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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의 길 / 예배하는 사람들 1 김나래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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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수요예배                                                        2023. 12. 6. 

 

영적 성장의 길 / 예배하는 사람들1(요 4:23-24)

 

찬송가 / 90.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구)98장],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구)217장]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쉐키나(shekinah)의 관점에서 예배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히브리어 '쉐키나'란 '거주(dwelling)'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배를 쉐키나의 관점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예배의 핵심가치로 생각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구름이나 불기둥 같은 가시적인 모습으로 이 땅에 임재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쉐키나의 영광'이라고 불렀습니다.  쉐키나의 영광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성육신'입니다.   

 

쉐키나의 관점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은 추상적이거나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임재하시며 영광으로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경험했던 유대인의 조상들은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교통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그들의 후손은 쉐키나를 잊거나 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이용하기도 했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면서 예배를 자신을 위로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배는 성도의 삶의 중심이며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행위입니다.  반대로 예배의 중심과 가치를 잃을 때 예배는 공허한 것이 됩니다.  쉐키나의 중심을 잃은 예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을 때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삶에서, 예배에서 하나님의 거주하심이 영광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1.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예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예배를 설명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잘못된 예배를 드려오던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은 예배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3-24)

 

이 본문에는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주제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예배를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찾으시고 권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도적 행위에 대한 성도의 응답‘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초현실적, 신비한 존재란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요 생기의 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존재의 근원과 가치를 달리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두 단어가 있다면 하나는 ‘생기’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창세기 2장7절의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의 전제는 사람 또한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이고, 사람과 영으로 교통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교통함의 핵심은 바로 ‘신령과 진정’에 있습니다.  이 부분을 성도와 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태도 정도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마리아 여인에게 ‘신령하게 진정을 다하여’... 좋은 영적인 태도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예배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라고 번역된 원문은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쎄이아)입니다.  정확한 번역은 ‘신령하고 진정하게’가 아니라 ‘영과 진리 안에서’(in spirit and in truth)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심산의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은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은지 다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장소와 공간이 아닌 ‘하나님의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류는 각 문화와 종교를 따라 예배의 공간을 창조해왔습니다.  공간에 영적이고 거룩한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한 거룩한 사람들이 거룩한 제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들만의 예배이며 신과의 교통함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영적 공동체이면서 이 땅에 불러주신 한 나라로 세우신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앙과 예배 행위에 대해 주변의 많은 국가들과 닮아갔습니다.  유대인들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쉐키나를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하는 성막을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성막은 곧 장엄하고 큰 솔로몬의 성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왕의 권위와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의 성전을 짓고 예배했습니다.  그들에게 장소와 공간은 단순히 하나님과 교통하며 예배하는 통로만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과 권력과 욕망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책망하셨고, 사미라아 사람들이 예배하던 그리심 산의 제사 또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그 시대의 사람들과 오늘날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선언하시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3년간 경험한 팬데믹의 상황은 오히려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더 큰 장소와 좋은 공간에 집중했던 현대교회가 장소와 공간의 제한을 받는 중에 신앙과 예배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예배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인식과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2000년 전에 진리와 영 안에서 예배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이 만나는 현장입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식을 사용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은 예배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정한 형식과 과정을 통해 아름답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만남이 없는 예배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역사적인 발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예배의 형식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형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예배의 핵심 정신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예배를 위한 특별한 형식과 순서를 요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회당 중심의 예배 제도에 오랫동안 길들여졌던 유대인들에게 초대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자유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회중이 성령 하나님과의 교통함을 경험할 때 장소와 형식과 시간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반면 인간이 가진 연약함과 부족함을 생각할 때... 예배의 형식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체험을 구체화할 수 있는 ‘포도주 부대’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튼튼하고 좋은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부대가 포도주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예배의 형식은 예배를 돕는 것이지 예배 자체일 수는 없습니다. 좋은 예배의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포도주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부대를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예배의 대상

 

예수님은 우리들이 누구를 예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셨고, 예배의 현장에 성령으로 임재하시며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삶과 인격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오랫동안 우상을 숭배해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 앞에 절하는 것만이 우상 숭배는 아닙니다. A.W. Toz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가치한 것을 즐겨 생각하는데 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우리의 인생을 소비하고 헌신하는 것 - 하나님은 이것을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먼저 그것은 1)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면 우리는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빛나고 거룩한 본성 앞에 우리가 서고 그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며 우리의 악을 발견합니다.

 

또한 하나님만을 예배한다는 것은 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모두 교회와 성도를 향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자비와 긍휼에 감사하며 그에 합당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사람의 역사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초대하셨기 때문에, 3) 예배가 우리 생활의 최우선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드리는 공동의 예배와 개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드리는 예배가 모두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의 교통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예배와 봉사 혹은 헌신을 혼동합니다. 예배가 우선입니다.  헌신과 봉사는 참된 예배의 결과입니다.  헌신과 봉사로 예배를 배체할 때 그것은 자기만족의 우상숭배와 같은 결과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봉사의 요청에 응하게 될 때 당연히 마음이 분주해지고 삶이 바빠집니다. 결과와 평가에 집착하게 되고,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중심에서 떠나게 되고, 내 마음의 중심에도 다른 것이 자리 잡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고하는데 그것이 나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4. 예배에 대한 거룩한 기대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특징은 모든 예배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거룩한 기대에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이 자신들의 예배에 임재하신다는 것을 믿었고, 거룩한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품었습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 속에 어떤 사람은 거짓된 예배로 징계를 받아 죽음을 당하고(행 5:1-11), 어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행 9:36-43), 어떤 사람은 예배를 소홀히 여기다가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행 20:7-10) 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로 모여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했고,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거룩한 기대가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쉐키나)를 경험할 때 가능합니다.  프랑스의 수사 로렌스 형제는 그가 일하던 부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기 때문에 그가 드리는 모든 예배의 시간에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체험하는 일 없이 신자가 만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p.32)

 

하나님을 우리 개인의 일상에서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한 경험이 공동의 예배를 통해서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에 대한 경험과 고백이 풍성하게 나눠지는 예배에 대한 거룩한 기대가 우리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대를 성령 하나님께서 만족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쉐키나, 주님의 거룩한 임재가 말씀이 육신이 되는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의 역사에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주님의 쉐키나의 영광에 합당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와 교회가 우리의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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