시라”(14:22-25)

 

제가 처음으로 다른 교단의 성찬식에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 Blue Bell에 있는 Episcopal Church를 렌트해서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 교회와 좀 더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 몇 번 예배에 참석했고, 성찬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성찬과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예식을 각각의 전통을 따라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식의 순서나 모양일까요? 그것은 오히려 우리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한 성도와 교회가 어떻게 살고 믿고 전하느냐에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시면서 그들의 당황하는 모습을 앞에 두고 최초의 성만찬을 나누실 때의 비장함과 엄숙함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셨던 명령을 따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찬의 의미를 가르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들 자신의 부끄러웠던 기억을 함께 떠올렸을 제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성찬을 나눌 때마다 좀 더 깊이, 좀 더 본질적인 고민과 결단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이스라엘의 유월절

 

예수님이 오시기 10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그들의 신분은 노예였고, 그들의 생명은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셔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내보내는 것을 완강하게 저항하는 바로와 애굽에 대해 하나님은 열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어떤 재앙은 애굽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했고, 어떤 재앙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을 예고한 마지막 재앙은 다른 모든 재앙과 특별히 구별됩니다.

 

이 재앙은 유대인이나 애굽인 모두에게 내려진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흠 없는 수컷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아들이 죽고 짐승이 죽었습니다. ‘양의 피의 그늘 아래 피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집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그 날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누군가 꾸며낸 소설처럼....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다고 해서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요?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에는 총 네 부분으로 이뤄진 특별한 형식이 있었습니다. 각 부분마다 사회자는 잔을 들고 일어나서 만찬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네 개의 포도주 잔은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6:6-7에서 주신 네 개의 약속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6:6-7)

 

그들은 이 말씀을 다음의 네 가지 약속으로 정리했습니다.

 

1) 출애굽 /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2) 노예의 삶에서의 해방 /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3)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구속 /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4) 하나님의 백성이 됨 /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사회자는 만찬을 축복하면서 매 순서마다 잔을 들고 그것들이 옛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살이와 해방과 어떤 상징적인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고 함께 기념했습니다.

 

2. 예수님의 유월절 만찬

 

마가는 오늘 말씀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성만찬의 인도자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대본을 바꾸십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어려서부터 듣고 참여해왔던, 천년동안 수많은 가정과 회당과 모임에서 반복되던 유월절의 대사와 다른 새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비장하심과 제자들의 당황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조상이 먹었던 무교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상들이 하던 말과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잔을 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잔은 나의 피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만찬에는 그들이 지켜오던 모든 유월절의 만찬과는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의 만찬에는 떡이 있고 포도주가 있고 그들이 먹던 나물이 있고 그리고 양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양을 구워서 옷을 입고 신을 신은 채 떡과 함께 먹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만찬을 기록한 복음서 어디에도 양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기록했던 제자들의 의도적인 생략이든지 아니면 성찬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신 예수님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든지... 그들이 먹을 양이 없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와 교회를 위한 영원한 어린 양이 이 성찬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이며, 먹고 마실 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3. 나를 먹고 마시라.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행위, 그리고 이것을 먹고 마실 때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 주목합시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은 나의 피니라...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예수님은 정확하게 이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셨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 예식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아십니다. 스스로 양이 되시고 떡이 되시고 포도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찬예식의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참여하는 성도와 교회는 예수를 먹고 마십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습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첫 번째 유월절 예식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심판을 피하고 구원의 은혜를 입기를 소원하여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먹었습니다. 아직 그들의 몸은 애굽에 있지만, 아직 출애굽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광야의 음식을 먹습니다. 애굽에서 하지 않는 신앙적 의식을 행하고 애굽에서 먹지 않는 것으로 준비하여 이미 광야에 있는 것처럼 채비를 하고 먹고 마시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역사와 여정을 정확하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한국의 교단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친한 목사님 한분이 저희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미 한국을 떠난지 20년이라... 한국 신학교와 교회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평가에 의하면 한국 교회는 엉망진창입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왕성한 것 같고,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왜 그럴까요? 많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저는 그 중 하나가 개혁주의 신학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에 집중했습니다. 보혈의 공로, 구원의 은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 우리가 입은 사랑과 은혜를 믿고 전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은 유월절을 준비하던 유대인들이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애굽에 있지만 광야의 삶을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옷과 신을 갖춰입고, 광야의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지만 이미 출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선포하셨고, 가나안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보혈의 능력만 강조했습니다.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 결과 구원의 확신은 충만한데 구원받은 삶은 없는 기형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신의 죽음을 모티브로 합니다. 신의 죽음, 범죄한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한 절대적 희생의 선택이 우리 신앙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죽임당한 그 신은 우리에게 자신을 먹고 마실 것을 명령했습니다. 삶에서 날마다 때마다 기념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마치 너희가 나인 것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약속으로 사는 사람

 

예수님께서 성찬의 마지막에 주신 말씀은 교회와 성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4:24-25)

 

예수님은 포도주를 주시면서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피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때에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을 갱신하십니다. 그때 사용하신 것은 제물로 드릴 모든 짐승을 둘로 쪼개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새는 그냥 놓되 모든 짐승은 둘로 쪼갰습니다. 고대 언약의 예식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제국이 작은 부족이나 국가를 복속시킬 때 그들의 우두머리를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게 하여 피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약속을 깨뜨리면 죽음으로 대신한다는 생명을 건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준비하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하나님은 임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물 사이를 지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이 지칠 때 쯤... 하나님의 영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횃불과도 같은 불길이 일렁이면서 아브라함이 지나가야 할 길을 하나님이 지나가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던 거룩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생명을 드리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 약속이 다시 한번 갱신됩니다. 예수님께서 잔을 나누시면서 나의 피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의 죽음으로 갱신되는 가장 귀한 약속이 그들의 잔에 함께 있습니다. 이 약속은 십자가로 성취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떤 학자는 예수님이 죽음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다시는 살아서 음식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죽음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의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앞부분, 피의 언약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이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 됩니다. 이 떡과 잔에 믿음으로 동참한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하고 영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와 교회가 약속으로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약속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 또한 미래의 약속이 오늘의 삶이 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강하고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힘을 공급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통하여 우리의 밥이 되시고 국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날마다 먹고 마십니다. 이 땅을 살되 하나님의 나라로 살고, 육신은 늙어가지만 날로 새로운 삶을 삽니다. 신을 먹고 마시는 은혜를 허락하심에 감사하면서 날마다 한걸음씩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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